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은 항상 긴장과 설렘이 가득합니다. 저에게는 벌써 세 번째 회사이긴 하지만, 기존에는 두번다 한국에서 공채 신입으로 들어갔었죠. 경력직으로 입사하는 것도 그리고 영어를 써야 하는 것도 처음이라 더 긴장되었습니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40시간 유연근무제이며 주 1회 재택근무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보스였던 법인장님께서는 본인은 8시 반 전에 온다며 제가 일찍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한국에서 같은 회사에 다녔던 남편도 한국은 무조건 근태가 중요하다며 일찍 가라고 등을 떠밀었던 탓에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8시였습니다.
첫날부터 회사생활이 꼬였던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제가 채용되는 시기에 인사팀 담당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아는 분을 통해 이력서를 전달해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력서를 본 법인장님이 한번 회사로 와서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 인사팀이 없었던 탓에, 면접도인사팀 없이 법인장님과 한번, 유럽법인에 해당 업무 담당자와 한번 보는 것으로 끝났죠. 근무조건과 연봉도 법인장님 통해 대충 전해 듣는 정도였고, 계약서는 공석인 인사 담당자를 대신해서 급여담당자를 통해 받아서 사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첫 출근 날짜만 정했지, 와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어떠한 정보도 받은 적이 없었죠.
아침 8시. 일단 회사 앞에는 도착했는데, 생각해 보니 회사 태그 없이는 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네요. 법인장님께 전화드렸더니 회의가 있으신지 계약서를 봐줬던 급여담당자에게 연락을 하라고 하네요. 하지만 급여담당자는 그날 하필 휴가네요. 결국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출근하는 사람을 만나 겨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가도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리셉션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임시카드를 주고 간단하게나마 회사소개를 해줍니다. 멀뚱 거리며 로비 소파에 앉아있다가, 바쁜 법인장님 대신, 총무팀 매니저가 저를 데리고 다니며 회사를 한 바퀴 돌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그때 시작부터 꼬였던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납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법인장님은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을 설명해 줬습니다. 그중에 기존에 저의 역할(온라인몰 담당)을 하고 있던 친구도 있었는데, 법인장님은 그 친구가 제가 오면서 강등(depromotion) 된 것처럼 느낄 수 있으니 잘 달래 가며 데리고 일해보라고 했었습니다.
제가 들어간 법인은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마케팅 업무를 다른 계열사의 지점이 대행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전임자의 원래 롤은 다른 계열사 소속의 디지털마케팅 팀장이었고, 몇 달 전에 제가 하게 될 온라인몰을 추가로 담당하게 되면서 소속을 법인으로 바꾸라고 제안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소속을 옮기고 싶지 않아 거절했었고, 법인장님은 그로 인해 새로운 사람을 찾고 있던 차에 저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당시에 같은 직무로 면접을 본 사람은 저까지 총 3명. 아무래도 한국어를 할 수 있고 한국기업 문화에 익숙한 제가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최종적으로 제가 합격되었습니다. 법인장님께서는 전임자에게 소속 변경을 제안했는데 거절했으니, 그 업무를 뺏겨 속상한다 해도 어쩔 수 없지 않냐셨고 저도 그런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한참 회사 이곳저곳을 돌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던 저는 드디어 전임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온라인몰 리더 XX입니다."
라고 하는 게 아닙니까?
응?! 오퍼를 받을 때 내가 온라인몰 '헤드'라고 들었는데, 왜 저 친구가 온라인몰 '리더'라고 얘기하지?! 헤드 밑에 리더가 있는 건가?
그래서 저는 의아함을 감추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온라인몰 헤드입니다. 당신이 되게 능력 있는 친구라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일해봅시다"
저의 인사를 들은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저는 다음 사람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떴습니다.
왜 그랬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전임자는 제가 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온라인몰 담당자가 온다는 것도, 자기가 더 이상 온라인몰 업무를 안 하게 되는 걸 저와 인사를 나누면서 알게 된 거죠. 이게 무슨 아침드라마가 같은 상황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