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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Feb 10. 2019

라면을 끓이며

김훈 산문집

왜? 제목이 '라면을 끓이며'일까?

라면은 가장 저렴하면서 서민적인 음식이다. 배고픔과 삶의 비애를 비유할 때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된다.'끓이다'라는 동사를 통해 먹고살아야 하는 서민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이미지가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으리라...


절판된 책을 묶다

이 책은 오래전 절판된 산문집과 그 이후의 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을 엮어서 출판한 책이다. 나름 순수한 국물 맛을 유지하려는 라면보다는 이것저것 섞여있는 짬뽕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김훈 작가의 이전 책에 비해서 글의 깊이와 감동은 조금 덜하다. 아마도 '칼의 노래', '자전거 여행'등의 대표작들에 큰 울림을 받았기 때문일 거다. 여러 산문집을 함께 엮으면서 흐름의 미학보다는 각각의 단절된 언어로 이해하려니 문맥의 끊김이 느껴졌다. 역동적 흐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읽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 책이다.


치열한 투쟁의 냄새가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물과 자연현상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깊이는 김훈 작가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자신이 느낀 깊은 혜안의 글이 공감과 탄식으로 전해진다. 그의 글은 여전히 산뜻했고 새로웠다. '추억은 슬프고도 따뜻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이제는 나도 추억이 연상되는 그림들이 많아졌다. 슬픈 추억들도 따스한 기억으로 변해 있음을 보면서, '새로운 슬픔으로 지나온 슬픔을 대신한다'는 말의 의미도 이해하게 된다.


글 쓰는 방식에서 여전히 저자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스럽게 좋아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냥 타이핑 치며 흔적을 지우고 없애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행적을 그대로 민낯으로 드러내는 매력이 있다. 온몸의 집중과 전율을 손끝에 받아 미세한 울림과 떨림이 다시 가슴과 머리에 전해지는 느낌을 좋아한다는 의미일 것 같다. 그런 글이기에 치열한 투쟁의 냄새가 책 속에서 느껴진다.


나 또한 파도의 무늬와 바람의 날개 짓처럼 결이 아름다운 삶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 손끝으로 글을 쓰며 지워나간 흔적들을 기억하고 싶다. 그 기억이 맑은 가을바람 같은 선명한 결을 전하고 전해서 아름다운 인생의 무늬를 만들어 가고 싶다.


라면은 부글부글 끓을 때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삶도 이렇게 부글부글 끓을 때 살아가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멍에를 넘어, 라면처럼 맛나게 끓이며 향기롭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먹고사는 삶의 비애를 넘어
인생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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