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장에서 매달리기 0초인 사람이 나였다.
클라이밍을 배운 후 영화 '엑시트'를 다시 보았다.
극장에서 봤던 영화였다. 넷플릭스에도 있더라고. 맨 앞의 철봉 장면이 인상 깊었다. 나는 턱걸이를 단 1회도 하지 못한다. 체력장에서는 늘 철봉 매달리기 0초가 나왔던 사람이다. 그랬던 나도 클라이밍을 하고 나니 매달리기가 가능해졌다. 죽을 것 같을 때 1초 정도 더 매달릴 수 있더라고.
다시 보니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 야외에서 리드 클라이밍을 한다든지(나는 아직 리드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루트파인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든지, 손에 땀이 나니 초크를 잘 챙긴다든지, 카라비너가 나온다든지 하는 부분들. 무심히 넘겼던 장면들이 이제는 "아? 알지 알지~" 하며 흐뭇한 미소로 보였다.
생존과 탈출을 위한 몸의 기술과 자세들이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진짜 클라이밍의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농담으로 디스토피아 오면 물리력 있는 사람만 살아남을 거야~ 하고 말하곤 했다. 매드맥스의 워보이들도 차 밑에 거꾸로 매달리더라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들이 내 일상 속 클라이밍 경험과 겹쳐 보여서. 재난 상황 시 근력이 없으면 죽는다! 하며 운동하는 보람을 더 찾았다.
사실 나는 턱걸이에 로망이 있다. 복수극을 좋아하는데, 주인공들이 간담상조하며 몸을 만드는 장면에는 꼭 팔굽혀펴기와 턱걸이가 등장한다.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도, 올드보이의 오대수도, 킬빌의 브라이드도 복수를 다짐하며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땀을 흘린다. 나도 복수하고 싶은 게 많은 걸까?
그들의 고통과 땀은 단순히 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진짜 생존을 위한 몸의 단련이다. 어쩌면 나도 그런 준비된 힘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한 신체적 강함을 넘어선다. 그것은 어쩌면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턱걸이에 대한 로망이 단순한 운동이 아닌 나만의 다짐이 되고, 작은 성취의 시작이 된다. 40이 넘어도 인생에서 도전해 볼 게 이렇게 많다.
그래서 오늘도 매달리며 나만의 작은 도전을 이어간다. 비록 복수는 아니지만, 하루하루의 작은 승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