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입소를 했는데 왜 보내질 못 하니
끝이 안 보이는 터널 9
그 어린이집은 원아 수가 100명이 넘는 꽤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그 해부터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이 된 곳으로 꽤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 요건을 맞추기 위해 정원을 늘려놔서 대기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리고 새 학기 때 입소했던 아이들 중 2명이나 급하게 이사를 가기로 한 바람에 급하게 빈자리가 생길 예정이었던 게 겨울에게는 호재였다.
대기인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겨울에게는 맞벌이 가산점이 있었다. 어린이집 설명에 따르면, 학기 중에 자리가 났다고 전화하면 맞벌이 집은 거의 갈 수 없다고 답이 온단다. 이미 아이를 돌볼 방법이 이미 세팅된 상태라, 자리가 나도 급하게 바꿔서 새 어린이집으로 보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이집 적응에는 최소 1주일 이상이 필요했고 아이를 새로운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기 위해 갑자기 휴가를 내기란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선순위 아이들에게 연락하긴 하겠지만 대부분 거절할 거라며, 지금 바로 자기네 어린이집으로 대기를 걸어놓으라고 했다. 맞벌이 증명서만 늦지 않게 보내주면 바로 다음 주에 충분히 입소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어린이집 적응기간은 겨울의 엄마가 도와주셨다. 아이를 낳으니 부모님께 늘 손만 벌리게 되었다. 하루종일 봐주실 수 없어도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도와줄 부모님이 있다는 건 꽤 행운아였다. 회사에는 친정과 시댁 모두 도와줄 사람이 없는 동료들도 꽤 있었다.
겨울이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아이는 어떻게 하세요?'라는 물음에 그냥 '어린이집 보내요, 이모님이 오셔요, 부모님이 봐주세요' 정도로 말했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실상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동료들은 얼마나 어린이집에 자리 찾기가 힘들었는지, 적응하는데 오래 걸렸는지, 회사를 다니며 등하원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이야기했다. 시터이모님께 맡기는 분은 얼마나 좋은 사람 구하기가 힘든지, 혹시라도 그만두실까 싶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모시는지 알려줬다. 명절 때 인사처럼 상여금을 드리는 건 흔했고, 아침마다 이모님이 점심때 드실 걸 챙겨놓고 출근한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았다. 그렇다고 부모님한테 맡기는게 꼭 편하지만은 않았다.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빨리 사람 구하라고 난리라는 분도 있었고, 육아관이 안 맞아서 사이만 나빠졌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저런 속사정을 듣다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 중에 그 정도 사연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시터이모님이 떠나시기 전에 어린이집을 찾은 건 천만다행이었다. 첫주에는 거의 1시간, 2시간만 있다가 하원을 하는터라, 이모님은 어린이집 첫주까지 근무해주시기로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친정엄마가 하원해서는 이모님이 돌봐주시는 적응기간이 시작되었다. 시터 이모님에게 적응할 때랑은 또 달랐다. 그 전에는 비록 겨울과 선우는 없었어도 자기 집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모르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는 처음에 많이 낯설어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있는 새로운 장난감과 겨울의 아이를 유독 예뻐해 주신 담임 선생님 덕분에 첫 시설치고는 꽤 빠르게 적응을 마쳤다.
하지만, 계속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느냐는 적응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안 그래도 돌이 지나면서 흔히 뱃속에 가지고 나왔다고 말하는 면역력이 없어진 데다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 몰려있던 탓에 아이는 쉽게 감기에 걸렸다. 그냥 코만 조금 흘리는 정도라면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열이 나기 시작하면 빼도 박도 못 하고 가정보육 당첨이었다. 그럴 때면 겨울과 선우는 밤새 한두 시간 간격으로 체온을 체크하고 해열제를 먹이며 기침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밤을 설쳤다. 그러고 나서 아침에 출근할 때면 결국 겨울은 엄마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두 사람이 해보려고 했었다. 아이가 39도, 40도까지 열이 나기 시작하면 둘 중에 한 명이 휴가를 내고 집에서 아이를 돌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감기는 빨리 떨어지지 않았고, 또 너무 금세 다시 아팠다. 게다가 보육기관에 다니다 보니 감기만 걸리는 게 아니었다. 감기가 나으면 수족구니 노로바이러스니 다른 병을 걸려오는 통에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다. 아이를 돌봐달라고 보내는 곳에서 감염되어서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아마,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다면 아이는 훨씬 덜 아팠으리라. 그러면 매번 아플 때마다 시작되는 밤샘 간호와 가정보육도 필요 없었겠지.
겨울보다 일찍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던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조금 크면 나아진다고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도대체 그날이 언제 오는 건지 겨울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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