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습관이어서
내가 ADHD가 아니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이유는 다니던 병원의 선생님께서 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아파서 기력이 없어서 그랬나부다. 조용한 성향이라 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동네 병원이라 ADHD환자보단 우울관련 환자가 많이 오고. 예전엔 성인은 ADHD 진단을 안내려줬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극복하기 위해 진짜 많은 것을 해왔는데, 그것이 효과적으로 기능해서 그런 것 같다. 좋은 정신신경과 선생님이셨지만. 그래서 더 진단이 늦을 수도 있었다. 동네 병원 특성상 오진을 할 수도 있으니, 혹시 의심된다면 빨리 검사받고 광명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억. 생각해보면, 나는 그랬다.
시험 볼 때면 언제나 가장 빨리 풀고 엎드려 있었다. 다시 문제를 푸는 게 정석이지만, 한 번 본 문제를 또 보는 것은 극한의 지루함이었다. 시험 문제도 나에게는 컨텐츠였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그런 의미에서 오답 노트도 거의 하지 않았다. 만들다가 지치면 그냥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를 많이 미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나 말고 누가 날 좋아하나 싶어서 누가 뭐래도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좋아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 낙천적인 엄마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주로 자기에게 엄격한 사람들이 싫어했다. 타인을 좋아하고, 타인을 우선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를 믿지 못하고, 남이 맞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타인들이 다 나를 부정했다. 아니라고 했다.나는 나를 좋아하는 것은 맞는가?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들에게 밀리면서 '왜 나를 싫어하지? 딱히 해를 끼치지도 않는데. 열등감인가? 왜? 내가 더 힘들다고!' 하며 괴로워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형편인데, 아무런 근거 없이 더 핍박받은 느낌이 있다.
업무를 할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생각이 많아서 효율이 떨어졌다. 작업기억력도 부족해서, 일하는 동안 열심히 필기하고 들었지만 자주 실수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빠짐없이 필기하고 많이 필기 하는 걸 자랑으로 삼았는데 아니 이것도 중요한걸 구분 못해서 그런거잖아!
항상 기력이 없어서 졸렸다. 집중을 유지하기 위해 오디오북을 듣거나 드라마 소리를 켜 놓고 작업했다. 하지만 이것도 계속적으로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본래의 테마에서 벗어나 삼천포로 빠진 나의 인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물어보면 손을 번쩍 들고 맞추는 걸 잘하는 게 내 자랑이었다. 그것이 ADHD적 특성이었다니! 책을 많이 읽어서 자주 맞추었다. 틀리면 어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남들은 틀리면 부끄러워하고 이목집중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나는 틀리는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자의든 타의든 이목집중의 삶을 살았으니까. 그리고 조용히 관심을 끄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언제나 발표왕이었다.
회의 시간에도 사람들이 왜 말을 안 하지? 그냥 이런저런 게 빤히 보이잖아! 하고 생각했다. 그걸 몰랐다. 말하는 사람이 응당 져야하는 책임을 지기 싫어서도 있지만, 말하는 것 자체가 고역인 사람도 많다고 한다.
무언가를 흘리거나 떨어뜨릴 때, 주변 사람들은 보통 크게 놀라고 호들갑을 떤다. 나는 그들이 물건을 과하게 아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는 일반인에게는 흔하지 않은 일이므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상황이 매일 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 크게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실, 이런 일들이 너무 자주 발생해서 하나하나 슬퍼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바로 플랜 B로 넘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그냥 계속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여러 개 사두고 잃어버릴 것을 늘 가정하는 슬픈 습관도 다 ADHD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노션 문서를 만들고 계획부터 세우는 편이다. 도피하기 좋기 때문도 있겠지만, 순서를 하나하나 생각해야 우선순위를 잘 모르는 내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J가 아닌 이유는 아마도 계획을 잘 안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이름을 기억 못하는 것도 ADHD 증상이었다니! 진짜 사람 이름을 기억 못하고 그래서 반이 바뀔 때, 일자리를 옮길 때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그냥 그런 캐릭터를 잡고 살았다. 그리고 나도 힘든데, 왜 그러냐고 하는 피해망상도 좀 있었다.
하지만 사실에 근거해 이런 상황들을 설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사정을 남들이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억울함을 느꼈다. 전반적으로 보면, 나도 남도 예상치 못한 어그로를 많이 끌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조금 어긋난 행동이 많았기 때문에 '저 사람 특이하네'라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