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한 권 들고 무작정 차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파주 근교, 북카페, 주차가 괜찮은 곳으로.
세 가지를 다 만족하는 카페를 찾았고 일단 출발했다.
가는 내내 익숙한 길로 안내를 하길래, 오, <밀크북> 카페 근처일까? <지혜의 숲> 근처일까? 생각을 하며 거의 도착할 무렵 웃음이 났다.
이 카페는 앞서 말한 두 카페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호형출판에서 운영하고 있는 북카페였다.
자리를 잡고 앉아 책도 읽고 하려 했으나, 읽었던 후기에서 그냥 지나쳐 버린 내용이 있었다.
출판단지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필 내가 도착한 시각은 12시 즈음이었고 들어왔을 때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나, 자리에 앉자마자 굉장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또 하필, 1인석을 찾아 앉았는데 그 자리가 담소를 나누기 좋은 4인석 소파 옆이었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 한 여성의 웃음소리가 나만큼 컸다.
굉장하구나.
앞으로 나도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눌 때 살살 웃기로 했다.
이 카페에서 또 좋았던 점은 갤러리 카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
가만히 책을 읽어서도 좋지만, 누군가의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내가 도착한 시간이 이 시간이어서 시끄러웠을 뿐, 만약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피해서 왔다면 또 이렇게 시끄럽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앉아 글을 쓰는 동안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점점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만 홀로 고립되는 느낌이 들 때쯤, 이 장소는 도떼기시장처럼 웅성웅성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까?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하루의 일과 시간 중 가장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9시부터 일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후다닥 먹고 잠시 쉬기 위해 카페로 발걸음을 돌린 사람들.
아까 웃음이 컸던 여성분의 웃음소리가 묻히기 시작했다.
대용량, 아니 굉장한 무리들이 들어와 다른 테이블에 있는 의자도 가지고 오더니 굉장한 출력으로 말소리와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몸집이 큰 남성분은 성량도 어마어마했다. 그 성량으로 웃음과 한 번씩 말을 하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렇게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진 못하지만 중간에 앉아 있으니 저 사람들과 대화를 함께 하고 있는 것 같다.
"자, 이제 가시죠."
웃음소리가 컸던 그 여성은 세상 우울한 음성으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함께 한 일행들 역시 소파에 있던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는 듯, 밍그적거리며 일어났다.
한 테이블이 비자, 우렁차던 이곳의 소리는 잦아들었다.
이제 조용하겠구나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12시 37분이었다.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려면 먼 시각. 그래서 가기 싫어했구나. 안타깝다.
직장인의 삶을 그만둔 지 15년 되었다. 중간에 잠깐 1년 정도 다시 '9 to 6'의 삶을 살았던 적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 자유롭게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그게 무너지기 시작해 요즘 다시 카페 출근을 하고 있다.
이 카페의 커피 맛과 향이 연한 편이다. 그리 짙지 않다.
함께 시킨 휘낭시에가 꽤 깔끔하고 다시 먹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점심을 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 간단히 주문했던 것인데 또 먹고 싶다.
우렁차던 일행도 떠났다.
빈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채웠고, 나는 떠난 사람들을 아쉬워하며 잠깐 바라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그 사람들의 웃음이 좋아서 계속 듣고 싶었다.
아, 그렇다고 웃은 건 아니다. 괜히 웃다가 이상한 눈초리를 받으면 안 되니까.
새로운 사람들이 채운 자리는 곧 비워졌다. 카페 주인은 자리를 정리하고 점점 조용해진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던 커플이 싸우기 시작한다. 내가 이곳에 앉은 게 미안해진다.
책이나 읽어야지.
오늘 가져온 책은 강석희 작가의 [내일의 피크닉]이다.
[꼬리와 파도]라는 작품을 통해 알게 된 작가다.
번역가와 비슷한 이름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신작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 표지라 눈길을 끌었다.
제목도, 표지 그림도.
이 계절에 읽기에 좋을 소설.
앞부분에 만화도 잠깐 나온다.
음~ 흥미로워.
잔뜩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만난 문장.
연은 1년 전 여름에 죽었다.
이 소설 장르가 호러인가? 판타자인가?
도입부는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읽을 누군가에게 눈길을 잡고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는 것.
좋은 소설의 묘미.
연이 돌아왔던 날에는 바람이 주먹질을 하듯 불었다. 권투 선수의 훅처럼 묵직한 바람에 나의 얇고 가벼운 몸은 쉽게 휘청였다. p10
보통 신춘문예로 등단을 한 작가들의 문장은 대부분 수려하다. 읽기도 편하고 묘사가 탁월하다. 이 작가 역시 신춘문예로 등단을 했다. 내가 가진 편견일 수 있겠으나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치고 작품이 별로였던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동시제외.)
연이는 비가 내릴 때 수안에게 나타난다.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죽을 뻔 한 수안 앞에 나타나는 연이. 의아해하는 수오.
그 순간 하늘은 바뀐다.
세상에는 예고 없이 내리는 비도 있으니까. p47
살다 보면 이런 경우가 많긴 하다. 특히 요즘 같은 날씨는 기상청이 매번 틀린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50%의 확률로 내놓는 결과라면 좀 안타깝다.
읽다 보니 약간의 죽음에 대해 작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가 그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만, 죽은 이가 남겨진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이가 죽은 후 사람들을 찾아가 괜찮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장면은 참 따스하다.
수안은 배달일을 한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배달은 계속된다.
일당을 많이 받은 날, 욕심을 조금 더 부려 음료를 배달한다. 비가 오는 날, 휘청거리며 인도 쪽으로 넘어진 수안은 피를 흘리고 다친다.
그때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자, 몸은 안 다쳤냐는 말 한마디.
사람들은 그 한 마디를 잊고 사는 것 같다. 어쩌면 굉장히 쉬운 말 아닌가?
그 말 한마디로 배려를 받고 위로가 된다.
각 단락이 시작될 때 표지를 보면 회색빛 배경에 비가 내린다.
빛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의 중반부가 지나면 수안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온다.
해원도 같은 곳에서 일한다.
배경이 되는 이곳이 약간 쿠팡 물류센터 같기도 하다.
사람, 물, 화장실이 없는 곳.
30도가 넘는 온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 곳. 온열사고가 많이 나는 곳.
이곳에서 은 해원은 죽을 뻔한다.
죽은 이가 갑자기 보이는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녀왔을 때 보인다.
수안, 해원 둘 다 죽음과 가까워졌다가 살아났을 때 연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이는 보고 싶은 이들을 차례로 찾아간다.
신기하게도 연이를 볼 수 있게 된 이들은 연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눈빛과 낯빛이 좋지 못하게.
연이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등졌을까?
읽는 내내 그녀의 삶이 안 됐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이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좀 더 열심히 일하는 애들에게 계약직이라는 특권을 부여하려 한다.
둘 중 하나를 떨어트리기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린다.
정말 잔인한 것은 사람인 것 같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의 일원일 것이다.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 또래의, 그 세계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 소설이다.
산뜻한 표지와는 다르게 살짝 어두운 내용이 맘이 아프다.
그래도 인물들의 앞으로의 삶은 산뜻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