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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Feb 22. 2023

반지

묵주반지



“택배입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욕실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을 쿵쾅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나와 문을 열었다.

택배아저씨는 이미 계단을 타고 내려가 보이지 않았고 커다란 사과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문 앞에 놓여있었다.


© processrepeat, 출처 Unsplash

시골로 귀촌을 하신 부모님덕분에 제철마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상자 역시 친정엄마가 보내주신 채소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아이들을 마저 씻기고 옷을 입힌 후 그림책을 손에 쥐어주었다.

보내온 채소들을 정리하려 상자를 들고 주방으로 가는데 어째 평소랑 다르게 그리 무겁지가 않았다. 

서둘러 상자를 열어보니 적은 양의 양파와 감자, 작은 운동화 두 켤레, 그리고 둘둘 말린 보라색 담요만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조카가 신다가 작아진 신발을 엄마를 통해 보내겠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기에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운동화를 둘째에게 신어보게 했다.


뜬금없이 들어있는 담요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담요를 펼치니 그 속에 엄마가 만든 노란 헝겊 파우치가 있었다. 

꺼내어 지퍼를 열어보니 붉은 색 작은 반지 케이스가 나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보니 금빛 묵주반지가 들어있었다.


© jhc, 출처 Unsplash


둘째가 유치원을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 친구엄마를 따라 성당을 다니며 교리 공부를 했다. 

이번에 세례를 받은 걸 엄마에게 자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더니 이렇게 놀라운 선물을 보내주셨다. 

엄마는 예전부터 뭔가를 조용히 준비를 하시고 놀래 주는 걸 좋아하셨다.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

그보다 20년 전에도 엄마는 이 날처럼 나에게 깜짝 선물을 주셨다.




모든 것이 설레고 두근거리던 스무 살. 친구들은 성인식 선물로 향수와 꽃다발을 받았다며 자랑을 했었다. 

나이가 스무 살이 되어 정식으로 어른이 되었고 어떤 장소이든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설레던 날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와 단둘이 쇼핑하러 가자고 데이트신청을 하셨다.

둘이서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 동성로에 나와 그 거리를 돌아다니며 맛난 밥도 사먹고 옷도 구경하며 신난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엄마는 길을 가다 작은 금은방으로 들어가 보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여긴 와 들어가노?” 하고 의아해하며 들어간 나에게 엄마는 맘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 보라고 했다. 

 “우리 큰딸, 으른이 됐는데 이 엄마가 기념으로 반지 하나 사주꾸마.”

 그 때 금액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디를 가던 항상 동생들과 함께였고 부모님이 부재중일 땐 동생들 돌보는 건 내 몫이였으며 동생들이 잘못한 것도 다 내 탓이었다.

첫째라고 책임지는 게 싫었고, 맏이라는 부담감은 스무 살인 그 때도 컸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나만 데리고 나온 것만으로 나는 신이 났는데 반지까지 사주셔서 그 날 하루 정말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십 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따뜻한 햇살이 가득했던 그 날의 거리가 기억이 난다. 

엄마가 사주신 반지가 닳을 까봐 아까워 반지케이스에 넣어두고 고이 간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그 때 사주셨던 반지는 아이들 돌반지와 함께 장롱 속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고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커플링을 한 친구들이 부러워 왼손 약지에 맞추어 샀는데 지금은 약간 끼기는 하지만 잘 맞는다.

이제는 반지를 끼우고 나갈 일이 잘 없어지기도 했고 행여 설거지를 하면서 물에 자꾸 닿아 반지가 낡아버릴까 보관만 하고 있었다.

스무 살 때 반지도 아직 새 것처럼 반짝이고 있는데.......


© mrsrachelmcdermott, 출처 Unsplash

엄마와 데이트를 하고 20년이 흐르고 또 시간이 흐른, 마흔 먹은 딸에게 엄마는 또 다시 금반지를 선물해 주셨다.

그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반지를 매일 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이들과 집을 나설 때 케이스에서 반지를 빼어 손에 끼운다. 

단지 아이들이 등교하는 것 뿐 일지라도 일단 집을 나서면 손가락에 끼우고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손을 씻기 전 반지를 빼내어 케이스에 다시 담아둔다. 그리고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었다.

무슨 의식처럼 매일 그렇게 행하고 있다.


© lillian_jpg, 출처 Unsplash

하루는 친구들과 단체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반지 사진을 올려두고 자랑을 한 적이 있다. 스무 살에도 받았는데 마흔 살이 되어서도 받았다고 말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너 60 이 되면 또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 하고 말이다.

처음엔 그 말이 철없이 들리기만 했는데 곰곰이 다시 생각하니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엄마가 오래오래 사시길 염원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엄마한테 반지를 또 선물 받아야 하니까요. 엄마, 사랑해요.’ 


[곰단지야] 2018.04. 매일, 특별하다. - 도서출판 곰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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