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빠의 입원 소식, 유럽 여행 포기할까?
여행지가 바뀌면서 나는 여행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졌다.
이탈리아였다면 최애들의 힐링 투어(세븐틴의 나나투어)를 따라갈 예정이었는데, 스페인은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여행지였던 것이다.
그제야 스페인을 조사했다. 우리의 여행 콘셉트는 '여유 있게'였으므로,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만 가기로 했다. 그라나다 쪽에 탱고 친구들이 살아서 거기도 가고 싶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너무 멀었다.
그래서 이동은 최대한 줄이고, 안전하게 스페인의 유명 여행지를 돌고 그 외로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르셀로나의 가우디투어,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투어와 플라멩코 공연 또 축구를 좋아하는 신랑을 위해 베르나베우 스타디움 투어를 미리 예약했다.
그런데, 또 다른 위험 요소가 나타났다. 스페인에서 여행객들을 반대하는 시위가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관광객들에게 물총을 쏘기도 했다고.
‘비싼 돈 들여 가서 밥 먹다가 물총 세례를 맞는 다면 기분이 얼마나 잡칠까? 또 시위가 좀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면?! 미디어에서 본 유럽인들의 시위란 화끈함을 넘어 과격해 보이기도 하던데… 괜히 돈 쓰고 위험한 상황에 들어가는 건 아닐까?’
이 당시에 나는 엄청나게 혼란스럽고 고민스러웠다. 생의 첫 유럽 여행을 간다는 설렘은 사라지고,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국에 우리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철저하면서도 신랑의 니즈를 채울 수 있는 여유롭고 안전한 여행 일정을 짜는 데 신경을 썼다.
숙소들도 모두 비쌀지언정 번화가에 있는 4성급으로 예약을 했다. 걸어서도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구글지도로 일일이 검색하면서 찾아봤다. 그리고 투어도 고민해서 신청을 했다. 또 이동 수단도 다 찾아서 정리를 해뒀다. 대중교통은 소매치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신랑의 걱정에, 공항에서 호텔까지 픽업 서비스도 예약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의 여행비용은 예상보다 더 많이 나갔다.
신랑에게 대략 이번 여행으로 천만 원정도 쓰게 될 것 같다고 말하자 신랑은 그 돈을 매우 아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돈으로 OO 주식을 사면 10년 뒤에 1억인데…”
아쉬움 가득한 신랑의 말을 듣고 내가 항변했다.
“우린 이번 유럽 여행을 가서 1억짜리 추억을 쌓고 올 거야. 그러니까 아까워하지 마!”
신랑이 설득이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더 이상 돈이 아깝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생각은 하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내게 들리게 말하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여행 일정이 다가오자, 후반 작업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 맘에 쓰였다.
일을 시작할 당시에도 이미 결정된 여행이었고,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여행지가 옮겨지면서 일주일 정도 늦게 미뤘지만 후반작업이 반 정도 남은 것이다. 혹시나 싶어 여행일정을 조금이라도 미뤄볼까 알아봤지만,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여행지를 옮기면서 환불 불가 옵션으로 바뀐 상태라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인생은 타이밍인데, 어찌 된 게 이번 유럽 여행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이 여행에 쓴 돈과 시간, 그리고 나의 로망이 있었기에 애써 모른 척하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싶었는데, 여행 전 날 엄청나게 큰 유럽 여행 불가 시그널이 터졌다.
갑작스럽게 시 아빠께서 병원에 입원하신 것이었다.
시아빠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이발소를 운영하시며 정정하셨는데, 갑작스럽게 폐섬유화를 진단받더니 곧 심부전도 진단받고 심장막에 물이 차기까지 해서 물을 빼는 수술도 끝낸 터였다.
‘인생은 타이밍인데, 이번은 유럽 여행을 갈 타이밍이 아니었구나.’
‘결혼 10주년 기념, 안식년의 마침표 같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유럽 여행의 타이밍으로 만들 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구나.’
나는 여행의 타이밍이 아니란 결론을 내고, 여행을 취소하려고 했다.
비행기표와 이미 예약 확정된 바르셀로나 호텔과, 이스탄불 호텔, 그리고 투어들을 취소하면 어림잡아 700만 원 정도를 날리게 되겠지만, 시아빠가 아프신 상황에서 내가 여행을 간다는 건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을 취소하자고 하자 신랑이 반대했다.
“여보, 우리가 여행 안 가도 아버지 옆에 계속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안 간다고 아버지가 확 좋아지시는 것도 아니니까 이번엔 여행을 가자. 2주 정도 동안 큰일이 생기진 않을 것 같아. 이번에 유럽 안 가면 여보 마음에 한이 남을 것 같아. 그럼 나도 내내 마음이 안 좋을 거고, 아버지도 그러실 거야. 그리고 우리는 700만 원을 그냥 포기할 정도로 부자가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 내일 가자! 여보 말처럼 1억짜리 추억 만들고 돌아와서 아버지께 더 잘하자.”
그렇게 우리는 유럽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