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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을 기억하며

동백꽃, 울다 - 윤소희, 바람의 소리가 들려 - 김도식

by 노아나

올해 제주 4.3 참사가 있은지 77주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행사 소식이 많이 들린다.

문재인대통령이 책방지기로 있는 평산책방에서도 [4.3, 기나긴 침묵밖으로]라는 제주 4.3 관련 책으로 북토크가 열리고 서울 노무현시민센터에서는 영화제가 열린다.

이번 글은 제주 4.3을 기리며 동화 한 편, 청소년 소설 한 편을 소개한다.

윤소희 작가의 [동백꽃, 울다]라는 동화와, 김도식 작가의 [바람의 소리가 들려]라는 청소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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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사이로 나온 책들이다. [동백꽃, 울다]는 2024년 4월 3일, [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2025년 3월 31일, 세상에 나왔다. 이 맘 때가 되면 제주도에서는 밤에 조용해진다는 소설 속 내용이 떠오른다.




먼저, 윤소희 작가의 [동백꽃, 울다]는 2024년에 문학 나눔 도서에 선정된 도서다. 아픈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던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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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이네 집에는 4대가 살고 있다. 왕할망, 할망, 어멍, 서현까지 4대가 말이다.

서현은 증조할머니를 위해 도서관에서 하는 그림 자서전 수업을 권하지만 왕할망은 싫다며 거부한다.

증손녀의 끈질긴 권유 덕분에 왕할망은 현관을 나선다.


왕할망 방에는 항상 색깔 내새가 고여 있다. 방문을 열면 잔잔하게 고여 있던 색깔 냄새가 문밖으로 퍼져 나온다. 나는 왕할망 방에서 풍기는 여러 가지 색깔 냄새가 정말 좋다. 왕할망 방에 들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도톰한 종이냄새도 따라온다. 어쩌면 왕할망의 냄새일지도 모른다. p17


오직 서현이에게만 보여주고 다른 이에게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 왕할망. 서현은 그림을 보면서 왕할망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다.

왕할망은 꾸준히 수업을 듣는다.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그림이랑 글은 마음의 약이라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도 병원 치료를 받는 것처럼 상처를 낫게 한대. p22


행복할 때 그림을 그리면 더 행복해진다는 서현은 왕할망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는 정말 끔찍하다. 제주 4.3이라는 사건을 알게 된 후로 뼈저리게 아픈 역사 중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건도 잘못한 이는 없으나 이 사건처럼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국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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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할망은 그림을 그려도 색을 칠하지 않는다. 이 책에 나온 삽화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붉은 색감이 있다.

동백꽃, 피를 뜻하는 게 아닐까?

빨간색을 가장 좋아하지만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러면 또 잡혀갈까 봐.

이 고통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상처다.


총파업은 중요한 싸움이야. 경찰들이 삼일절에 총 쏜 거는 반드시 사과받아야 해. 죄 없는 사람들이 죽었잖아. 굳이 총칼로 싸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어. 우리는 일을 멈춤으로써 평화롭게 싸우는 거다. p64


시민은 평화롭게 싸우려 하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다. 서북청년단이 내려와 사람들을 마구 죽인다.

정말 이유가 없다. 빨갱이라는 죄목을 씌워 총을 쏘고 칼로 찌른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피해 동굴 속에 숨고 암호를 말하면 자기네 사람임을 알고 안심하게 된다.


'곱을락헐 사름.'


숨바꼭질할 사람이라는 뜻의 암호다.

이 암호가 들리면 안심을 한다. 그 동굴 안에서 아기도 태어나지만 많은 이들이 떠나가기도 한다.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에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잔인하다.

읽으며 동화에서 이렇게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될까? 생각이 들다가도 역사이기 때문에 어린이들도 제대로 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이번에 새로 나온 청소년 소설이다. 김도식 작가의 [바람의 소리가 들려]는 제주 스토리공모전 수상작으로 이 역시 제주 4.3에 관한 장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제주도 사투리 대신 표준어를 사용해 읽기가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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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한 내용이 전부 사라졌다. 무슨 일일까? ㅠㅠ)


아홉 살 동이의 아빠 수혁은 준규가 나온다는 이장의 말에 놀란다. 마을 사람들 모두 준규라는 말에 두려워하는 모습에 동이는 의아해한다.

어릴 적 수혁과 준규, 옥희는 마을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이다. 책 표지에 나오는 세 아이들이 이들일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다시 책표지를 보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부유한 지주의 아들은 수혁은 군인이 되기 위해 서울로 떠나 공부를 한다.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가난하게 품삯 일꾼으로 일하던 준규와 식모살이를 하며 야학에 다니는 옥희는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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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물러났지만 게양되어 있던 일장기는 내려가고 성조기가 올라갔다.

삼일절 기념행사로 북국민학교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기마경관이 탄 말에 어린아이가 치였으나 사과 없이 가버린 경관을 쫓아가는 군중들을 향해 경찰은 총을 쏜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던 제주도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빨갱이를 처단하겠다는 서북청년단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인다. 산으로, 산으로 도망갔던 시민은 무장대가 되어 다시 마을로 내려온다.

서울에 있던 수혁은 빨리 고향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내려갔으나 당장 앞에 닥친 상황이 믿기질 않는다. 온 가족이 죽음을 당한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술이 거나하게 돌자 연대장과 참모들은 한 목소리로 빨리 폭도들을 척살하고 현 상황을 끝장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취하면 취할수록 수혁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다. p150


흉기가 든 가방인 줄 알았던 준규의 가방에서 목각인형이 나온 장면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니었다. 고향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는 준규의 말에 수혁은 눈물을 흘린다.


죽은 자건 산 자건 서럽지 않은 자가 없었다. p212


이 소설은 역사적 기반에 사랑이야기가 담겼다.

세대를 넘어 우정을 계속 기리며 나아가는 모습이 여느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소설과는 다르다.

쉽게 읽을 수 있을 이야기다.




제주도에 남아있고, 지켰던 사람들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가 죽임을 당했지만 복수하지 않는 군중. 이런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눴고, 죽창으로 찔렀으며 땅에 묻었다.

친인척 가운데 희생자가 없는 집이 없는 제주도.

이 맘 때가 되면 제사 준비로 온 마을이 조용해진다는 소설의 장면이 생각난다.

제주도에 가게 되면 꼭 4.3 평화 기념관에 들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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