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편지
겁이 많았어. 초등학생 무렵부터 잠을 잘 때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거나, 몸을 한쪽으로 돌리지 못했지. 혹시나 다른 쪽에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나 나를 노려볼까 봐 무서웠거든. 원한 서린 처녀 귀신뿐이 아냐. 강시, 흡혈귀, 좀비 모두 두려워했어. 귀신들이 떠오르는 밤이면 불 끄는 게 무서워서 전등불을 켜고 잠든 날도 많았지. 근데 나는 그 긴장감이 좋았나 봐. 커서도 스티븐 킹, 러브 크래프트 같은 작가의 공포소설을 즐겨 읽고 <13일의 금요일>이나 <할로윈>, <나이트메어> 같은 공포영화 시리즈를 전부 챙겨봤으니까. 쫄깃한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타 들어갈 듯한 감각, 그게 참 좋았어. 이런 것도 쾌락의 일종이었을까.
요즘 공포영화는 내게 간식이나 농담 같아. 눈을 부릅뜬 귀신을 보고 있으면 ‘분장하느라 힘들었겠다’ 내지는 ‘저 연기하고 얼마나 받았을까’ 같은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아. 유튜브에는 옛날 콘텐츠들이 많아서 <토요 미스터리 극장> 같은 90년대 프로그램들도 자주 보는데, 그냥 코미디 같아. ‘와! 저기서 귀신이 나타나겠구나’ 하며 귀신 나오는 타이밍을 예측하고는 하지. 요즘 공포 콘텐츠들도 마찬가지야. 도통 뭐가 무섭다는 건지 모르겠어. 최근 <심야괴담회>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지만 어디서 무서워해야 하는지, 왜 장르가 ‘공포’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
그보다 무서운 건 따로 있어. 돈? 그래 맞아. 돈이 무섭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그래서 열심히 벌고 있지만 난 여전히 각박하게 살고 있으니까. 지출을 줄이려고 음식값을 줄이기도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아.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평일 낮에도 어디든 해외로 떠날 수 있는 부자들이 부럽지는 않지만, 내 신세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야. 사람? 그래, 그것도 맞아. 난 사람들이 정말 무서워. 정확히는 ‘돈에 얽힌 사람들’이 두렵지. 돈 때문에 가족도, 친구도 버리고 마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밤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해. 다들 ‘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돈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변할지 몰라. 당장 너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쉽게 장담할 수는 없을 거야.
그래도 이것들이 가장 두렵지는 않아. 내가 가장 마주하기 싫은 건 운명이야.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 귀신이나 사람, 돈을 피해 무사했다고 해도 나는 무한히 살 수 없으니 말이야. 이렇든 저렇든 내 육신은 서서히 병들겠지. 약해진 육신은 내 마음마저 황폐화할 테고, 그때쯤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릴지도 몰라.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 삶이라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테지. 피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두려운 거야. 이건 누구도 막을 수 없잖아. 이런 생각에 몰두할 때면 차라리 귀신이 존재하는 게 낫겠다 싶어. 이번 생에서 죽는다 해도 다른 세계에서 나는 ‘어떤 존재(이번 생에서는 귀신이라 불리는)’로 불리며 살아남는다는 뜻이잖아. 그게 사실이라면 황천길도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겠어.
욕심인지도 모르지.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삶에 집착한다며 나무라고 비웃어. 그러면 안 되는 거니? 이번 생은 한 번뿐인데, 지금 이 순간에 ‘나’로 살아가는 것은 단 한 번뿐이잖아. 그렇게 소중한 한 번의 삶을 놓치기 싫은 게 그렇게 조롱당할 일인가? 잘 모르겠어.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고, 사람들은 더 알 수 없어.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말했듯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는 한 번에 불타는 것이 낫다’는 걸까. 난 서서히 사라질 거야. 최대한 오래 버티면서 더 많은 세계를 목격할 셈이야.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지고 맡고 생각하면서 쓸 거야. 그게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단 한 가지의 임무는 아닐까.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 난 이미 내게 그렇게 주문을 걸었는걸. 넌 오래 살면서 체험하고 느끼는 모든 걸 써야 한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