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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나 Nov 24. 2023

유산,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

#4

작년 계류유산을 했을 때만 해도 나는 유산을 임신 종결, 그걸로 끝이라고 이해했다. 막이 내려가면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 남아 무대를 정리하는 관계자였다. 중기 문턱에서 경험한 유산은 이후에 직접 정리해야 하는 일이 태산이었다. 알아서 산후조리원이 취소되거나 태아보험이 해지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산후조리원 취소는 남편에게 부탁했지만, 태아보험 해지는 직접 해야 했다. 보험을 해지하려면 챙겨야 할 서류도 많았고, 실시간으로 인증번호를 확인하는 등 어찌나 절차가 까다롭고 번거롭던지.


그럼에도 보증금이나 보험료를 돌려받아야 했으니 연락을 해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 소통해야 하는 과정은 불편하다 못해, 짜증스러웠다.



첫 산과 진료를 앞두고 진료 안내 톡이 왔다.


나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진료 취소를 요청했다. 직원은 어떤 사유 때문이냐고 물었고 나는 태아가 잘못돼서 더 이상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중간에 한번 감정이 북받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덤덤하게 정리했다.


유산한 나를 배려해 어느 날부터 연락을 안 한다거나, 민감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그냥 넘기는 일은 결코 없다.



이외에 비임신 모드로 바뀌었음을 실감해야 하는 순간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똑똑한 알고리즘은 나에게 출산용품, 신생아 용품을 보여줬고, 래서 나는 알고리즘을 바꾸려고 애견용품을 열심히 검색했다.


출혈이 한 달 동안 이어져서 산부인과 검진도 다녀왔다.

초음파를 보면서 '있었는데 더 이상 없다'라사실을 실감하고는 공허해서 우울해졌다.



임신했던 기억이 흐려져 오래전 일처럼 어렴풋하다. 머리는 가물가물하지만 신기하게 마음은 기억하고 반응한다. 누군가 아기와 행복한 모습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 찾아온달까.



'괜찮아지는 날이 올까?'라고 묻던 2달 전 나에게 지금 나는 대답한다. 괜찮아지는 날은 온다고. 하지만 그 일을 떠올렸을 때 아무렇지 않은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불행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날'이라는 건 의미가 없을 만큼 당신은 큰일을 겪어내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나 역시 지인들에게 받았던 축하와 안부는 어찌어찌 거둬들였지만,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은 못 본 척하고 있다. 아직 마미톡을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 마미톡에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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