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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은 처음이라

계획했지만 부족했다, 파워 J의 바르셀로나 여정

by 하담

나는 장거리 비행이 자신 있었다.


내 첫 비행기 경험은 브라질이었고, 당시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갔었는데 이스탄불에서 경유하고 30시간 정도 비행 일정이었던 것 같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12시간 정도 걸렸고, 이스탄불에서 브라질까지도 거의 1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당시 다들 힘들어했는데 나는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좋았고, 자리도 전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의 집중력은 또 얼마나 좋았는지, 책을 2권 가져갔었는데 가는 길에 단숨에 다 읽어서 오는 비행기에서는 조금 심심했던 기억까지 있었다. 그래서 난 인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13시간 30분 비행이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신랑이 걱정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나의 신랑은 나보다 15살이 위였고, 반 백 살이 넘은 나이였기에 아무래도 13시간이 넘는 비행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넓은 자리로 추가 비용을 내고 바꾸고 싶었는데, 우리의 좌석은 안타깝게 자리 변경이 안 되는 옵션이었다. 아무래도 여행사를 끼고 구매한 탓인 듯싶었다.

그래도 장거리 비행기에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괜찮겠지 했는데, 이게 웬 걸!


비행기가 거의 꽉 찬 듯 보였다. 게다가 비행기가 뜨는 시간도 한 시간 정도 늦어졌다. 13시간 30분 비행이 14시간 30분으로 늘어난 것이다.

장거리 비행이라 그런지 담요와 베개, 슬리퍼, 그리고 칫솔, 치약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받을 수 있었고, 늦은 탓인지 하늘에 뜨자마자 식사가 나왔다.


사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공항에서 한식을 먹고 싶었는데, 신랑이 늦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탓에 그냥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나는 진작에 출국하기 전에 먹어야 하는 인천 공항 한식 밥집을 계획에 넣어 놨기 때문에 식당 앞까지 갔으나, 직원들이 음식이 나오려면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고 신랑은 그건 좀 너무 늦지 않느냐 물었다.

신랑은 나의 의견을 물은 것이었으나,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1시간 반이나 남은 상황에서 신랑의 물음은 마치 내게 빨리 출국장으로 들어가자고, 본인은 비싼 밥을 먹고 싶지 않다는 말의 우회적인 전달로 느껴졌다.

신랑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그냥 그의 말에 동의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나의 첫 계획부터 어긋나 버린 것이다.


나중에 출국장에 들어가서야, 신랑이 비행시간을 한 시간이나 앞당겨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신랑은 그럼 먹고 가자고 이야기하지 왜 그냥 들어왔냐고 당황했다. 평소와 같지 않은 나의 행동에 꽤나 놀란 듯싶었다.


나는 짐짓 쿨한 척, 그에게 괜찮다고 했으나

평소 먹는 것에 꽤나 진심이었던 터라 사실 비행기 타기 전까지 심기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도, 비행기에서의 첫 식사가 불고기 쌈밥이 나왔고, 나의 마음은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신랑은 내 귀에 대고

“와! 꽤 괜찮다. 샌드위치도 먹지 말걸 그랬다. 그지?”

나는 이 말이 여행 계획의 첫 시작부터 신랑이 불평하는 걸로 들렸다.

마치

“비행기 타기 전에 괜히 비싼 한식 먹었으면 아까웠을 것 같다.”

이렇게.


누그러들던 나의 마음은 다시금 끌어 올랐지만 애써 신랑에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번 여행은 바로 내가 원한 유럽 여행이었으니.


계획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기 때문일까?

13시간 30분의 비행이 즐거울 거란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나는 나의 그 좁은 자리 안에서 어떻게 앉아도 불편했고, 책을 읽으려고 해도 집중이 되지 않았으며 잠도 깊이 잘 수 없었다.

맛있게 먹은 쌈밥은 소화가 되지 않았고, 덕분에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탄산수만 마셨다.

그마저도 화장실에 갈까 봐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시지 못했다.

다행히 우리랑 같은 열에 앉은 다른 분이 일행 옆으로 자리를 옮겨가서 비교적 자리를 넓게 쓸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런데 신랑은 의외로 잘 버텼다.

영화 몇 편을 보고, 잘 자고, 밥도 잘 먹었다.

두 번째 식사는 소고기와 새우가츠였는데, 둘이 메뉴를 하나씩 시켰다. 나는 반도 다 먹지 못했지만 신랑은 내 몫까지 신랑이 다 먹어 치웠다.

그리고 평소에는 마시지 않는 맥주도 하나 시켜 마시고, 안주로 주는 과자도 추가로 요청해서 먹기까지 했다.

반면에 난 결국 소화가 안 돼서 승무원에게 소화제를 요청해서 먹어야 했다.


신랑이 생각보다 즐거운 것 같아 다행이었나, 나의 속은 계속 더부룩했다.


바로 앉았다가, 양반 다리를 했다가, 모로 누웠다가, 창문 쪽에 기댔다가 자세를 반복적으로 바꾸다 보니 드디어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원래는 7시면 도착할 줄 알았으나 9시가 다 되어서 나왔고, 우리를 픽업해 주실 기사님과도 약속시간보다 다소 늦게 접선했다.


