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 반. 한참 팀원들끼리 돌아가며 자신이 맡은 채널 리뷰하던 중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하고 겨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둘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이었다. 겨울은 양해를 구하고 잠깐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며칠 전부터 콧물이 조금씩 흘리더니 결국은 열이 나나보다. 오후부터 부쩍 기운이 없더니 좀전부터 누워있기 시작해서 열을 재보니 38도란다. 고열은 아니지만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에 겨울은 바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계셨던 엄마가 둘째 아이를 픽업해가시겠다고 하셨다. 만약 엄마가 도와줄 수 없었다면 어땠을까. 겨울은 회의 중간에 꼼짝없이 조퇴를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란 쉽지가 않다.
남편 선우의 말처럼 아이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까?
회사 신입교육시절에 겨울은 다른 계열사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입사했던 선우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대다수가 27-28살 남자인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겨울과 선우는 몇 안되는 25살 동갑내기였다. 겨울은 졸업하고 바로 회사에 들어간 뒤 조금 늦게 신입교육을 받으러 갔고, 선우는 학석 통합과정을 마치고 병역특례로 갓 입사했을 때였다. 동갑이라서 그런지 겨울은 선우가 다른 동기들보다는 편하게 느껴졌다. 선우는 어리지만 가벼워보이지 않았고, 수다스럽지 않았지만, 필요한 때는 빼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 툭툭 던지는 농담이 겨울의 취향이었다. 교육이 끝난 뒤 몇번의 뒷풀이를 하며 둘은 가까워졌고, 29살이 되는 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각자 알뜰살뜰 모은 돈 1억 조금 넘는 돈에 은행 대출을 조금 껴서 회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17평 정도 되는 구축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그리고 1년여년의 신혼을 보낸 뒤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사실, 겨울은 아이를 갖는데 회의적인 마음이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학창시절은 내 아이에게 다시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군지에서 살짝 떨어진 지역에 위치했던 그녀의 중학교는 중2병이 만연한 곳이었다. 흔히 일진이니 날라리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노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펴서 화장실을 너구리 소굴로 만들어놓았고, 만만한 여자 선생님이 하는 수업시간에 대놓고 선생님 말을 무시하며 수업을 방해했다. 혼란의 시기였다. 겨울이 인문계 여자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에야 그런 혼란은 잠잠해졌다. 대부분의 날라리들은 실업계 고등학교로 빠졌고 아무리 학군지가 아니어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지상 최대 과제는 대입이었다. 공부, 공부, 공부. 끊임없이 수업을 들었고, 문제집을 풀었고, 답을 맞췄다. 주말이면 하루종일 폭이 한 뼘 밖에 안 되는 의자에 앉아 한 뼘짜리 책상에 문제집을 펴놓고 단과반 수업을 들었다. 기지개를 켜면 뒷사람에게 부딪히는 콩나물 시루 같은 강의실. 그리 크지 않은 강의실에는 수백명씩 앉아 있었고, 추운 날에도 그 안은 늘 이산화탄소 가득한 온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능 성적이 나왔고, 그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었다. 고3시절은 빛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 터널처럼 깜깜했고, 답답했다. ’대학만 가면‘이라는 말을 계속 되뇌이며 그 터널을 지나야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 첫 일년은 너무 행복했다. 고등학교 때에 비하면 수업 시간은 반의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영어로 된 원서가 큰 걸림돌이었지만,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던 거에 비할 순 없었다. 하지만, 곧 취직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토익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공모전을 준비했다. 문과라면 3, 4학년 때 인턴은 필수였다. 겨울도 어학원을 다니며 영어 점수를 만들었고, 이력서에 쓰기 좋다는 마케팅 동아리에 들어가서 공모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3학년 겨울, 4학년 여름, 겨울은 운좋게 인턴자리들을 구했고, 4학년 2학기는 여름에 시작한 인턴이 정규채용으로 전환되면서, 대부분의 강의를 레포트로 대체하면서 마무리지었다.
겨울의 삶은 늘 경쟁 속에 있었고, 바빴다. 주위에서는 늘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신이니, 컴퓨터 자격증이니, 영어니, 봉사활동이니... 겨울의 학창시절은 즐겁지 않았고, 또하나의 생명체를 이 세상에 낳아서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