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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Jul 16.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일산 성석동 카페 설문커피

IC에서 빠져나와 약간 외진 곳으로 가면 나오는 카페. 예전에 와본 적이 있는 카페다.

빵도 팔았던 것 같다. 차를 몰아 오랜만에 이 카페에 들렀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테이블도 띄엄띄엄 차 있었다.

그때 팔았던 빵은 더 이상 팔지 않고 건너편에 있는 베이커리로 직접 가 사 와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귀찮기도 하고, 그냥 커피만 마시기로 했다.



사방이 조용하다.

간혹 대화소리가 들리긴 해도 책을 읽는 것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카페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카페에는 좋지 않겠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이것만큼 좋을 수 없다.



이곳은 커피도 직접 로스팅해서 판매한다.

커피맛이 꽤 좋은 편이다.

오늘은 크림커피를 주문했다.

항상 따뜻한 라테만 마셨는데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 아이스로 마셔보기로 했다.



테이블이과 의자가 편한 곳에 앉았다.

필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테이블이 낮지 않은 곳을 찾았다.

뭔가를 쓰거나 작업을 하려면 필수다.



짙은 녹음이 나를 반겨준다.

창 밖 너머로 보이는 잎들이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단체 손님들이 들어와 내가 있는 자리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대화하는 소리가 내가 앉은 곳까지 들리는 걸로 봐서는, 꽤 시끄러울 듯하다.

그들의 대화소리가 점점 커지고 내용이 파악될 정도로 그 대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흉을 보기 시작하던 남녀무리들. 가루가 될 때까지 까인 그 사람은 귀가 간지럽겠다 싶다.




난 이 카페의 스탬프 카드가 맘에 들었다. 

궁서체로 쓴 카페명과 10까지의 숫자가 새겨진 명함사이즈의 심플한 카드다. 

요즘 카페 명함을 하나씩 굿즈처럼 갖고 오는데 나중에 내 명함을 만들 때 참고하려고 한다. 크크. 

간단하면서도 심플하게. :)



사람들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나는 최대한 책에 빠져들기로 했다.

이제 책을 읽자.






이번에 읽은 책은 [맡겨진 소녀]로 유명한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란 책이다.

책 덮개를 벗겼더니 또 다른 그림이 있었다.

까마귀가 나뭇가지에 앉은 모습이 공포 영화 도입부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굉장히 '사소하다'.

펄롱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커가는 모습과 추후 가정을 이룬 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외부적인 요인으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비춘다.

펄롱이 맞닥뜨린 상황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넘어가는 게 좋을 법할 때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많은 사람들이 할 행동을 하지만, 곧 후회를 하고 다시 본인의 생각대로 행동을 하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내용도 좋았지만 대화에서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고픈 문장들이 많았다.


속이 빈 자루는 제대로 설 수가 없는 법이지. p14


이 문장을 읽고 어쩌면 심심해 보이는 이 소설이 재미를 가져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뭔가 속이 꽉 차지 않으면 제 할 일을 못한다.

괜히 시끄럽기만 한 사람들을 보면 정말 속 빈 강정 같다.


펄롱은 찻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멀리 보이는 강을 바라보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했다.
모든 걸 다 잃는 것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p22


펄롱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을 보며 본인은 직장이 있고 음식을 구걸해도 되지 않으며 가족을 건사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문득 SNS에서 '가난한 냄새'라는 단어가 올라와 한참 사람들끼리 댓글로 토론을 해던 게 생각났다.

'가난한 냄새'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게 참 불쾌했다.

가난한 냄새가 있다면 부자 냄새도 있는 것인가?

펄롱의 삶이 가난하다고 하다면 그럴 수 있다. 또한 풍족하다고 여기면 그럴 수 있는 것이었다.

그 구분은 누가 짓는 것일까?




펄롱은 자신의 아내와 딸들을 사랑한다. 그 마음이 전해진다. 간혹 어린 딸의 질문에 마음이 아련해지는 것도 있다.


여자들이 힘과 욕구와 사회적 권력을 가진 남자들을 겁내는 건 그럴 만하지만, 사실 눈치와 직관이 발달한 여자들이 훨씬 깊이 있고 두려운 존재였다. 여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측하고, 밤에 꿈으로 꾸고, 속마음을 읽었다. p32


여자에 대해 이렇게 텍스트로 읽으니 또 다르다.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객관적으로 서술해 놓으니 역시 여자란 존재는 계획이 다 있는 것인 건가 싶다.

부모가 되면 아이들의 순수한 물음에, 또는 대답에 상처를 받을 때가 간혹 있다.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는데 어른은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은 어떤 소원을 빌었을지 부부는 궁금하다.


그래도 애들이 별이랑 달이랑 달라고 하지 않는 게 기특하지 않아?
애들 잘 키운 것 같아. p39


서로가 서로에게 아이를 잘 키운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있을까?

상대에게 그 공을 돌리는 부부가 많을까?

그런 마음을 가지는 순간 그들은 영원히 친구 같은 관계로 노년도 함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부부로서 동지감은 갖고 싶지만 굳이 노년까지 함께 지내고 싶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무라카미하루키는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간결한 단어, 간결한 문장을 쓰고 이를 조합해 간결한 장면을 만들어간다고 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쉽게 읽을 수밖에 없다.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한다. 지나치게 꾸밈을 섞은 문장이 가득한 소설을 읽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기까지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이 많다. 이것이 소설이라고 할 말이 없지만.)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찔러 넣고 부둣가를 따라 걸으면서 들은 이야기를 되새기며 강이 눈을 삼키며 검게 흐르는 것을 보았다. 조금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p107


이 소설을 처음 읽고 다시 한번 읽어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인가 보다.

추천사를 쓴 은유작가도 단숨에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고 한다. 은유작가의 말이 이 책의 주제와 맞닿는다.

이 소설은 클레어 키건이 쓴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긴 시다. 나는 단숨에 읽고 앞으로 가서 다시 읽었다. 타인에 대한 숙고가 자기 회복에 이르는 점층 구조의 신비에 빠져 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은유작가의 추천사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사를 쓴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 되었다.

이 책은 예전에 평산책방에 들렀다가 구입한 책이다. 



그때 만난 직원분이 적극 추천한 책이다. 이 책을 이전에 구입했다고 생각해 구입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 확인하니 구입한 책이 [맡겨진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시 평산책방을 방문했을 때 이 책부터 집었다. 

사실 일산에서 평산책방이 있는 양산까지 가는 거리가 가깝지 않고 쉽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은 책방지기 때문이고 책친구들이 전해준 그곳의 풍경을 만끽하고 싶어서다. 거기에 좋은 책과 커피가 덤으로 있으니 안 갈 수가 없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새 버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클레어 키건'의 작가를 알게 해 준 작품 [맡겨진 소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을 읽을 때 다시 이 카페의 스탬프를 찍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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