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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Oct 15. 2021

사랑 백신

 그의 이름은 관우다.

 

 사실 처음에는 관이라 불렀다. "헤이 관" 그렇게 부를 때마다 " 에이 선배 놀리지 마요. 꼭 죽으러 들어가는 관 같잖아" 그의 한국 이름은 관ㅇ 이고 영어 이름은 크리스찬이다.


" 네 미국 이름, 교회 다닌다고 티 내는 것 같아 좀 거시기하진 않니?"


 우리는 미국 교회에서 만났다.  이민 초기 한국교회가 중고등학교 시절 연애하는 장소로 최적의 장소였던 것처럼 교민들이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어려움을 서로 도와주는 그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희생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입 때문이다. 한번 구설에 오르면 한인들의 소문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피곤해서 한인교회를 떠났다. 미국 교회는 극장 같아서 편했다. 한 편의 잘 짜인 연극을 본다고 할까, 음악과 무대 미술, 목사의 설교까지 현대적으로 잘 짜여 있어 중동의 예수가 왜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믿음이  달라지진 않았다.


 관이를 관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책 속의 관우하고 한오라기 털끝만큼 안 닮은 그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미국 대학에서 당당히 테니어tenure를 획득한 실력 있는 교수다. 그는 살짝 여성스러우나 강직하다. 족보를 따지다가 그가 중, 고등학교 모두 내 후배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그 인연에 의아했다. 게다가 내가 3학년 때 그가 1학년이니까 학교에서는 서로 모르고 지냈지만 나에게 몇 대쯤 맞았을 후배였다. 나는 얌전하지만 선배노릇 할 때는 악명 높은 축에 끼었다. 요즘 한국에서 학폭이라 하는데 심하진 않지만 나도 아주 살짝 그 대열에 걸쳐있어서 지금도 유명해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쓰고 산다. 하기사 나는 더 많이 맞고 살았다.


 관우 와이프는 변호사다.  


 관우보다 세 살 어리고 미모가 빼어났다. 그녀는 하이힐이 안 어울리는 키를 가졌다. 얼굴도 작고 우윳빛깔 피부도 부티를 더해 주었다. 고향은 전북 익산인데 가끔씩 사투리가 입으로 올라오면 귀엽지만 내가 서울 사람이라 엄청 흉을 본다. 얼굴은 이쁜데 말이 거시기하네. 그럼 그녀는 즉각 완벽한 표준말로 응대한다. " 오라버니, 뭐라고 하셨죠? 다시 말씀해 보세요"  

 

 그녀는 한국에서 거시기 E대 출신이다. 얼굴 몸매, 명문대 학벌에 지방에서 레미콘 회사 운영하는 아 찬스도 있어서 부러울 것 없는 완벽한 그녀였다. 반면에 관우는 지방대 출신에 나처럼 머리도 크다. 키는 한 175cm 정도고 피부도 인도 사람 비슷하다. 늦게 유학 와 피똥 싸며 공부해 학위를 받았다. 영어를 무진장 잘해서 잘 모르면 여기서 태어난 애 같다. 그는 어학연수 온 그녀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 영어가 유창해서 반했다고 그녀는 말하지만 관우는 남자치고 눈이 이쁘다. 그러나 요즘 둘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농담에 가시 박아 자기네 결혼을 똥 밟았다고도 표현한다. 성관계를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이가 나빠졌다는 뜻이다. 뭐 딱히 심하게 싸우지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반면에 그녀는 내 피부가 하얗다고 나를 무척 좋아하는데(나중에 내가 뇌 색남이라 좋다고 했다)  남편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나와도 멀어졌다. 내가 관우를 많이 아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 따로 그녀의 식사에 초대받아 깨끗한 한인 일식집에서 대접받으며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몰랐지만 초면에 그녀는 관우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듣기가 좀 거북했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로 들어주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관우네는 시카도 외곽에 살아 마당 넓은 4 Bedroom 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선물로 주신 집이라고 관우 아내는 여러 번 자랑을 했다. 그녀 아빠는 교회 장로님인데 레미콘 회사라서 그런지 몰래 담배를 피우는지 모르지만 폐암에 걸려 투병 중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많은 재산을 외동딸에게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었다.  


  그들과 가까이하면서 나는 가족처럼 왕래하게 되었다. 함께 하면서 가장 즐거운 것은 상당히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점과 내 요리 실력을 뽐내는 것, 그중 압권은 관우 안사람이 나에게 뒷마당 텃밭 일부를 무상으로 렌트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곳에 여러 가지 작물을 심었고 그들의 채소도 더불어 나누어 먹으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 매주 두 번 정도 그 집에 가 함께 지낸다.


