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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Oct 08. 2023

13. M 차장_아픈 손가락의 그녀

그녀에게는, 이상이 있어 보였다.

차장들의 인사발령지가 정해지자, 직원들은 하나같이 인사조직도를 보며 상사 파악에 들어갔다. 업무의 성격을 배제하고서도, 회사 생활에서 누구와 일하는지가 참 중요하다는 걸 이젠 나도 뼈저리게 안다. 그래서 귀를 쫑긋하며 꽤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했다. 들려오는 소문엔 그녀의 스펙은 어떻고, 어느 부서에서 왔고, 성격은 이렇더라 하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솔솔 퍼졌다. 점심시간까지도 직원들의 수다는 이어졌는데, M 차장이 이 지사 출신이라고 했다. 직원 때 이 사무실에서 몇 년을 일하고 승진을 했는데, 같이 일했던 과장은 그녀가 일도 잘하고 조용한 편으로, 현장직 업무를 같이하며 손발이 맞았다고 기분 좋게 회상했다. 누군가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참 힘든 세상인데, 그녀는 꽤 후한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내심 그녀가 궁금했다.

 

한 번에 여러 차장이 전입하며, L 차장은 나의 직속 상사가 되었고 M 차장은 내 옆 직원의 상사가 되었다. 자리가 가깝기도 했고, 업무도 겹치는 경우가 있어 오며 가며 그녀의 지시를 간간이 받았다. 

일단 그녀는, 외양적으로 아주 단단해 보였다. 그러니까 키가 크지는 않은데 많이 말라서 지방이 몇 퍼센트나 될까 의문이 들만큼, 하지만 체형이 올곧았다. 마치 필라테스를 최소 몇 년은 한 듯한 쭉 뻗은 자세부터, 시종일관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는데 한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자리에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면 다리를 꼬기도 하고, 의자에 기대다 못해 거의 누워 있기도 하고 혹은 거북이 목이 되기 일 수인데, 꼿꼿이 앉아 모니터를 응시했다. 목소리도 단조로웠고 가끔은 AI 인가 싶을 정도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웃기도 했지만, 그건 찰나일 뿐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물기가 없어 밟으면 퍼석퍼석하고 부서지는, 사막이 떠올랐다.


M 차장은 K 차장의 후임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업무 방식은 사뭇 달랐다. K 차장은 초기 기획부터 팀 직원과 다른 부서와의 협업으로 일을 키우는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었고, 뒷말이 자연스레 따랐다. 그리고 든든한 I 팀장을 뒷배로 두었으니, 일을 크게 벌여도 개의치 않아 했고, 업무실적 역시 우수해 지사 전체로는 도움이 되긴 했다. 반면 M 차장은,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근무했던 이력이 있어서 인지 가능한 한 조용히, 본인과 담당 직원 선에서 해결하려 했다. 그나마 도움을 청해도 L 차장과 나였으니. 

아주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했고, 그녀의 보고서 또한 그의 성격을 반영한 것처럼 간결 명료했지만 필요한 내용들이 속속들이 알차게 들어가 있었다. 사람의 성격이 글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녀의 보고서에는 정말 그녀의 인품이 드러나는 듯했다. 그렇게 조용하게 조근조근 일해도 결과는 좋았다. 일하는 티는 많이 나지는 않았어도, 그녀는 누구보다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자리를 지켰기에, 다들 성실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딱히 누군가와 친밀하지도 않았으니, 말이 나올 여지도 없었다. 

 

한 번은 그녀에게서 업무 쪽지가 왔는데, 다시 보려 하니 삭제되어 확인할 수 없었다. 비슷한 일이 담당 직원에게도 있었다. 딱히 기분이 나쁘다거나 문제가 될 만한 쪽지가 아니었는데, M 차장은 쪽지를 회수해 갔다. 그때는 잠시 의아해하고 말았다. 

그녀의 자리에 서류를 놓기 위해서나 간식 배분을 위해 다녀가면,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깨끗한 책상에 깜지가 놓여 있었다. 흰 종이에 글씨를 빽빽하게 적어 마치 시험공부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는데, 살짝 훔쳐보니, 그녀가 지시했던 사항과 했던 일들을 일일이 열거해 둔 내역이었다. 그러니까, 몇 시에 누구에게 이렇게 지시했고, 어떻게 보고했으며 무엇을 했는지 등등. 

나는 아찔해졌다. 그녀의 사적 영역을 침범한 것에 미안하면서도, 그녀가 이렇게 깜지를 쓰게 된 배경이 무엇일지, 그리고 그 이유를 막론하고 그저 그녀가 애잔했다. 이렇게까지 증거를 수집하게 된 계기가 분명 있을 텐데, 좋은 이유에서 시작한 건 아닐 것 같았다. 보여주기 식일지 그게 아니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나,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감각해 보이는 저 표정 뒤엔 어떤 감정이 숨겨져 있을지.


