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렇게 길어진 건 절대적으로 나의 자신감 부족이 컸다. D반으로 올라간 뒤 아주 초기에도 정말 아는 단어 몇 개 가지고 답을 맞히는 찍기 신공으로 연습시험의 합격선을 넘곤 했기 때문에 사실 6월부터 선생님은 시험을 볼래?라고 물어보긴 했었다. 나도 시험 자체에는 부담이 없긴 했지만, 사실 내용을 100% 알고 풀었다기보단 다년간의 시험 보기 스킬덕에 정답을 맞힌 거라 내 실력이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스스로가 스웨덴어를 말하는 게 너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9월부터 대학원 수업을 저녁때 듣게 되면서 스웨덴어를 오전반 수업을 바꾸게 되었다. 월수 2번 듣던 수업을 월화수목금 5일 듣게 되자 노출량이 확 늘었고 받아쓰기도 많이 하면서 듣기나 말하기의 벽이 조금은 낮아졌다. 배우는 속도도 여유 있고 선생님이 꼼꼼하게 설명해주시는 터라 나 같은 학생에게 딱 좋았다.
그래서 더 많이 머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제 졸업시험을 봐야 한단다. 충분히 수업일수를 채웠기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 나랑 비슷한 시기에 D로 올라온 친구들은 많이들 여름에 시험을 쳐서 이미 윗반으로 올라갔던 터. 시간은 어느새 겨울이 되었으니 고인 물도 이런 고인 물이 없긴 했다. 사실 저녁반 시절에도 이미 내용이 한 바퀴 돌아서 초기에 배웠던걸 다시 배우고 있었고, (문제는 내용은 이미 예전에 했단 내용이라 다 아는데, 따로 복습을 안 한탓에 거기에 써진 단어들은 여전히 낯설었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바꿔 수업 내용이 달랐던 오전반에서도 내용이 한 바퀴 돌았는지 얼마 전부터 같은 내용의 프린트지를 받기 시작했었다.
결국 보게 된 졸업시험. 지난 12월 12일 말하기 시험을, 13일에는 듣기, 읽기, 쓰기 시험을 보았다. 말하기는 실수들도 많았지만 어쨌든 질문에 맞게 대화도 하고 1분 동안 혼자 말하기도 어찌어찌 이어나갔다. 듣기와 읽기 문제에서는 눈에는 익숙하지만 뜻이 생각나지 않는 단어들도 상당수 있긴 했지만 답을 찾는데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쓰기는 안 틀리게 쓰려고 조심조심 쓰다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결국 감독관님께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며 등 떠밀 때까지 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이나 단어들이 내 맘에는 썩 들지 않았다. 합격과 불합격의 경계에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작문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12월 22일 선생님이 드디어 결과 메일을 보내주셨다. 한국어로 번역해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제 국가시험 성적이 준비되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읽기 - 최대 점수: 37/통과 제한: 24 귀하의 결과: 합격(34점)
듣기 - 최대 점수: 23/합격 제한: 15 귀하의 결과: 합격(20점)
말하다 귀하의 결과:승인됨
쓰다 귀하의 결과:승인됨
축하합니다! 이제 SFI가 끝났습니다. 다음 레벨의 과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학교의 SYV 연구 및 직업 지도 카운슬러인 Ann-Charlotte에게 연락하실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이메일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ann-charlotte.viklander@abf.se
메리 크리스마스!
진정으로 요한 헤르트베르그 교사 SFI
듣기, 읽기는 각 3개씩 틀렸으니 완전 잘했다고 하긴 어려워도 커트라인보다는 훨씬 많이 맞아서 나름 뿌듯했다.
결국 포기하지 않으면 끝은 오는구나.
어차피 굵고 짧게 못 할 거라면 가늘고 길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구나
이런 교훈을 얻어가는 1년 4개월이었다.
Sfi를 졸업하면 스웨덴어를 배우는 두세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SVA grund->SVA 1->SVA 2->SVA 3까지 마치는 것. 이 것까지 졸업하면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검정고시로 국어를 이수한 것과 같아서 스웨덴어로 대학을 들어갈 수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제빵, 어린이집 선생님 등등의 직업교육과 연계된 스웨덴어과정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직업학교와 비슷하다. 또 하나는 SFX라고 산업군에 따라 필요한 스웨덴어를 배우는 것인데, 사회과학, 엔지니어, 법률가등 자신의 커리어에 맞는 스웨덴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일단 나는 SVA grund를 신청해놓기는 했는데, 늘 관심이 있는 사회과학 분야로 SFX를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근데 SFX는 별도로 지원서를 작성해서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라 일단은 시도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