“늦은 시간에 대중교통은 위험하지 않을까? 바르셀로나 공항버스 탈 때 캐리어를 분실할 수 있다던데…”

신랑의 우려에 따라 선택한 한인 픽업 서비스였다.

참고로 나는 공항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신랑이 공항버스 타고 가다가 캐리어를 분실한 유튜브 영상을 보내 왔기에 가성비가 아닌 가심비 여행 콘셉트를 확고하게 지킬 수 있었다.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실 기사님은 바르셀로나에 태권도 사법으로 이민 와서 벌써 몇십 년을 살고 계신 분이었다.

원래 타지에서 사기 치는 게 동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나는 다소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나의 신랑은 친화력을 발휘해 이것저것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최근 맡았던 프로그램 MC의 아버지의 지인이었다.

이런 인연이?!

너무 신기했다.

녹화장에 그녀의 부모님이 놀러 왔었고, 나도 인사를 했었기에 내적친밀감이 증가했다.


신랑은 더 반가워했다. 우리 시 아빠가 젊을 때 태권도 사범이었기에 그런 것 같았다.

한인회 회장도 맡았던 그분을 우리는 김 회장님이라 불렀다.

김 회장님께서는 이것저것 바르셀로나 여행의 팁을 주시고 호텔 앞까지 잘 데려다주셨다.


바르셀로나에서 여행하며 김 회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타국에서 의지할 수 있는 현지 교민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앞서 경계심을 가졌던 게 미안해 질 정도로.


타지에 왔다는 사실에 긴장했던 신랑이 김 회장님과의 만남 이후에 마음이 한층 편해진 걸 느꼈다.


반면에 난 호텔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호텔은 4성급으로 1박에 50만 원에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퀄리티가 기대에 미치지 않았다.

약간 부띠끄 호텔 같은 느낌이랄까?


일부로 룸도 업그레이드해서 테라스가 있는 방으로 예약을 했는데, 어두운 밤이었음에도 우리의 테라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건너편 집의 거실뿐임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1박의 거의 50만 원에 육박하는 호텔에 어메니티가 없었다.

실내화도 없었고 칫솔도 없었다.


사실 난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타국 여행한다는 것이 곧 위험 노출이라 생각하는 신랑의 불안을 줄여주기 위해 거짓말 조금 보태어 수 백 개의 호텔 리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험을 비춰 보자면, 유럽의 호텔들을 대부분 실내화나 칫솔을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에 꼭 챙겨 가라고 조언했기에 나는 그 조언에 비춰 칫솔과 실내화를 철저하게 준비해서 집에 놓고 왔다.


젠장.


그나마 다행인 건 혹시 모라서 비행기에서 나눠 준 칫솔 파우치를 챙긴 것이었다.


실내화와 칫솔뿐만 아니라 소화제, 감기약, 연고, 소독약, 밴드 등 미리 챙겨 놓았던 상비약도 없었다.


‘철저하게 준비하면 뭐 하나 다 집에 모셔 놓고 유럽을 왔는데…’


신랑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아니 확실하다.


이 호텔이 얼마냐고 묻기에 내가 대답해 줬더니 신랑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미쳤다.”


물론 내가 미쳤다는 뜻은 아닐 것이었으리라.

좁고 오래된 이 호텔 방이 그 가격이라는 것에 놀라서 한 감탄사였을 것이다.

나는 그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아둔함을 속으로 탓했다. 그러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다른 누구에게 짜증이 나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신랑은 호텔 데스크 직원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정말 실내화와 칫솔이 어메니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인지.

나는 그를 말렸다. 괜히 이 나라의 암묵적인 호텔 이용 룰을 지키지 않고 과도하게 요구사항이 많은 동양인 여행객으로 비칠까 봐 걱정되었다.


신랑은 쿨하게

“없다고 하면 말지 뭐” 그러면서 호텔 직원에게 어메니티를 요구했다.

나는 그에게 조금 떨어져서

“원래 유럽 호텔은 실내화를 안 준다고 했단 말이야.”라고 작게 이야기하며 그를 다시 한번 말렸는데, 호텔 직원은 흔쾌하게 알겠다고 했다.


블로그 스페인 호텔 리뷰들이… 다 맞는 것은 아니었다.


10시의 바르셀로나는 예상외로 활기찼다.

외국은 7시만 되면 식당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다 집에 들어갈 정도로 야밤에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식당마다 야외 테라스까지 꽉꽉 찬 사람들의 모습에 안심이 되어가는데 신랑이 또 초를 치는 말을 했다.


“외국에서 야밤에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 괜찮은지 모르겠다.”

내가 찾아 놓은 식당은 몇 블록을 더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기에 그곳은 포기하고 신랑에게 물었다.

“와퍼 먹을래?”

신랑은 흔쾌하게 좋다고 했다.

신랑이 흔쾌하게 좋다고 한 것은 아마도 버거킹이 우리가 묵는 H10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1분 거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스페인 비행기 타기 전 식사부터 애써 준비했던 준비물,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첫 식사까지 어느 하나 나의 계획대로 진행된 것이 없었다.


난 애써 굉장히 시큼한 피클이 들어있는 와퍼를 먹으며 생각했다.

‘스페인에서 와퍼는 처음이잖아! 본격적인 여행은 내일부터니까 내일부터는 분명히 좋겠지….'


나의 사랑스러운 반 백 살의 신랑은 와퍼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제발 내일은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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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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