 한국 들어가면 동생이 마련한 시골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낼 준비도 되고 무엇보다 땅을 사랑하게 되었다. 비료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되고 새싹에서 수확까지 반려식물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문제는 그렇게 사랑하며 키우다 마지막은 식탁에 올려놓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감사 기도하면서 식물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기도한다. 우리 같이 하찮은 이 행성 좀비에게 생명을 내어주는 이들에게 미안했다. 뭔가 의미 있게 잘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요즘 많이 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 다큐영화 씨스피라시(Sea+Conspiracy)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논란이 있지만 바다 오염이 플라스틱보다 더 심각한 어업 문제에서 시작된다는 지적이다. 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방사능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일본을 나는 후진국으로 보는데 그들이 대형 고래를 사냥해 먹고 돌고래 죽이는 장면에서는 야만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오염되고 지구는 더워지고 우리 세대에 더 심각한 재난을 감당할 생각을 하니 그 충격에 내 마음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텃밭 농사를 하면서 원치 않지만 농약을 써야 할 것이 많음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시중에서 먹는 채소 과일에 얼마나 많은 농약이 들어 있을까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땅도 바다도 하늘도 안전지대는 없었다.


 이들을 자주 만나며 우리는 자연스런 부부모임이 되었다.  

 우리들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과 자연이  많았다. 인간은 심리학자인 관우의 의견이 가장 많았고 "죽음이 문인가 벽인가" 하는 주제는 내가 가장 말이 많고, 자연에 대해서는 언제 저렇게 공부했는지 내 아내가 해박한 지식을 드러냈다. 관우 아내는 한국에서 변리사를 했는데 미국에 건너와 이민변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우리들 식탁은 어쩌면 배움의 교실이었다. 남자들은 요리하고 아내들은 가벼운 일만 돕는 조력자였다. 난 와인의 풍미를 이들에게 배웠다. 혈압 때문에, 종교적 신념 때문에 나는 술을 멀리했지만 후배 크리스찬 이놈이 와인을 워낙 좋아해 나도 자연스레 와인 마니아가 되고 말았다. 그 덕분에 Trader Joe's의 2불짜리 와인에서 제법 값나가는 와인까지 다 마셔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커피보다 와인 맛을 아직 잘 구분할 줄 모른다. 눈 가리고 와인맛 맞추기 테스트를 했는데, 난 트레이더 조의 2불짜리를 제일 맛있다고 골라 최근 가장 훌륭한 서민상을 받았다.


" 사랑은 말이야 와인처럼 한번 따고 나면 점점 식초가 되는 것 같아 "


 나의 뜬금없는 발언에 식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열정 넘치던 시절, 사랑에 미쳐서 우리가 제 무덤 파고 질식 당하잖아. 내가 고등학교 시절인가 책에서 철학자들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결혼은 지옥이다" 등의 말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이 미쳤나? 하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이젠 우리 다 알잖아 사랑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쓸모없고 결혼은 무덤 맞는거...


 내 발언에 살짝 취기 오른 부부는 야릇한 흥미를 느낀 듯 뛰어들었다. "사랑의 부패는 남자 문제예요" 관우 아내는 입가에 가는 미소를 품고 관우를 쓱 한번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여기 이사 오기 전에 고칠 데가 있어서 교회에서 이 지역 최고라고 정평 나있는 집사님을 소개받아 믿고 맡겼죠. 나이도 지긋하시고 견적 내는데 믿음이 가서 몇 가지 공사를 맡겼어요. 그런데 공사 후반기에 말 바꾸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처음 말과 달라진, 그 말 바꾸기를 하더라고요.  공사가 처음보다 커져서 처음에 얘기한 가격 으른 비용이 안 맞으니 돈을 더 달라는 거죠.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긴소리 하기 싫어서 돈 더 주고 공사를 마쳤어요. 그 사람은 돈만 벌고 내 감사는 벌지 못했죠.  그걸 받아야 보람으로 환전해서 자기 삶을 채울 텐데 돈만 벌어간 거죠. 그다음부턴  돈 더 주고 미국인들에게 일을 맡겨요."  


"남자들은 사랑한다 꼬셔놓고 왜 업자처럼 말을 바꾸죠?."


 그게 왜 남자들 탓이야?


 관우가 발끈하며 말을 받았다. 여자들은 안 그런가? 남자들이 공개적이라면 여자는 고양이 같아 은밀하고 속으로는 남자와 같은 생각 다 하면서 표현이 없는 거지. 여자는 사랑 안 해도 너 싫어졌어 소리 잘 안 하지.

관우가 흥분해서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자 화산이 터지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관우보다 더 큰 소리로 실없이 웃었다. 그러자 침묵이 흐르고 분위기가 더 이상해 졌다.


 나는 어색함을 넘어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사랑도 백신이 필요하다고 봐.




@ 준비되는대로 <하> 편 이어갈게요...

                          




             https://youtu.be/vjU2bPHIQm8?list=PUPglj7zGwmOlH8_31Tpgh8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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