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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Dec 02. 2022

미남이는 포미아들

우리 집 막내 미남이를 소개합니다


“저....... 포미가 있잖아....... 심장이 더 이상 뛰질 않는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가 적잖이 떨렸다.

지난 밤, 매일 살을 부대끼고 가족처럼 모든 것을 함께 한 반려견이 죽었다. 조그만 강아지가 제 새끼를 낳다 빈혈수치가 갑자기 높아지는 바람에 새끼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포미는 작년 10월 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을 해온 6살, 유기견이었다.

강아지 돌보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던 터라 격렬히 반대를 했다. 하지만 아이들, 그리고 다 큰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고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는 동물병원에 직접 방문하여 입양을 했다. 

하얀 털의 새까만 눈을 가진 말티즈. 이미 한 번 파양이 됐던 터라 두려움과 설렘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병원의 차디찬 창살 너머로 보이는 다른 강아지들의 짖는 소리와 보호기간이 종료가 되어 안락사 되어 나가는 강아지들을 보며 포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집에 오는 내내 한 번도 짖지 않았고 집에 와 지내는 동안 큰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순한 강아지가 있냐며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신기해했다.


그러던 포미의 상태가 조금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병원을 가 초음파를 해보니 임신이라고 했다. 

 나는 강아지 출산 영상을 보며 어떻게 조치를 하면 되는지 배웠고 출산 후 어미와 새끼에게 먹일 음식들을 찾아보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출산 10일 전 쯤 초음파를 하니 1마리가 많이 커져 있어 출산이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우리 가족은 포미를 더 극진히 살폈고 태어날 녀석의 이름도 이미 지어두었다. 

수컷이면 포미의 아들로 ‘미남이’, 암컷이면 포미의 딸이니 ‘미녀’라고.

포미는 점점 힘이 부치는 지 숨이 차는 듯 했고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생식이 좋다하여 생닭을 사서 조각내어 주니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던 녀석이 한입도 먹지 않고 자꾸 자기 집에 놔두기만 했다. 

혹시나 여름이여서 상할까봐 다시 냉장고에 넣어버렸던 나를, 포미는 먹이를 빼앗겼다고 원망하지 않았을까?


예정일이 다가와 귀의 온도를 매 시간마다 쟀고 38도가 넘은 바로 그날이 출산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퇴근을 해 저녁밥을 먹고는 남편 혼자 포미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산책을 나가는 줄 알고 신이 나 꼬리를 흔들며 나갔던 포미인데.......

오후 8시쯤 남편이 태어난 새끼의 영상을 찍어 나에게 보내 주었고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미역을 불려놓았다. 


밤 10시가 넘어도 오질 않아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뜻밖의 가슴 떨린 소식에 나는 다시 오지 않을 포미 이름만 연신 불러대며 꺼이꺼이 울었다. 

잠을 자던 아이들이 거실로 나와 “엄마 왜 그래?” 하며 울먹거리는 데도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기껏 6개월 정도 함께 한 건데 강아지 한 마리에 이리 정이 들 줄 몰랐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더니 정말 놀래셨다.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이리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 그 조그만 강아지 때문에 울었다니 황당하고 많이 당황하셨을 게다.

남편에게 새끼를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 

우리 포미를 죽게 한 장본견인데 어딜 데리고 오냐며 절대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남편은 혼자 집으로 돌아왔고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울고 있는 나를 살며시 안아 주었다. 


하루가 지나니 나는 포미의 부재를 실감하고 새끼의 존재를 서서히 느끼게 되자 포미를 데려와야겠단 생각이 들어 병원으로 향했다.

작은 상자에 들어있던 포미는 차갑게 식어있었고 그 맞은 편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있던 새끼는 자기는 관련이 없다는 듯 눈도 못 뜬 채 그 짧은 꼬리를 흔들고 몸을 바둥거리며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곤 의사가 주는 초유도 꿀꺽꿀꺽 잘도 받아먹는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나는 포미가 담긴 상자만 조심히 들고 병원을 나왔다.

거실에 앉아 상자를 열고 축 늘어진 포미를 보니 눈물이 났다. 

수술한 바늘자국이 보이는 배가 싫어 살짝 들어 올리니 고개가 툭하고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면 부패가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냄새가 많이 날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 전에 땅에 묻어주는 것이 좋다는 말에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 친정집으로 향했다. 

하필 비가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억수같이 내렸다.


40년을 키워온 딸이지만 그렇게 오열하는 것을 처음 본 아버지는 묵묵히, 이렇다 저렇다 한 말씀 없이 포미가 묻힐 땅을 깊이 파 주셨다. 

비가 와 떠내려가면 안 되니 더 파자 하시며 계속 파시기만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 곁에 쭈그리고 앉아 땅만 응시를 했다.

그렇게 포미의 무덤은 마련이 됐고 움푹한 구덩이에 상자를 넣었다.

아버지는 또 아무런 말씀 없이 흙을 다 덮으셨고 먼저 가겠노라 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밤도 아닌데 날은 어둑해지고 비는 쉴 새 없이 내렸다.

포미는 이제 이 흙 밑에 있구나 싶어 눈물도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어미가 흙 속으로 돌아간 날, 새끼 강아지는 우리 집으로 왔다.

새끼를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낼 생각까지 한 나에게 지인이 그렇게 말을 했다. ‘어미를 보낸 새끼라고 미워하면 안 된다, 미움만 생길 뿐이지. 어미가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새끼를 키우면 마음도 편해 질 것’이라고.


늠름한 미남이


처음엔 병원에서 새끼를 데려와 초유를 먹이고 배변을 시키는 건 남편의 몫이었다. 어미가 없으니 그 어미 노릇을 남편이 했다.

남편이 회사를 가서 집에 없으면 온전히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했다.

분유를 먹인 후 따뜻한 거즈수건으로 엉덩이를 톡톡 쳐 쉬를 뉘이면 배에 힘을 주며 똥을 쪼로로 싸는 녀석이 점점 귀여워 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등교만 재빠르게 시킨 후 집으로 돌아와 외출을 삼갔고 다른 이와 바꿀 수 없어 꼭 해야 하는 책읽기 봉사도 끝나는 즉시 신생아가 집에 있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눈도 아직 못 떠 어딜 가지도 못하는, 개 구실 못하는, 이 작은 생명체를 돌봐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100일이 되었고 의사는 잘 키웠다며 칭찬을 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버린다는 마의 백일이 지나고 접종도 모두 마친 미남이는 이제 5개월이 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6살이라는데 어찌나 똥꼬 발랄한 지 집에 있는 아이들 책들이 모두 너덜너덜해졌고 소파며 성한 것이 없다.


이제 산책 맛에 길들여져 산책 갈까? 하고 물으면 먼저 현관에 나가 있다.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을 보면 불현듯 포미가 생각이 난다.

처음으로 미남이 목욕을 시키던 날, 우리 가족은 미남이에게서 포미를 보았다. 무성한 털이 물에 폭 잠겨버리자 그 속에 숨겨진 포미의 얼굴을 우리는 함께 보았고 포미얼굴을 더 보기 위해 종종 내가 목욕시키는 것을 자처하기도 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한 구석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미남이를 보니 포미가 생각이 난다.

신기하게도 포미가 줄곧 들어가던 책장 뒤로 미남이 역시 잘 숨어있다. 

얼굴만 내민 채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영락없이 포미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미남이랑 오래오래 함께 살 것이다. 


- [곰단지야] 2018.10. 펫팸시대 - 도서출판 곰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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