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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Oct 09. 2023

14-1. N 차장_그의 업무처리 방식이 싫었다

조금 덜 알아야 괜찮다

첫인상은 사실 요즘 드라마화된 웹툰 “마스크 걸”의 주오남을 연상시켰다. 그러니까 외적으로는 그랬다. 다른 점이 있다면 키가 크다는 정도? 머리숱도 적었고, 넙데데한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눈은, 단춧구멍만 했다. 사람을 외적으로 평가하는 직업도 아니고,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객관적으론 잘생김과는 거리가 먼, 처음에는 호감을 얻기 좀 어려운 상사였다. 

그리고 알고 싶지는 않아도 그는 담배를 자주 피워 화장실 갈 때마다 꼭 마주쳤고, 믹스커피도 줄기차게 마시는, "담배+믹스커피 = 입 냄새"라는 극강의 콜라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는지 항시 입을 가리며 대화를 했고, 그의 손에는 늘상 종이컵과 칫솔이 따라다녔다. 가끔은 I 팀장이 대놓고 N 차장에게 담배를 끊을 때도 되지 않았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나는 한창 민원업무에 노출되어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상사들과 굳이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기에 멀리서 N 차장을 보면 인사만 하는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물게도, 그는 내 옆자리 직원과는 꽤 돈독해 보였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나 퇴근 전에 굳이 찾아와서 수다를 한창 떨고 갔는데, 옆에서 들어보면, 별 영양가 없는 시시콜콜한 주제가 대부분이었다. 옆 직원은 퇴근길 방향이 같아서 N 차장과 종종 대화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차장이 재밌다고 했다. 연배나 직위에 비해 유연하고,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아재개그도 은근히 재밌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어찌 되었건, N 차장도 마음의 문을 연 사람 몇 명과 깊이 대화하는 듯해서 나와 그의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오며, 가며 인사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민원업무에서 자리를 이동했고, N 차장이 나의 직속 상사가 되었다. 이동한 업무는 처음이라 적응하는 데 시일이 걸렸고, 업무분장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지 않아 서로 오리발 내미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니,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대부분 내 차지가 되었다. 여러 부서의 보고서를 확인 후 재작성, 감사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총괄 업무는, 전임 직원이 진행하기 어려워해 N 차장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한동안 적응 기간을 주겠다며, 본인이 하던 대로 총괄 업무는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업무이니 공부할 시간을 준 셈이다. 나는 그의 배려심에 감사했고, 그 이후에도 총괄 업무에 대해 물어보면 N 차장은 본인이 하겠다고 바쁜 일 먼저 처리하라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옆에서 관련 업무 협의로 전화 내용을 들으니, 대부분 이견이 없으면 타 부서의 보고서를 조금 수정하거나 짜깁기를 하는 듯했다. 조금 찜찜하긴 했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이유 없는 호의는 없으니까.

 

하루는, 민원업무를 담당할 때 직속 상사였던, 지사의 숨겨진 고승 J 차장이 나를 먼저 찾아왔다. 특별히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고, 무심한 그가 나에게 먼저 대화를 걸어오니, 솔깃한 건 사실이었다. 그는, N 차장과 담배를 피우다가 나에 대해 이야기 한 내용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내가 일을 할 생각이 없고, 언제까지 안 하는지 두고 보았는데 정말 안 하는 직원이라며 본인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J 차장은, 같이 일했던 직원이 이런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안 좋을뿐더러, 내가 아는 땡땡씨는 그렇지 않으니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잘 해결해 보라고 충고해 주었다. 

아! 그때의 황당함이란. 내가 업무를 회피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상하게 일이 몰리는 사람과, 그 사람이 가는 곳엔 되려 일이 없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그리고 나는 굳이 분류하자면 전자 쪽에 더 가까웠다. 일을 더 물어왔으면 물어왔지 내팽개치지는 않았는데. 나는 또 이렇게, 회사에, 상사에 생각지도 못한 뒤통수를 맞았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스스로를 책망했다. 긴장감이 너무 풀렸었나. 그럼 그렇지. 상사말을 곧이곧대로 믿다니. 어쩐지 이상했는데. 

 

나는 J 차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달했고, 총괄 업무에 대해 공부하며, 다음 현안이 배부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기회는 곧 찾아왔다. 공문을 열람하자마자 N 차장에게, 이번 건부터 제가 진행해 보겠다고 보고했고, 관련 부서 직원, 전임자 그리고 업무 편람 등을 확인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생소한 업무이기도 했지만, 관련 부서 직원에게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혼자 이것저것 파는 것보다 이해도가 높아졌고, 이 업무를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라 배우면서 조금 으쓱하기도 했다. 그렇게 업무를 알아가니, N 차장이 얼마나 허술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이 업무를 모른다는 이유로, 어려운 업무라 직원이 아닌 차장이 나선다며 생색은 내면서, 정작 현안에는 관심 없이 적당히 다른 부서 보고서를 수정만 해왔던 거다. 그저 다른 부서 직원이 이게 맞아요 하면, 그 수식을 가지고 와서 붙여 넣기를 했다. 직원 입장에서는 타 부서 차장이고, 감사 결재는 그가 전담하니, 빠른 업무처리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입에 다 떠먹여 준 듯했다. 


N 차장이란 사람 자체에는 기대가 없었지만, 업무 하는 방식은 참 실망스러웠다. 간단한 총무 업무는 실제로 조사하지 않고 어림잡아 몇 명이라고 보고하기도 했는데, 언제 다 조사하고 있어~ 하며 되려 당당하게 거짓 보고로 일관했다. 그러다 보면 꼭 한 번씩 사달이 날 뻔도 한데, 그는 임기응변에 참 강했다. 신기하게도, 신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지 않으셨지만, 또 안 주시지도 않았나 보다. 실제 업무에 비해 부풀려 과장되게 보고를 해도 곧잘 넘어갔고, 간혹 가다 질문을 받아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물론, 그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겠지만, 경험에서 우러나온 융통성 일 수도 있지만, 나는 참 그가, 그의 업무처리 방식이 싫었다. 하지만, 내가 싫으면 뭐 하나. 그가 나의 상사인 것을. 


나는 그와는 다르게 일하고 싶었다. 그가 먼저 나서서 대충 일하기 전에, 좀 더 부지런하게 수요조사를 했고, 딱딱하게 보고에 임했다. 몇 번 내가 일하는 모양새를 보더니, 본인 일이 줄어들었다고 여겼는지, 어느 순간 그가 나를 친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가끔씩은 나를 칭찬하기도 했고, 내 옆자리 직원에게 마냥 실없는 소리를 했다. 막상 얕게나마 친해지니, 옆직원이 말한 대로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격이 없어지다 보니 지나가는 직원의 험담을 아무렇지 않게 했고, 이렇게 J 차장에게 내 이야기를 했거니 싶었다. 딱히 의도가 있어 다른 사람을 까 내리는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듣는 이로 하여금 네가 더 친밀하다는,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한 듯하다. 악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고, N 차장 자체가 좀 허물없는 스타일이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그는 내가 그리는, 품행방정한 상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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