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낙낙 Nov 18. 2024

약 안가져온 날.

ADHD때문에 약을 먹는데 ADHD라서 깜빡한다. 

출근해서 10분도 안 돼서 문득 생각한다.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지?" 


그러다 이내 깨닫는다. 아, 약을 안 먹었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 실수가 더 자주 일어난다. 여성분들에게는 생리 전이나 생리 중의 '나사 빠짐'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정말 약을 깜빡하고 출근한 날은 너무 힘들다.


약을 먹는다고 하면 친구들이 종종 묻는다. "그거 계속 먹어야 해?"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약은 커피 같다고. 하루 동안만 효과가 있는데, 커피랑 비슷한 거지. 커피를 마시면 잠은 깨지만 그 효과가 하루만 가니까 매일 마시잖아? 약도 마찬가지야. 안 먹고 살 수는 있지만, 먹는 게 훨씬 낫기 때문에 계속 먹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친구들도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직장인이 커피 없이 일 할수 있나요? 약을 안 먹은 날은 도대체 왜 이렇게 일도 많고 졸음도 몰려오는 걸까? 커피를 마셔도 아무 소용이 없다.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약도 없이 이렇게 살았다고? 어쩐지 커피를 사발로 드링킹하고 입에 달고 살았어지.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스스로가  고맙고,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다. 과거의 나에게 "정말 고생했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요즘에는 이런 뻔한 위로라도 나에게 해주는 편인데, 이상하게 큰 위안이 된다.


그제야 다시 생각이 돌아온다. 회사에 비상약을 갖다 놓았어야 했는데… 이곳저곳 놓긴 하지만 또 너무 놓긴 그렇고 비상약을 쓸때도 많다.. 그치만 잘 까먹죠.. 허허 내가 그렇지.


사실 나는 내가 병을 크게 숨기지 않는다. 스스럼없이 밝히는 편이다. 하지만 많은 책에서는 회사에서는 이런 걸 밝히지 말라고 조언한다.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남들도 하는 실수를 병때문에 그렇다고 계속 오해받을 수 있다고. 그 말이 맞긴 맞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아요"라고만 말하며 일을 했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실이긴 하니까.


그래도 이상하게 오늘따라 일이 많았다. 약도 안 먹은 날 이렇게 일이 몰리는 건 무슨 일복인지. 그래도 결국 잘 견뎌냈다. 다 해냈다. 잔업 없이 퇴근도 했다. 대견하다, 나. 앞으로는 꼭 약을 회사에 비상용으로 준비해둬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도 반년 동안 약을 네 번 정도 깜빡한 건, 나름 잘해온 거겠지. "그래, 다음에는 더 잘하자." 이렇게 또 스스로를 위로하며 하루를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중간 중간 쉬면서 끝까지 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