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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Nov 26. 2019

3.67kg로 전하는 사람의 온도, 36.5℃

연탄봉사 후기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쯤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시인의 時, <너에게 묻는다> 中


연탄하면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누군가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의 한 구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드라마에 나오는 연탄 가는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연탄보일러가 많이 사라지면서 연탄은 간혹 사람이 북적북적한 금요일 밤, 삼겹살을 구워주는 용도로 밖에 만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연탄이 얼마나 쓰이는지, 어느 정도로 유지가 되는지, 이걸 진짜로 쓰는 사람이 많은 지 등에는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삼겹살집이 아니라 당장 시골만 내려가도 아버지께서는 연탄보일러를 쓰신다. 하지만 연탄보일러를 쓴다는 것만 알고 있지 실제로 그걸 갈아본 적도 없고, 한 장에 얼마인지 조차 몰랐다.


평생을(아마도) 가스 혹은 석유 보일러를 쓰는 집에서 자랐던 나는 연탄보일러, 그리고 연탄이 몹시나 생소했다. 이번 연탄 나눔 봉사활동을 다녀오고 나서야 연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Photo by Macau Photo Agency on Unsplash


흔히들 판자촌이라고 말하는 지역의 형편 힘든 집에서는 아직도 연탄을 많이 쓴다고 한다. 판자촌, 달동네, 쪽방촌 등으로 일컫어지는 이 지역은 드라마에서 한 번쯤 봤듯이 계단이 많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접근이 어렵다 보니 연탄을 사용하는 빈민층(주로 노년층) 가정에서는 연탄을 잘 비축해 놓는 것이 가장 큰 월동준비 중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김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분들이 옮기기에 이 연탄은 너무나도 무겁다. 보일러에 사용하는 22개의 구멍이 난 연탄은 한 개에 약 3.67kg, 쉽게 말하면 갓난아이 한 명의 무게에 버금간다. 이 3.67kg짜리 연탄은 불이 잘 붙어 유지가 된다면 하루 8시간 정도 집안을 데필 수가 있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면 하루에 적게는 2개, 많게 4개의 연탄이 필요하다. 하루에 2개씩, 한 달만 쓰더라도 총 무게 220kg에 달하는 연탄을 옮겨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옮긴다고 끝나지 않는다. 연탄을 창고에 잘 쌓는 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잘못 쌓았다가 연탄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4, 5일 치의 연탄은 그대로 시커먼 벽돌이 되고 만다. 


그렇다 보니 판자촌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한 겨울이 오기 전이면 연탄 봉사자들이 연탄을 직접 집에 옮겨드린다. 나는 이번 봉사에서 한 가구마다 200장씩, 10가구, 2천 장을 직접 옮겨드렸다. 


이 연탄을 옮기는 일은 보기보다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뉴스에서 릴레이 형식의 연탄봉사 장면을 많이 접하는데, 이는 사실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연탄도 “탄”이니 만큼 그 가루가 떨어지는 데, 릴레이를 하며 연탄을 나르게 되면 사람 손을 많이 타고 그만큼 연탄 가루가 많이 떨어진다. 


가루가 떨어지고 이걸 밟게 되면 물청소가 아니고서야 닦을 수가 없다고 한다. 높은 지형에 언덕이 가파른 판자촌에서 연탄을 닦아내기 위해 물청소라도 했다가는 저기 윗집이 흘려보낸 물 때문에 온 길이 물 천지가 되고, 더 나아가서 그게 얼어버려 자칫 위험천만한 빙상경기장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릴레이보다는 직접 사람들이 나르는 방식을 많이 택한다. 200개를 옮기기 위해 10명이 모두 동일하게 일을 한다면, 한 번에 2개씩 10번만 왔다 갔다 하면 금방 연탄을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딜 가든 힘든 일은 있는 법이다. 이걸 받아서 이쁘게 쌓는 역할을 맡게 되면 200개의 연탄을 모두 들어야 한다. '이왕 하는 봉사, 더 힘든 일로 보람차게!'라는 마음으로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허리가 망가지기 쉬우니 허리가 건강한 사람이 이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보고, 접하는 연탄봉사 릴레이 모습, 하지만 이런 봉사를 꿈꾸고 간다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출처 : 경남 데일리


'나 또한 이왕이면 힘든 일로!'라는 마음으로 연탄을 쌓는 일에 도전했다. 처음 50장 정도는 괜찮았지만, 허리를 폈다 숙였다 200장을 모두 쌓고 나니 정말이지 힘들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연탄 200장으로 가득 찬 창고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힘들었던 것은 모두 잊히고, 마치 내 연탄창고인 양 마음까지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전해준 연탄을 받고 좋아하실, 그리고 그 연탄으로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시는 분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내 마음속에 누군가 연탄을 지피기라도 해 준 것처럼 무척이나 따뜻해진다. 


내가 옮긴 것은 3.67kg의 연탄이었지만, 이걸 받은 사람에게는 36.5도짜리 사람의 온도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채운 건 연탄 창고였지만, 어쩌면 받은 분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웠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의 김장 봉사를 시작으로 연탄 봉사까지 비록 큰 도움은 아닐지라도, 잠깐이나마 누군가의 한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음에 몹시 감사한다.   


누구에게 한 번쯤이라도 뜨거운 사람은 아니었을지라도, 연탄처럼 누군가에게 조금은 따뜻한 사람일 수 있었기를, 내가 도운 이들이 부디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마음까지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빕니다. – 하노마 드림.


*Main Photo by Jaime Spaniol on Unsplash


P.S 만약 연탄봉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VMS(사회복지 자원봉사인증관리) 홈페이지를 통해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으니, 한번 들러보세요 :). 

P.S2 다음 봉사는 크리스마스 기념 산타분장 봉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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