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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Sep 22. 2024

아이 낳을 결심 그리고 임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7

그런데, 선우와 결혼한 뒤, 겨울을 궁금해졌다.

선우와 자신을 닮은 아이는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성격을 가졌을까. 남자아이라면 드라마 주인공처럼 멋진 아이일까, 여자아이라면 유머감각 있고 당당하게 자기 일 잘 하는 아이였으면. 겨울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어차피 낳을 거면 차라리 빨리 갖고 빨리 복귀해서 공백 없이 일하는 게 더 나아.”


겨울이 멘토처럼 생각하는 회사 선배의 조언이었다. 그녀는 대리 말년에 첫째 둘째를 연달아 낳고 보육기관과 시터 이모님 손을 빌려 회사에 복귀했다. 야근은 거의 못 했지만 업무 시간에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일했다. 같은 팀, 유관부서에서 모두 능력을 인정하는 팀장이 되었고 이제는 임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출산 후 복직한 동기가 했던 말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아이가 회사에서 어떤 히트 제품을 출시한 것보다 뿌듯했다고 했다.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이었으니까.


미쳐 날뛰던 중학교 시절을 함께 이겨냈던 민정의 딸을 안았을 때도 겨울의 마음이 움직였다. 조그만 아이가 나에게 꼭 안겨있을 때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이란.


‘어쩌면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게 나을지도...‘


선우는 생각은 달랐다. 딩크족은 아니었지만, 맞벌이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선우는 부부 사이에 아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선우의 엄마는 선우에게 여자가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했다. 선우는 꽤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같이 해야 했고 따뜻하지 않은 식사도, 집에 오면 늘 혼자인 집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선우는 겨울이 아이를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아이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건 선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겨울의 결심이 서자, 선우는 이내 설득되었다. 사랑하는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다. 둘이 힘을 합한다면 자신 없는 아이 키우기도 어찌어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임신과 출산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많은 고민과 주저함이 있었지만, 지금 겨울과 선우가 하기로 마음먹은  지구 어디에서 일어나는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슈퍼맨처럼 세계를 구한다거나, 스티브 잡스처럼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다 하는 일을 하기로 '힘들게' 결정했을 뿐이었다.



겨울의 사무실에는 다른 회사에 비해 여자 직원들이 많은 편이었다. 특히 브랜드팀은 대부분이 여자였다. 미혼인 직원들도 많았지만, 아이가 있는 직원들도 꽤 있었다. 회사에서 만난 선배들은 배가 나온 채로도 씩씩하게 업무를 하다가 출산 휴가를 들어갔고, 배가 쏙 빠진 채로 복귀했다. 남산만 한 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장님 자세로 앉은 선배에게 힘드시겠다고 말을 건넬 때면 그저

 

생각보단 괜찮아, 할 만해


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서 겨울은 임신 전에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금방 생겼지만, 임신 후, 겨울의 컨디션은 급격히 안 좋아졌다. 주위에 임신 소식을 알리기도 힘든 초기,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러웠고 틈만 나면 정신을 잃을 것처럼 잠이 쏟아졌다. 평소보다 100배는 예민해진 후각 덕분에 출퇴근 내내 대중교통 냄새가 얼마나 심하고 괴로운 건지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도착하는 내내 급한 데로 옷으로 코를 가린 채 숨을 쉬었다. 만원 지하철에서는 더욱 어지러워서 연결통로 쪽에 쭈그리고 앉아 빨리 목적지에 기다리곤 했다. 누가 입덧이 밤새도록 술 마신 채 난폭 운전하는 차에 타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속이 안 좋고 늘 쓰러질 것 같은 초기가 지나자 조금 숨통이 트이는 중기가 왔다. 배가 점점 나오고 이따금씩 속이 쓰렸지만 할 만했다.


출산이 다가오자 더욱 힘든 시기가 시작되었다. 무거워진 배와 요의 때문에 두 시간에 한 번씩 잠에 깼다. 자주 숨이 찼고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헉소리가 절로 나게 힘차게 배를 차 댔다. 회사에서 4시가 되도록 쉬지 않고 앉아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가 자기 생각은 안 하냐고 따지듯 배가 돌처럼 딱딱하게 뭉쳤다. 그러면 겨울은 통증을 줄이기 위해 연신 배를 문지르며 일어나서 물 한잔이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겨울도 힘드냐고 묻는 회사사람들에게 그녀의 선배들처럼


 생각보다 괜찮다


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임산부이기 전에 여전히 회사의 한 명의 일꾼이었고, 회사에서 임산부이라서 받는 배려는 '유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 도와주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비록 임산부의 체력이 8시간 근무를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녀도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괜한 배려로 인한 업무 배제 당해, 주윗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뒷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물론 임신 전 몸상태와 비교하면 단연히 몸은 괜찮지 않았지만, 사실 객관적으로도 겨울의 임신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건 워낙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임신들도 심심치 않게 기 때문이다. 한 후배는 입덧이 너무 심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계속 토를 해서 휴가를 쓰며 임신 초기를 버텼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위액까지 토해내는 입덧은 중기에 들어서고도 계속되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자기 일을 똑부러지게 해내던 후배는 결국 퇴사하고 말았다.


겨울의 대학교 친구는 임신 초기를 조금 넘긴18주부터 자궁 경부 길이가 짧아진 게 문제였다. 언제 아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 기간 내내 입원을 밥 먹듯 하며 퇴원해서도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주위에는 성별까지 듣고도 유산한 직원들도 몇 되었다. 이미 임신 사실을 다 알고 있을 만큼 배가 불러 있다가 겨우 몸을 추스르고 돌아온 그들이 휴가를 마치고 복귀할 때면 어떤 말로 위로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말을 아끼곤 했다. 그런 임신에 비하면 겨울의 임신은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괜찮았다고 괜찮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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