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올가을엔 패션도 케이크도 다 말차일까
녹차보다 떫은 말차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던 저도 이번 가을, 말차 라떼를 두 잔이나 샀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편의점, 카페, 베이커리, 심지어 패션 화보까지 말차 무드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브랜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말차’를 내놓을까요?
올가을 F&B 신상 소식을 보면 한 가지 흐름이 눈에 띕니다. 바로 ‘말차코어’. SNS에서는 #말차코어 해시태그가 빠르게 확산되며, 인스타그램 피드가 초록빛으로 덮이고 있습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나요? 딱히 선호하지도 않았건만, 밤, 딸기, 망고맛, 심지어 벚꽃 테마까지 시즌 별 유행을 목격한 경험요. 흐름에 휩쓸려 계절 한정 과자라도 샀다면 브랜드의 '코어전략'이 먹힌 증거죠.
여름에는 토마토를 닮은 소품, 디지털 굿즈, 문구까지 '토마토코어'가 해시태그를 타고 인스타를 점령했습니다. 이젠 가을맞이 코어도 새로운 옷을 입을 때가 온거에요.
스타벅스는 가을 한정 메뉴로 ‘말차 글레이즈드 티 라떼’를 선보였고, GS25·CU 같은 편의점 PB 디저트는 말차 롤케이크, 말차 마카롱을 줄줄이 내놨습니다.
패션 업계도 말차의 오묘한 초록빛을 외면하지 않았죠. 이자벨 마랑은 이번 F/W 시즌에 카키·민트 계열 아이템 물량을 전년 대비 3배 확대했습니다. 또 슈즈 브랜드 킨(KEEN)은 민트, 라임, 올리브 컬러 제품을 늘리며 초록빛 무드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말차는 새로운 재료가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하죠. 그런데도 다시 유행처럼 돌아온 이유는 맛보다 무드에 있습니다.
초록빛 컬러가 주는 ‘힐링’ 이미지
계절과 맞는 편안한 무드
사진 찍었을 때 가장 잘 받는 톤
소비자가 사는 건 맛이 아니라 “나도 이 계절의 무드에 참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게 바로 코어 마케팅의 힘이죠.
그렇다면 ‘OO코어’라는 말은 누가 정할까요? 팬톤 컬러처럼 매년 회의라도 하는 걸까요? 사실 정답은 소비자와 브랜드의 합작품입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먼저 “말차코어” 같은 말이 유행처럼 쓰입니다. 기업들은 이 밈을 캐치해 제품 콘셉트와 광고 문구에 반영합니다. 아주 빠르게요. 트렌드 리포트나 전문 매체가 정리하면, 이제 말차코어는 공인된 키워드처럼 굳어집니다. 결국 밈 + 전략 + 미디어가 합쳐져 하나의 계절 세계관을 만드는 셈입니다. 밈, 숏츠로 본 말차를 쉽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게 바로 브랜드의 전략이죠.
당장 마트만 가도 새로 나온 말차맛 디저트가 가득합니다. 개인 카페도 말차 유행을 무시할 수 없죠. 온 국민이 말차에 질리고 새로운 코어가 등장할 때까지는요.
브랜드들이 다 함께 말차를 내놓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시에 쏟아져야 소비자가 더 강하게 “나만 안 사면 뒤처지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FOMO(Fear Of Missing Out) 전략이죠. 소비자는 맛보다 ‘참여감’과 ‘인증감’ 때문에 구매합니다. 말차 라떼 한 잔, 말차 케이크 한 조각이 단순 디저트가 아니라 시즌 티켓이 되는 겁니다. 더 많은 좋아요와 리그램을 받기에 딱 좋죠.
말차 디저트는 5천 원 안팎의 가격. 큰 지출은 아니지만, 기분 전환에는 충분합니다. 전형적인 ‘작은 사치’ 소비죠. 그리고 소비자는 SNS에 올립니다. 재미있는 건 F&B를 넘어 패션까지 말차 무드를 차용한다는 점입니다. LF·이자벨 마랑, 프리미아타 같은 브랜드들이 초록빛 무드를 FW 컬렉션에 녹여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OO코어는 산업 경계를 넘나드는 집단적 무드 브랜딩이 된 겁니다.
말차코어는 단순히 말차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시즌 무드에 참여했다는 인증 욕구가 핵심이에요. 그렇다면 이번 겨울과 2026 봄에는 어떤 OO코어가 등장할까요? 저는 다시 딸기철이라 #딸기코어 #핑크코어를 조심히 바래봅니다. 겨울 딸기가 너무 맛있으니까요. 브랜드들은 이미 2026 코어까지 준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음 글에서는〈2025 소비 트렌드 정리>를 다뤄볼게요. 라이킷과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