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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yeong Oct 14. 2023

너무 걱정하지 마

매일 쓰는 편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은퇴 후 부쩍 친해지셨어.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는 쉽게 화내다가도 금세 풀리는 다혈질이었어. 지금도 크게 다른 것 같진 않지만 요즘과 다른 점은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혈기왕성하고 거칠었다는 거지. 집안의 창문 여러 개를 깨뜨렸고 그때마다 이혼 이야기도 나오고는 했지. 큰아들이었던 나는 벌벌 떨었던 것 같아. 이혼 가정의 아들이 된다는 게 두려웠거든.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을 거야. 아주 작게 운영했던 비닐 인쇄 공장은 주중과 주말 할 것 없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거든. 게다가 할머니와 어머니와의 관계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고, 두 자식(나와 여동생)은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 부모님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쌓일 일이 너무 많았던 거지. 그래도 살아야 했어. 친척들은 모두 가난했고, 나와 여동생은 부모님만 바라보고 있었거든. 

 

한창 좋았던 시절에 결혼해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고 고통받고 스트레스를 참는 데 소비했던 셈이야. 두 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아버지의 폐암 수술이었어. 폐암 2기를 진단받았던 아버지는 그날부터 모든 일을 중단하고 치료에만 매진했어. 어머니도 간호를 위해 공장 일을 멈추었지. 아버진 폐의 일부분을 잘라냈고 지금은 기나긴 회복의 시간을 맞고 있어. 다른 부분으로 퍼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 

 

작은 비닐 인쇄 공장의 업무 환경은 정말 좋지 않아. 특히 코를 찌르는 잉크 냄새를 맡고 일한다는 건 환자에게는 나쁠 수밖에 없지. 요즘 두 분은 운동하고 편히 쉬면서 일과를 보내고 있어. 그래서일까? 두 분 표정이 한결 편해 보이더라고. 게다가 이젠 좀처럼 싸우는 일도 없어. 함께 운동하고, 밥 먹고, 약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그 일들은 마치 판타지처럼 느껴질 정도야. 역시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 하나 봐. 물론 아버지는 여전히 고집이 세고 성격이 급해. 퉁명스럽고 지나치게 솔직한 어머니의 말투도 변하지 않았고. 하지만 표정과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정화되는 기분이 들어. 

 

그러니까 난 그 이후부터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야. 한동안 ‘가족’은 내게 지우거나 없애버리고 싶은 존재였거든. 혈연으로 맺어졌다고 다 친한 건 아냐. 꼭 행복할 필요도 없고. 가족끼리도 성격은 안 맞을 수 있거든. 적절한 거리를 둬야 더 가까워지는 가족도 있는 법이지. 어쩌면 나와 부모님이 그런 사이 같기도 해.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일도 잘 안 풀리는 것 같았고, 매일 누군가에게 분노를 쏟아냈어. 그런데 혼자 나가 살면서부터는 그런 일이 줄어들었어. 이제 나는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 가족을 자주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됐어. 혼자 살다 보니 외롭다는 감정에 휩싸일 때가 많긴 한데,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사치 같아. 혼자 나가서 살 여유가 있으니, 혼자서 지낼 환경이 되니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잖아. 

 

그러고 보면 부모님이나 나나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아. 바보 같지. 힘들 때는 죽을 것처럼 힘들고, 조금 편해지니까 ‘아, 괜찮은 삶!’이라고 느끼지. 그런데 이러는 게 우리뿐은 아닐 거야. 어쩌면 너도 마찬가지 아닐까? 죽을 것처럼 힘든 일이 닥쳤다고 너무 걱정하진 마. 그러다가도 금세 널 따뜻하게 감싸주는 환경이 네 앞에 나타날 거야. 사는 게 항상 힘들지만은 않아. 가끔은 좋은 일들도 있지. 설레는 일도 생겨나고 말이야. 가끔 나타나는 그런 행운 덕에 나는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겠어. 이렇든 저렇든 지금의 고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니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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