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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 Oct 12. 2022

어색해 죽겠지만

친구가 생겼다

솔직히 말한다. 나는 친구를 잘 못 사귄다. 남에게 다가가는 게 어색해 죽겠다. 한 동네에만 쭉 살았던 초등학교, 중학교도 어려웠는데 심지어 고등학교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가는 바람에 어렵게 사귄 중학교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학창 시절 절정의 두려움을 맛보았던 것 같다.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거나 대체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었고, 수업이 끝나면 가차 없이 집으로 사라졌다.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절대 특성화 고등학교에 가지 않을 테지만 유일한 수확을 떠올리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다.


"나 네 첫 만남 아직도 생생해."


지금은 10년 지기를 훌쩍 넘은 친구와 학창 시절 얘기를 할 때면 웃음을 터뜨리며 꼭 빼놓지 않고 얘기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아마 첫 영어 분반수업 때였던 것 같다. 나와 친구는 둘 다 A반으로 배정이 되었는데 우리 반인 7반이 C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A반인 9반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래도 나름 얼굴을 익혔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생판 모르는 8반과 9반 아이들을 피해 7반 아이 한 명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뜸 뒤로 돌아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나 머릿결 진짜 좋지?"


그렇다. 정말 딱 저렇게 말했다. 친구가 언급할 때면 진짜? 내가 그랬다고? 라며 얼버무리기 바쁘지만 사실 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의 모순적인 성향이 드러난 일화기도 한데, 나는 낯선 사람이 두려운 한편 너무 좋아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말 그대로다. 남에게 다가가는 게 어색해 죽겠는 나와 다가가 말을 걸고 싶은 나가 매 순간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소리다. 대체로 어색해 죽겠는 나의 승리로 끝나는 이 싸움은 그날 어쩐 일인지 말을 걸고 싶은 나에게 승기를 넘겨주었고, 그런 일이 좀처럼 없었던 탓에 겨우겨우 짜낸 첫마디가 자기 자랑이었다는 제법 처량한 이야기다.


"엄청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겠다. 근데 왜 나랑 친구가 됐어?"


"아니, 이상하진 않고 웃겼어. 귀여웠어."


친구는 절대 이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글쎄, 나 스스로 떠올릴 때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왜 저래?" 싶은 장면일 뿐이다. 그 후에 그 친구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읽는 걸 즐기고,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에 문화적 접점이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되짚어볼 뿐이다.






'친구'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얼굴이다. 나에게는 고등학생 때 만난 그 친구가 그러하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얼굴이 친구라는 단어 뒤에 숨어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이다. 어떤 단어들은 각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고, 가끔은 서글프다. 평생 내가 그 단어에게서 그 얼굴을 떼어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할 때가 그렇다.


나는 고등학교라는 단어에서 이미 떼어낼 수 없는 얼굴을 얻었다. 만약 누군가 중학생으로 돌아가 그 얼굴을 떼어낼 기회를 준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해달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마 나는 그 얼굴을 결국 떼어내지 못한 채로 살아감을 택할 것이다. 고등학교라는 얼굴 안에 '친구'라는 얼굴의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에. 내게 그 친구를 잃는 것은 곧 '친구'라는 단어를 잃는 것과 같으므로.


내 10대의 불행 중 하나는 학교를 잘못 선택했다는 것이고, 행운 중 하나는 그 학교에서 바로 내 10년 지기 친구를 사귀었다는 사실이다. 불행과 행운은 한 끝 차이가 아니라 나란히 붙어 온다는 사실은 종종 나를 괴롭게 한다. 불행임을 알면서도 차마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의 행운이 너라는 것을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키보드가 망가졌다고

당신에게 편지를 써서

이메일을 보내면

당신은 알아볼 수 있을까요


나는 매일매일 고장 난 키보드로

당신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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