그녀는 차장이었음에도, 직원의 눈치를 꽤 보는 사람이었는데, 본인과 연배가 비슷한 직원을 대하기 특히 어려워했다. 차이가 좀 나는,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담당 직원과 나에겐 꼼꼼하고 엄격하기도 했는데, 앞에서 대놓고 어렵다고, 하기 곤란하다고 투정하는 고참 직원에게는 맥을 못 췄다. 좀 더 강하게, 차장으로서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면 되는데, 큰소리 내는 직원에게 아무 말 못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안쓰럽기도 했고 차장의 권위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직원을 닦달해서 시키기보다 본인이 그 직원 업무까지 커버했다. 

왜 그랬을까. 비교적 젊은 차장이라 그런 건지, 이 지사에 일했던 경험에 비춰 미움을 사기 싫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보는 내가 참 답답했다. 맺고 끊음이 명확한, 조금 더 확실한 상사이길 내가 바랬다.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투영하며, 나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 하고 대입시켜 보았지만, 내가 그녀의 상황이라면 글쎄, 단호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현실의 나는 내 업무 하기에도 급급한 소심한 직원에 불과했다.

 

그녀는 업무는 정석대로 하면서, 교육의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차장들을 상대로 한 교육이 종종 있는데, 대부분 차장들은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업무로도 바쁜데 교육을 듣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저버리곤 했다. 실제로 교육을 듣는 차장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M 차장은 드물게도, 교육 신청을 하고 수료를 했으며 보고서까지 제출하는 부지런함을 보였다. 처음 교육을 신청했을 때, 다른 차장들이 뭐라고 하는지 눈여겨보았는데, 생각보다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일이 본인들에게 넘어오지만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았고, 그녀는 내색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 성실히 앉아서 공부만 했을 법한, 그런 충실한 학생이었을 M 차장이라 교육을 간다고 업무에 지장을 줄 성격도 아니었다. 

교육은 어떠세요 차장님? 하며 슬쩍 말을 걸어보았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자세히 대답해 주었다. 본인에게 이러이러해서 도움이 되었고, 직원들 대상으로도 확대될 예정이니 기회가 있을 때 좀 버겁더라도 꼭 신청하라고. 민원업무에서 벗어난 터라 시간 조율도 가능했고, 그다음 해에 교육 공문이 배부되자 주저 없이 교육을 신청했다. 주말도 할애해야 했지만, 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오랜만에 업무가 아닌 다른 의미의 공부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고, 내가 집중할 만한 대상이 생겼다는 만족감에 의기양양하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의 눈치가 보인 건 사실이지만, 신청을 할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졌고, 내가 실천에 옮긴 셈이니 당당하려 했다.    

 

승진시험 공부를 한다고 출사표는 던졌는데, 다른 주제에는 반응이 없던 M 차장이 시험 관련해서는 넌지시 먼저 말을 건네 왔다. 꼼꼼하고 세심한 그녀인지라 시험도 단번에 붙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니라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그즈음해서 여수 향일암에 다녀왔는데, 그녀가 향일암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본인도 승진 시험 준비를 하며 합격기원을 빌었다고, 그녀답지 않게 길게, 슬며시 미소 지어 말했다. 아, 그녀가 승진이 간절했구나. 평소 워낙 그녀의 감정은 숨어 있었기에, 오히려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 들어 나는 기뻤다.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을 보는 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E 팀장의 영향 아래에 있던 나를 투영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분명 M 차장과 나는 다른 상황일 텐데, 내가 굳이 그녀를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도 말이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혼자 그녀에게서 나를 투영했는데, 그녀가 안다면, 달가워했을 것 같지 않다. 그녀는 한 마리의 고고한 학 같았으니. 혼자 다녀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고, 외로움마저도 다른 무언가로 승화시킬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이상이 있어 보였다. 그러니까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였다. 

 


그녀는 지사를 떠났다. 아직 젊은 차장이라 승진 대상이 아니었고, 업무를 잘하는 그녀를 원하는 곳은 많을 수밖에 없다. 환송 회식에서 인자하게, 소탈하게 웃던 그녀가 떠올랐다. 기운 없는 표정이지만 자세는 곧바르고, 겉으로는 무뎌 보이지만 팀장의 의중을 헤아려 유연하게 업무에 대처하던 그녀. 

가끔씩 보여주는 그녀의 웃음에서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참 사랑스럽고, 신경 쓰이는 상사 중의 하나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녀는 이상하게 나에게 아픈 손가락인 상사로, 여전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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