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gilf007
<마주보기 II>
- 다별
내가 그냥 나였을 때
나의 꿈은 반짝였고
나의 열정은 눈부셨고
나의 욕망은 뜨거웠다
꿈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듯
열정 대신 냉정을 선택하고 현명한 척
욕망은 꾹꾹 밟아 심연으로 처박아놓은 채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이쯤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괜찮아지는 날은 오지 않았다
늙어가는 겉모습에
늙지 않은 속이 꽤나 거추장스럽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생살이 드러난 생채기를 차마 볼 수가 없다
호호 불어 약이라도 발라줘야 할 것 같은데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이걸 어쩌나
이것 때문에 못자라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냥 두고 갈 수도 없는데
선뜻 안아줄 용기도 없다
내 옷에 피가 묻는 건 괜찮은데
안아주는 게 쓰라릴 것 같아
머뭇대다 돌아서고 또 머뭇대며 뒤돌아본다
어린 내가, 날 보고 서있다
눈으로 말을 하고 있다
가지 말고 한 번만 좀 봐달라고
와서 한 번만 꼬옥 안아달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미안해. 이만 가볼게
오늘은 뒤돌아보는 것까지만
내일 다시 올게. 널 보러
한 번 더 보고나면 혹시 아니
모레는 너를 안아줄 수 있을 지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