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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May 22. 2018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제도로 보는 조선 흥망의 역사 -정병석-

 역사는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판단과 해석이 달라진다. 대부분은 역사학자의 시선이거나 철학자 또는 인문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되는데, 지금 이 책은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봤다. 그래서 조선이 어떠한 경제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는지 사회적인 분위기는 어떠했는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는 역사의 큰 물줄기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물줄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사상과 이념들이 포함된 제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권력자들의 지배 도구로만 활용되었는지 아니면 백성들에게 잘 녹아들어가 생기 있게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를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함께 들여다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작가는 상과대학을 졸업한 경제학자이다. 경제학자인 작가가 조선 후기 실학 서적인 『반계수록』,『북학의』,『경제 유표』등의 고전을 읽으면서 왜 이런 우수한 저서들이 읽히고 적용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경제학자의 개념에서 조선은 왜 무너졌을까?라는 의문은 폐쇄적이고 착취적인 조선의 제도의 문제로 귀결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한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고 쇠퇴하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 경제성장론이다. 경제성장론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살펴보면 한 나라의 경제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제도'이다. 제도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그중에서 국가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성격의 제도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저해되는 성격의 제도도 있다. 어떤 제도를 채택하느냐에 따라 경제가 성장할 수도 쇠퇴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조선은 제도 자체가 백성의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다. 백성이 잘 살 수 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정치를 제도의 바탕 위에서 실현해야 하는데 그럴 의지도 그럴 필요성을 권력자들에게 찾아볼 수 없었다. 사대부라는 허울에 갇혀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제도를 활용했다. 조선 창업의 이념은 성리학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실용과 백성은 빠지고 관념적인 덕치와 도덕에만 치우친 것이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같은 성리학을 신봉했지만,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에 학자들의 강조점은 크게 변했다. 즉 전기 성리학자들은 부국강병, 중앙집권의 경세론을 중시한 반면 후기 사림파들은 대의명분의 관념 철학을 더 맹신하여 부국강병론을 배격하고 향촌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도덕정치, 왕도정치에서 경제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이슈였다. 이것이 이미 활력을 잃어가고 있던 조선의 경제를 더욱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 간 근본 원인의 하나였다."


 대의명분,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치인'보다는 '수기'에 치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럽 서구 열강들처럼 경국대전에 기반한 법치국가의 면모는 갖추었지만 법보다 도덕이 현실을 지배하면서 법보다 주먹(현실의 주먹)이 우선시되었다. 이러기에 그나마 있던 제도도 유명무실하게 되면서 현실정치와는 멀어진 도덕만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철학 국가를 지향하게 되었다.


 두 번의 큰 전쟁을 아픔을 딛고 일어섰지만, 500년이라는 조선의 긴 역사가 변화의 물결을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그치게 만들었다. 조선 왕조가 망했어야만 했다. 여러 번의 민란과 우수한 왕들을 바탕으로 당쟁의 역사만이라도 지웠다면 그나마 나아졌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 이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세계정세에 눈 뜨는 세력이 집권했었다면 지금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을 넘어서 더 큰 무대에 서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학이 바탕이 되고 해금 정책 같은 부질없는 사대주의 정책을 접고 해상무역과 지방분권화를 통해 지방이 도시화라는 과정을 겪게 했다면 조선에서 천시하던 상공업이 활발하게 부흥했으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영국의 산업혁명처럼 되지는 못했을 지라도 혁명적인 변화와 역사의 물줄기의 흐름은 제대로 잡았을 것이다.


 역사에서 만약은 존재할 의미는 없지만 과거의 잘못된 폐단을 되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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