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편지
사람들은 추억을 이야기할 때 주로 학창 시절을 말하더라. 남자들은 거기에 ‘군 복무’ 시절이 추가되지. 나 때는 이랬고 저랬고, 어디서 즐거웠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지. 너도 그런 추억을 떠올릴 때가 있니? 즐겁겠구나? 행복하니? 나에게는 그런 추억이 없어. 학창시절에는 왕따를 당했고, 군 복무 때는 엄청 맞았거든. 그 시절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 떠올리는 게 버거워. 악몽이지.
중학교 1~2학년 무렵이었을까? 내가 왜 맞았는지, 왜 괴롭힘을 당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그 아이들에게 나는 ‘장난감’ 같았다는 거야. 작고 통통하고 볼이 빨간 나는 키 순서대로 교실에 앉던 시절 두 번째 줄에 있었어. 내 짝과 앞줄의 두 명은 금세 친구가 됐어. 그리고 나를 ‘갖고’ 놀기 시작했지. 수시로 만지작거리고 때리고 뭔가를 시켰어. 수업시간에 무슨 행동을 하라든지, 어디를 다녀오라든지, 뭘 사 오라는 거였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혼이 나야 했고. 내 일기장에 그 이야기를 쓰고 집이 발칵 뒤집어지면서 사건은 대략 해결이 됐어. 하지만 그걸로 다 마무리된 건 아니었어. 내가 입은 상처는 다 지워지지 않았고, 사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나는 사람들과 거의 어울리지 못했어. 항상 의기소침하거나 우울한 표정을 지었지. 그건 대학생 때도, 직장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야. 지금도 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해.
군대에서는 대놓고 맞았지. 2001년 1월 2일 의정부 보충대에 입소한 나는 며칠 후 6사단 신교대로 갔어. 몇 주간의 훈련 후 6사단 19연대 2중대 3소대로 자대 배치를 받았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내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무서웠어. 날 보호해준다거나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어.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을 잡아먹을까 궁리하는 늑대들 같았지. 백일 휴가 전까지 신병은 노란 딱지를 붙이고 다녀. 보호해줘야 한다는 뜻인데, 난 정확히 그 딱지를 뗀 후부터 맞기 시작했어. 누구 하나가 잘못을 저지르면 단체로 모여 머리를 박았고, 때로는 대놓고 따귀를 맞았어. 체력이 약하고 운동신경도 약했던 데다 표정이 우울했던 나는 모두의 표적이 됐어. 노래 불러봐, 춤춰 봐, 이리로 굴러봐, 얘한테 욕 좀 해봐(당연히 나보다 선임이었던) 등등 별별 요구가 다 있었고 난 그걸 싫어하면 안 됐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야 했지. 자대 배치를 받은 후 며칠 지나지 않았던 밤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 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장 옆에서 자고 있었거든. 그런데 침낭 안으로 갑자기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왔어. 어이구, 우리 신병 고추 좀 만져보자. 가만있어봐! 몇 초뿐이었지만 내 거기를 만지작거리던 순간은 아직도 끔찍한 기억이야. 그 선임은 며칠 지나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전역했지. 이등병 때 맞았던 외부 전술 훈련에서는 밤새 얼차려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 맨몸으로도 느리게 달렸던 나는 완전군장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느렸지. 공격 전개에서 한참 뒤처졌던 나를 혼낸다는 이유로 한 텐트에 있던 선임이 나를 텐트 밖으로 불러냈어. 그러고는 웃는 얼굴로 밤새 내게 온갖 기행을 시켰어. 머리 좀 박아볼래? 그러고는 나를 발로 밀어 넘어뜨렸고. 기억도 안 난다. 칫솔로 맞고, 전투화로 맞고, 철모로도 맞았던 것 같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다음 훈련에 임했던 기억이 나네.
그 밖의 이야깃거리는 수도 없이 많지만 결론적으로 그 시절 나는 지옥에서 살았다는 게 핵심이야. 나는 내내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여긴 지옥이고,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말이야. 그때는 전역하면 모든 게 다 끝난다고 생각했지.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난 상병 계급이 되면서 반대로 가혹행위의 가해자가 됐어. 이게 진짜 반전이지. 그토록 괴롭힘을 당하던 피해자가 말이야. 근데 군 시절에 그런 일은 흔했어. 난 누군가를 때린 적은 없어. 하지만 가혹행위나 얼차려에는 여러 번 관여했지. 누군가를 말로 괴롭힌 적도 있고. 어쩌면 내 후임 중 누군가는 나를 끔찍하게 생각할 거야.
그 모든 일이 상처로 남아 있어. 학창 시절에는 일방적인 피해자였는데, 군 시절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였거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거야. 난 이 지옥의 일부분이었던 거니까. 그게 내내 내 청춘에 달라붙어 있었어. 덕지덕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기억들은 수시로 날 찾아와 희롱하고 놀려댔어. 샤워하다가 갑자기 울고, 지하철에서 멀쩡히 앉아있다가 울컥하기 일쑤였지.
그러니까 남들에게는 ‘햇빛 쏟아지는 날들’로 가득했던 청춘이 내게는 ‘구름이 가득 낀 채 비만 쏟아지는 날들’이었던 셈이야. 뭔가 좀 억울했지. 내게는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 없으니까. 지옥에서 한철을 보내고 간신히 벗어난 것 같은데, 대신 이곳도 심상치는 않아. 먹고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간절히 버텨야 하고, 누구보다 잘났고 더 나은 사람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장 같거든. 그게 참 괴로운 거야. 나는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아. 싸우기도 싫고.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끊임없이 요구받아. 경쟁해서 이겨라, 물리쳐라, 맨 앞에서 지휘하라. 여긴 더 넓은 의미의 지옥 같은걸.
그럴 때마다 혼자서 생각하지. 이건 나 혼자만의 놀이라고 말이야. 난 상대방과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목표치에 도달하고자 여러 도구와 방식을 이용해 놀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 이건 놀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 제발 내게 싸우라고 하지 말아줘. 미안, 나는 그저 놀고 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