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음 주에 시작하는 A 유통 업체 행사 제품이 포장되는 날이다. 공장에서 포장을 마친 제품이 품질 검사를 통과하면, A 유통업체 창고로 이동한 뒤 전국에 있는 유통업체의 매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전국 매장에서 물건을 받아 진열하는 시간이 고려해서 유통업체에서는 딱 행사 1주일 전에 자신의 물류창고로 입고를 시켜달라고 주문했다. 더 빨리도 말고 더 느리게도 말고 딱 1주일 전. 그게 유통업체의 요구사항이다.
10년 전 만해도 물건 납품만 해서 팔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제는 회샤의 모든 신경을 A유통의 비위를 맞추는 데 써야 할 만큼 뷰티 시장의 최고 권력자로 발돋움했다. 최근 몇년 동안 한 해 장사가 A유통에서 하는 행사의 성공 여부로 결정된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에 납품하는 수량은 총 10만 개. 5만 개는 어제 포장을 마쳤고, 남은 5만 개는 오늘 포장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어제 일정을 확인했을 때, 공장의 작업반장님은 수량이 많아서 어제도 오늘도 잔업 돌려서 겨우 마치는 거라며 잔뜩 생색을 내셨다.
오늘 포장해서 품질 검사 통과해서 내일모레 출하되면 딱 1주일 전이다. 빠뜻한 일정이었지만, 별 일만 없다면 일정에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11시 30분, 정겨울의 핸드폰에 반장님이라고 저장된 이름이 뜨며 진동이 울렸다.
“정 과장, 지금 카톡으로 사진이랑 동영상 보냈는데, 한번 봐봐, 상자가 두 번 나눠서 입고되었는데, 두 번째에 입고된 상자들이 자꾸 열리네. 일단 첫 번째 입고된 잔여분 있어서 그걸로 포장하고 있긴 한데, 3만 개 분량밖에 안 되어서, 2만 개는 포장 못 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하니? 오전 내에 해결 안 되면 오후에 3만 개까지만 하고 다른 제품 바꿔야 할 거 같으니까. 방법 빨리 좀 찾아봐.”
뒤로 질끈 묶은 머리에 옅은 화장을 한 겨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거울을 볼 때면 기미와 주름이 부쩍 눈에 띄어 고민했지만, 다행히 남들 눈에 띄지는 않았다. 덕분에 제 나이인 서른여섯보다는 두세 살쯤 어리게 보였다. 살짝 마른 듯한 몸에는 무늬 없는 크림색 라운드넥 상의 위에 베이지색 카디건이 넉넉히 걸쳐져 있었다. 검은색 슬랙스는 적당히 늘어나서 출산 후 굵어진 허리를 조이지 않았다. 거기에 카멜색 핸드메이드 코트까지 더하면 입기에 편안하면서도 회사에서 격식을 차릴 수 있는 옷차림이었다. 아이들을 낳은 이후, 겨울은 길이가 짧거나 몸에 딱 맞는 옷들을 입지 않았다. 신발도 거의 굽이 낮은 단화였다. 언제 안아달라고 할지 모르는 둘째를 픽업해 퇴근하려면 그 편이 나았다.
”아, 정말요? 왜 그럴까, 이거 꼭 맞춰야 하는 물량인데..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카톡을 열어 동영상을 켜니,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상자는 아무리 다시 넣어도 빼꼼히 열리고 있었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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