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잘 지내셨죠?”
“정 과장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지금 카톡으로 영상하나 보내드렸는데 지금 바로 확인해 주시겠어요? 공장에서 연락 왔는데 이번에 입고된 5만 개, 그 상자가 자꾸 열린다네요”
“아이고.. 칼선이 잘 안 들어갔나? 왜 그럴까.. 한 번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이 거 바로 해결해 주실 수 있죠? 저희 오늘 꼭 포장해야 A 행사 일정 맞출 수 있어요.”
겨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일정에 빠듯한 행사 제품에 문제가 일어나면 아무리 입사 12년 차 겨울이라도 마음을 졸이게 된다. 더욱이 중요한 유통과 같이 하는 일이라면, 회사의 다른 브랜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실수 없이 챙겨야 한다.
이번에 나가는 수분크림은 몇 년 동안 A유통 크림 카테고리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는 스테디셀러 제품이었다. 달라진 거라고는 행사에 맞춰 증정품이 더 들어가는 기획 사양을 만든 것뿐. 딱 하나 바뀐 기획박스가 말썽이다. 쉬운 제품이라고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신입사원 때만 해도 도대체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원망하곤 했지만, 이제는 안다. 문제가 있는 게 기본값이라는 걸.
'아무 일도 없이 생산되고 입고되고 판매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그러면 내가 왜 필요하겠어. 문제 해결하라고 월급 주는 건데.. '
겨울은 마음을 다잡았다.
담당자는 당장 운행 가능한 트럭을 찾았는지, 불량품을 바로 업체로 가져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오늘 예정된 작업을 빼고 최우선으로 재작업해서 보내주겠다며, 연신 사과를 해댔다. 있던 작업까지 미루고 재작업 해준다니 발주 전부터 중요한 제품임을 강조한 보람이 있었다.
겨울은 재빨리 다시 공장 반장님께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알렸다. 반장은 다행이라고 하시면서도, 늦어도 3시까지는 재작업한 상자가 들어와야 남은 수량을 포장해 줄 수 있다며 '3시'를 연신 강조했다. 물론 겨울이 사정한다면 30분 정도는 봐주시거라는 건 안다. 이제까지 쌓아온 정이 있으니.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는 걸 겨울도 알았다. 이 제품이 기한 내에 납품되어서 판매되는 게 겨울에게 중요한 만큼, 반장님에게는 최대한 많은 제품이 생산되어 출하되는 게 중요하니까. 냉정하게 느껴져도 어쩔 순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해내는 것뿐. 겨울 또한 자기 제품 포장해야 하니 라인을 멈춘 채 기다려달라고 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결국 지금 이 문제의 열쇠는 상자업체가 가지고 있었다. 겨울은 상자 업체에 전화를 걸어 3시에 맞춰 공장으로 재입고할 수 있도록 다시금 부탁했다. 이 제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여러 번 덧붙이며 말이다.
‘그나마 상자 업체가 공장과 가까워서 망정이지,’
겨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업체와 공장 사이가 차로 1시간 이상 걸렸다면, 꼼짝없이 2만 개 포장이 밀렸을 것이다.
어느새 옆을 둘러보니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같은 팀은 다 같이 회사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 게 암묵적인 관행이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다녀와보니 회식이 아닌 이상 점심을 따로 먹는 게 당연해졌다. 불편한 회사 사람들 피해서 점심시간만이라도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사무실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을 때면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특히 혼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와 책상에서 먹을 때면 더더욱.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