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그 일 주변의 것들은 자연스레 빼진다.
관심을 더하는 일은 더디지만 쌓여가고, 쌓인 일은 무너지며 서로 부딪혀 몇 번이고 되짚어 합쳐진다.
일에 빠진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방식은 문학적이다.
다만, 쓰이는 언어는 '수의 세계'다.
감정이란 것은 원체 복잡하여 있는 듯 하면서도 존재를 찾기 어려우니 제대로 명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다만, 온전히 그 세계로만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르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과학의 소재다. 당신은 수많은 숫자와 기호를 통해서 비교 당하고, 빠지고, 더해지고, 나누어지며 곱해진다. 수식을 정하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나를 자를 지 아니면 붙일지 이미 당신은 알고 있다. 당신은 답을 알고 있다. 이렇게 바라본 당신을 설명하는 것은 몇 센티의 키와 몇 킬로의 몸무게를 포함한 삶의 궤적 전부이나, 당신의 숫자를 안다해서 당신을 알 수는 없다.
당신을 위해서,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 내일의 태양을 간직한 마음은 몇 마디의 문장으로 튀어나와야 온전해질까?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겐 문학이 필요하다. 숫자와 수식은 주어졌으니까 온전히 그 재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고백 편지의 내용은 대부분 머리를 쥐어짜낸 나름의 표현들로 채워진다. 그 이야기는 제각기 다르다. 감성은 주류 문화에 물드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편지에서 빠지면 안되는 게 있다면 '어떻게 당신에게 빠지게 되었느냐'는 물음이다. 당신의 질문을 미리 써두는 이유는 빠지는 이유가 개개의 사랑을 보편적이면서도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의 결과는 동일하다.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고 다른 선택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랑은 스스로가 '고유한 것'이기를 강렬하게 희망한다. 때문에, 이야기가 만들어져야만 한다.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그들의 사랑이 '영원한 사랑'이라는 하나의 선택지만 고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그들의 것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별을 전제한 사랑은 너무 슬플 것 같으니까.
빠진다. 사랑의 수식은 제각기 다르다. 누구는 누구를 더하고, 누구는 남은 사람들을 빼는 것으로 자신만의 수식을 완성한다. 수식은 등식과 부등식을 모두 포함한다. 값은 한없이 달라지고, 때론 그 변화에 견디기 힘들기도 하지만 식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