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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Mar 08. 2023

첫날

심학산 둘레길

"나, 등산하고 올게."

남편은 코웃음을 쳤다.


"얘들아, 엄마 등산하고 올게."

"엄마, 집에 꼭 돌아와야 해~"


가족들의 애정이 넘치는 배웅(?)을 받으며 일단 심학산으로 떠났다.

초행길이라 어딘지 모르는 관계로 검색 후 리스트 제일 위에 있는 주차장을 찍고 차를 몰았다.




트랭글이라는 앱을 깔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겨울산은 앙상하다.

온 세상이 회색빛이다.

하얀 눈에 덮인 산과는 또 다른 겨울산.


한강이 보이는 쉼터에 도착을 했다.

강을 기준으로 내가 있는 쪽은 고양, 그 너머는 김포라고 한다.

산과 산은 모두 맞닿아 있다.

너무 붙어 있어도 다툼이 생기니 강이 그 사이에서 중재를 하는 모양이다.


질퍽한 땅도 있었지만 무수한 낙엽들이 그 위를 덮어 내 운동화가 더럽혀지는 걸 막아준다.

사브작 사브작.

그냥 걷는 게 다 인 등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나무는 푸르른 색을 띠는 걸 보니 이 쪽은 해가 곧잘 드는 모양이다.


누군가는 걸어갔을 길.

그 길을 따라 나도 걸어간다.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아 가까운 거리도 차를 몰고 가야 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사람들과 마주치는 걸 싫어해서 그런 듯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다녀본 적이 없는 길이라면 어디를 가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선택을 한 후 걸어갈 때에도 과연 나는 바른 선택을 했을까? 생각을 하며 걸었을 것이고.


바위틈을 뚫고 나온 나무 한 그루.

질기고도 질긴 생명.

누가 그 어떤 생명을 탓하리.


가끔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해준다.


너희들은 몇 억만 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왔단다.
엄마가 너희들을 낳을 때도 아팠지만 너희들은 더 아팠고 그 고통을 감수하며 태어난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면 누구나 소중한 존재란다.


까먹을 즈음 한 번 더 상기시켜 준다.

너희들이나 엄마나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진달래가 피었다.

무채색 회색빛 속에 발가안 핑크빛이라니 너야말로 정말 귀한 존재 아니니?

정말 봄이 오고 있다.




한참을 걸어가니 절이 하나 나온다.

약천사.





절마다 종은 있는 것일까?

중생들의 구제를 위해 종을 친다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기 위해.

내가 온 걸 알리고 싶다. 

절밥을 정말 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주 커다란 불상이 있었다.

가늠이 안될 정도로 컸는데 사진 속에 담긴 그 커다람은 한낱 작은 물건에 불과하구나.



구건물과 신건물.

절도 리모델링을 할까?

단순히 수리하는 정도가 아닌 현대에 맞춰 리모델링을 한다면?

안 했으면 좋겠다.

쓰러지지 않도록 보존을 해서 전해주고 계속해서 전해지면 좋겠다.

.




계단을 내려오니 작은 불상들이 주르륵 놓여 있다.

아기자기한 모형들.

잘 모르겠다. 절의 구조도 왜 이렇게 올려두는지도.

하지만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누구나 올라올 수 있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기도도 나는 천주교식으로 하겠지만 말이다.

다 돌고 내려오니 안내문이 보인다.

이 초록색 둘레길을 나는 걸었다.




간단히 오리로스구이 반 마리를 구워 먹었다.

그리고 고기만 먹기엔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어 볶음밥도 먹고.



밥을 먹었으니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 루프탑이 있는 카페로 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미세먼지가 많았던 하늘이었지만 파랗다.

하늘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파랗고 파랗기 때문에.


내가 걸었던 길의 흔적.

처음에 기록을 잘못해서 공간이 생겼다.


내일은 등산화를 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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