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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yeong Oct 17. 2023

나이가 들수록 얻는 건

매일 쓰는 편지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뭔가 보고 싶을 때는 유튜브 콘텐츠를 보거나 OTT 앱에 접속해. 긴 시간의 영화나 드라마는 주말에 보는 편이고 평일 퇴근 후 집에서 볼 때는 짧은 유튜브 영상들을 보지. 출퇴근길에는 억지로라도 책을 보려고 해. 평소에 책을 안 보다 보니까 그 시간만이라도 글자들을 들여다봤으면 하거든.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편협할 뿐 아니라 느려지는 것 같아.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가 이해 안 될 때가 많아(그럴 때면 난 원래 반골이라고 우기지만).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그 영상들을 보고 있자면 ‘난 누구이고 여긴 어딘가’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지. 그래서 보는 것만 보게 되는 거야. 그럴수록 알고리즘은 비슷한 것들만 추천해주기 마련이고 난 그렇게 편협함을 유지한 채 살아가겠지. 

 

물론 가끔은 그걸 깨뜨리고 싶을 때가 있어. 어제도 그랬는데, 집에 와서 밥 먹고 청소를 마친 후 소파에 누워 쉬면서 <최강야구>를 기다렸지. 그러다가 유튜브 앱을 켰는데 알고리즘이 한 여행 유튜버를 추천해주더라고. 11월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이라 영상을 몇 개 살펴봤는데 그것 때문에 추천해줬구나 싶었어. ‘캡틴 따거’라는 유튜버였는데 중국 축구 경기장을 찾아간 영상이었어. 중국 축구는 최근 성적이 좋지 않지. 그 영상에서는 말레이시아와 경기를 펼쳤는데 결국 1:1로 비기더라고. 중국 팬들은 당연히 화가 나서 욕을 해댔고, 그 유튜버는 그걸 보며 웃고 있었어. 평상시 같았으면 남의 슬픔에 웃느냐고 생각했겠지만 이건 아니었어. 무엇보다 그의 웃음이 너무 해맑았기 때문이야. 악의가 없는 웃음이랄까. ‘사람이 좋아서 여행한다’는 소개 문구도 마음에 들더라고. 가만히 보니 인상이 푸근하고 말을 조곤조곤 잘하더라. 

 

그러고서 그의 영상 몇 개를 더 봤어. 중국 편을 유심히 봤는데 시골이나 티벳의 불교 학교처럼 여행객이 쉽게 가기 힘든 곳을 찾아다녔어. 시끄럽지 않게 적절한 톤을 지닌 그의 목소리는 편안했고, 그의 영상에 비친 사람들은 대부분 선해 보였어. 그건 아마 그 유튜버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어. 이 사람은 특히 환한 웃음이 매력적이야. 환하게 웃으면 안경 너머의 갈매기를 닮은 두 눈이 밝게 빛 나지. 덩치 큰 남자 유튜버에게 이런 표현을 쓰게 될 줄은 몰랐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었어. 그의 영상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인간’이란 게 이런 거구나 느꼈던 것 같아. 

 

그러고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봤는데 얼굴이 찌푸려졌어. 그럴 만해. 낯선 사람을 만나면 긴장부터 하는 데다 매일 만나는 사람에게도 무심한 편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얻게 되는 건 고독과 편협함뿐이야. 좁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나쁜 인상을 남길 필요는 없거든. 난 그동안 착각을 했던 것 같아. 좁은 인간관계를 추구한다면 이래도 된다고 말이야. 실은 그게 아닌데 말이지. 남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어. 존중하려면 조금 더 넓게 봐야겠지. 조금만 고개를 더 옆으로 돌리면 나처럼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보여. 그들 모두 각자의 고민과 불안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린 가깝지는 않더라도 큰 범위에서 보자면 ‘동료’라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동료와 마주친다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웃어서 나쁠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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