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편지
항상 경쟁이 버겁고 힘들어. 경연이나 대결에서 이겨본 경험이 많지 않거든. 내 전공이고 좋아하는 일이고는 중요하지 않아. 무엇을 하든 항상 누군가에게 지거나 뒤처지기 마련이지. 그래서인지 대외적으로 내가 무언가 잘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하기 어려워. 누군가 참견해서 나보다 잘할 수 있음을 증명할 것 같거든. 언젠가부터 나는 이렇게 말해버려. “그래, 뭘 하든 당신이 무조건 더 잘합니다. 대단하시네요, 당신이 최고예요.”
오륙 년 전부터였을까. 캔커피만 즐기던 나는 우연히 접한 드립커피(에티오피아 코케 허니 원두로 내린) 한 잔이 계기가 돼 커피에 빠졌어. 서울 주변의 카페들은 물론 대구나 부산의 카페들도 찾아다녔지. 잘 알고 이해하고 있어서 좋아한 게 아냐. 원두마다 다른 향과 맛을 정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아직도 어려워. 그저 커피가 발산하는 향, 그리고 진한 갈색빛 음료에 담긴 다채로운 맛들이 너무 좋았을 뿐이야. 과일 같기도, 꿀이나 연한 홍차 같기도, 때로는 시나몬 같기도 한 맛들이 나를 점령해버렸어. 그래, 맞아. 난 완전히 커피의 포로가 됐어.
그렇다고 커피를 다루는 실력이 확 늘지는 않았어. 아직 전문적으로 배울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건지도, 손재주가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몰라. 몇몇 유명 카페에서 진행하는 커피 관련 강의를 찾은 적 있는데, 브루잉을 한 명씩 해보는 프로그램도 있었거든. 난 그때 손을 덜덜 떠는 바람에 망쳤어. 강사 선생님과 주변 수강생이 모두 나를 쳐다보는데 정말 창피했어. 그게 아직도 내게 상처로 남아 있어. 그 이후로 커피 관련 강의를 전혀 찾지 않고 있어.
난 누굴 쉽게 이길 수도, 내 능력을 증명할 수도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어. 그때부터 집에서 조용히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지. 드립커피(필터, 브루잉, 푸어오버 포함)를 다루는 카페들을 들러 조용히 커피를 마셔보고 마음에 들면 원두를 샀어. 그러고선 카페 인스타그램에 DM을 보내 드립 레시피를 물어보고는 그대로 따라해 보는 거야. 드립커피는 정말 신경 쓸 게 많아. 물의 종류와 온도, 원두의 종류와 갈았을 때의 굵기, 드립의 회전 방향과 속도, 서버나 드립포트의 종류 등 그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거든. 실수할 때도 많고 잘 몰라서 대략 비슷하게 맞출 때도 있어. 혼자서 하다 보니 내가 한 게 맞는지 확인할 수도 없어.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직접 내린 커피를 입 안에 넣어 우물거리다 보면 그 진득한 맛과 향이 가득 퍼지기 마련이지. 그게 바로 내게는 큰 행복이야.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혼자 즐기는 커피에는 그 어떤 경쟁이나 승부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아서 좋아. 누군가를 이기거나, 누구보다 나아 보이기 위해서 커피를 즐기는 게 아냐. 그냥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어서야. 사랑하는 커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더라고. 부엌 찬장에는 항상 서너 가지의 원두가 구비돼 있어. 오늘은 유난히 많아서 다섯 가지야. 단골 카페에서 두 개 종류의 원두를 사고, 휴가 때 들른 카페 중 두 곳에서 원두를 사고, 저녁에 즐기기 위해 디카페인 원두도 샀거든. 조금 부담스럽긴 한데 괜찮아.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직접 내려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저녁 식사 후 즐기는 디카페인 커피 타임은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야. 원두마다 모양과 색깔만 다른 게 아냐. 그 녀석들이 품고 있는 맛과 향도 각기 달라. 똑같은 생두를 썼더라도 어디서 로스팅을 했느냐에 따라 역시 또 달라지지. 알면 알수록 커피의 세계는 무한해. 넓고 깊어. 알면 알수록 어렵다고 느끼지. 하지만 싫지 않아. 이건 경쟁이 아니니까. 하루 중 두 번쯤은 아무 고민없이 원두를 고르고 갈고 커피를 내리고 마시면서 나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어. 네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