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너는 누구 편이니?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 나는 관심이 없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결혼 후 10년이 지난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아내가 가진 불만이 무엇인지. 대부분 아내는 말하고 나는 듣는 편이다. 어떤 사건의 중간자 위치에서 판결하려는 판사의 역할이 나의 모습이었다. 시시비비를 나름의 잣대로 그어, 정의와 공의라는 이름을 앞세워 아내에게 조언(훈계)한다. 질문하기에 조언이라는 의미로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상대방을 향해 열변을 토하던 아내의 공세 대상이 갑자기 나로 바뀌었다. 이럴 때면 순간 당황한다. 뭐지? 그리고 아내가 정색하며 묻었다.
"당신은 남편이 무슨 뜻인지 알아?"
"그거야 아내의 배우자가 남편이지"
"틀렸어. 남의 편이어서 남편이래. 당신을 보면 그 말이 딱 맞아!"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표현이 절묘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편을 들어준 적이 별로 없다. 항상 변호사의 역할보다 판사의 역할에만 치중했다. 아내를 변호하고 아내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지 못해서 남의 편이라는 의미가 생겼나 보다. 한자로 남편(男便)은 `편한 남자`로 풀이된다. `남녀칠세부동석`으로 대표되던 유교 사상에서 남자와 여자가 자유롭게 만나 연애할 수 없었기에 그 자유로움을 얻어 편안함을 추구하는 남자라서 남편이라고 지었나 보다. 이런 편한 남자가 되지 못하고 남의 편이 되고만 이유는 아마도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에서 기인했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만 치중하다 보니 듣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답에는 맞고 틀리고의 이분법적인 요소가 강하다. 아내의 불만에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려 했다.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항상 이렇게 내 뱉고 만다.
"그건 당신이 틀리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잖아."
이 순간 내뱉은 한마디의 말이 10년을 넘게 속 썩게 하고 있다. 참 무지했다. 운전으로 치자면 부부관계에서 초보운전자일 뿐이다.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남편이라는 면허는 취득했지만, 운전에 익숙지 않다. 일반도로는 주행했지만, 고속도로 주행을 못 하는 꼴이다. 자동차가 막힌 도로를 뚫고 최적의 길을 운행해야 하는데 항상 정체되고 막히는 길로만 가고 있다. 귀 열고 잘 들어주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원하지도 않는 솔루션을 행했다. 얼마 전 `골목식당` TV 프로그램에서 패널인 정인선 씨가 자신의 역할을 오버하며 메뉴 개발의 솔루션을 했다가 낭패를 본 것처럼, 들어줘야 하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내의 얘기는 간단하다.
`이런 문제가 있으니 나 열 받아. 그러니 내 말 좀 들어줘!` 내 편이 되어 달라는 손짓인데 이걸 이해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20년이 흘렸지만,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는 데는 여전히 부족하다. 머리는 이해했는데 여전히 말은 제어가 안 된다.
“여보 잠깐 앉아봐!” 라는 말에 여전히 가슴 떨린다.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이런저런 얘기와 불평이 이어지겠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상황 수습하고 벗어나야 하나? 지혜롭게 빠져나갈 방법은 뭘까? 제대로 안 듣고 딴짓하다간 토라지면 낭패다. 수습하는 데 힘을 쏟아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짧은 순간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반쯤 걸터앉은 자세로 아내의 얘기를 듣는다. 가끔은 본론으로 이어지는 단계가 한세월이다. 대구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오면 되는데, 굳이 부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상세하게 설명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남자의 특성상 과정보다 결론을 먼저 도출해 놓은 방식이 편하다. 결론을 듣고 궁금하면 묻고 판단하면 시간도 단축되고 훨씬 효율적이다. 아내와 대화도 효율을 따지게 되니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따지듯 묻다 보면 사달이 나고 만다. 휙 돌아서 차가운 냉기를 쏟아내며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정적이 잠시 흐른 후, 문을 박차고 나와 한 마디 쏟아 낸다.
“내 말이 그렇게 우스워!”
맞장구치고 쓰다듬고 같이 비판하고 공감해주면 될 것을. 알량한 자존심이 무엇이라고 여전히 이렇게 사는지 한심하다. 전개될 흐름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고 사는 삶이 남편의 삶인가 보다. 그래서 여전히 남편(男便)이 아닌 남편(남의 편)으로 살고 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남자는 더 쉽게 안 변한다. 그중에서 남편은 더더욱 쉽게 안 변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고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 힘들다. 변화라는 키워드를 보며 흥분하고 열광했던 청년 시절을 떠 올리며 다시 다짐한다.
"여보! 이제는 무조건 당신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