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불안을 껴안고 살지 않느냐”는 말이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불안은 꼭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만 골라서 찾아온다. 중요한 PT가 있다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특히. 이건 내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며, 망친다고 별 탈은 없으니 그냥 편안히 마음먹자고 생각해도 요동치는 심장을 어찌할 도리는 없다. 일이 무사히 풀렸다면 다행이지만, 그르치고 나면 기분은 당연히 좋지 않다. 그럴 때면 사무실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두 다리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다. 지하철 전동차 한 귀퉁이에 앉아 눈을 감으면 참고 있던 졸음이 와락 쏟아진다. 전동차 내 소음 덕분인지 본능적인 감각 덕분인지, 도착역 무렵이면 눈이 떠진다. 주섬주섬 가방을 어깨에 메고 전동차 밖으로 나오면 내가 머물렀던 그 자리가 그리워진다. 이렇든 저렇든 일을 마치고 나서 찾아오는 평온함만큼 좋은 것이 없다. 망쳤다고 두려워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일단 직장상사와 마주했을 때의 문제. 쏟아지는 잠은 나를 천국(혹은 극락)으로 데려간다.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쓰지 않은 청주를 한 병 사서 집으로 돌아가면 그날은 비로소 완벽해진다. 청주를 내가 아끼는 (북유럽 브랜드에서 만든) 잔에 따르고 아침식사용으로 쟁여둔 견과류를 꺼내 한 움큼 집어 입안에 털어 넣는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참고 참았던 한숨이 온몸에서 삐져나와 방안으로 흩어진다. 술을 마실 때면 음악을 틀어놓는데 대개 자주 듣던 음악들이다. 그중에는 ‘어떤 날’의 노래들도 있다. 특히 <초생달>은 내 마음을 사정 봐주지 않고 흐트러트린다. “하얗게 타버린 또 하루를 난 위로하면서 술 취한 내 두 다리가 서성거리는 까만 밤”이란 노랫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 나는 잘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혼자 술을 마실 때에는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운다. 옆집에 들리지 않을 만큼의 데시벨로 혼잣말을 주저리 내뱉는다. 그렇게 한번 쏟아내고 나면 하루 동안 쌓여 있던 서럽고 불안한 마음과는 이별하기 마련. 너는 내 바짓가랑이, 팔소매를 붙잡고 서럽게 매달리지만 소용없지. 넌 날 더 이상 지배할 수 없어. 술 취한 내 두 눈이 방 안을 서성거리는 까만 밤. 오늘 밤은 길고 내일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때.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