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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Sep 27. 2024

육아 전쟁 그리고 남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10

회의 내내 첫아이의 임신부터 출산, 시터이모님을 거쳐 어린이집을 보낼 때까지 힘들었던 일들이 머리 속 가득채웠다. 하지만 어느새 5시였다. 팀회의는 대충 마무리 짓고 겨울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니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퇴근길에 둘째를 데리고 갈 텐데 열이 나는 둘째는 이미 집에 있을 것이다. 겨울이 도착할 때쯤이면 첫째도 태권도 버스에서 내려 집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태권도 학원이란 맞벌이 부모들에게 얼마나 은혜로운 곳이던가. 매일 유치원에서 직접 픽업해서 태권도 도장으로 데려가서, 신나게 애들 체력을 빼주고 난 뒤,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 거기에 예절 교육은 덤이다. 두 손을 배 위에 공손히 모으고 90도 고개를 숙이며, ‘부모님 잘 다녀왔습니다. 사범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아이라니.

집에 도착해 보니, 첫째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고 겨울의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이제 오니? 빨리 왔네?”
“땡 하자마자 달려왔죠. 엄마 고생 많으셨어요. 둘째는 좀 어때요?”
“약 먹더니 방에서 잔다. 다행히 열은 많이 내렸더라”

방으로 들어가니 이불 위로 통통한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땀을 잔뜩 흘렸는지 머리가 젖어있다. 겨울은 아직 발그레한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밥 다 되었다. 얼른 저녁 먹어라.”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도 엄마 앞에서 겨울은 다시 어린애가 되고 만다. 대학 가고 결혼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내 손으로 돈도 벌고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하는 그런 어른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제 밥도 못 해 먹어서 엄마 손을 빌리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비단 저녁뿐인가.. 애들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바로 엄마한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뭐…


선우가 있었으면 좀 더 나았을까?


다시 4년 전의 육아전쟁이 떠올렸다. 그땐 아이가 한 명이었는데도 늘 힘겨웠지 않았던가. 그때도 등하원은 겨울의 엄마의 손을 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저귀며 이유식, 간식을 떨어지지 않게 챙기는 게 늘 버거웠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에 맞게 철마다 계절에 맞는 옷과 신발을 사줘야 했고 발달 과정에 맞게 책이며 교구, 장난감을 들여야 했다. 뭐 그리 ‘국민템'이 많은지. 국민 바운서부터 시작해서 모빌, 소셔, 러닝홈, 미끄럼틀.. 등등. 원목 가구들 사이에 덩치 큰 장난감들이 알록달록한 존재감을 잔뜩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엄마들은 이유식을 한 달 치 식단을 짜놓고 매 끼니 다른 반찬을 만들어 먹이던데. 어떤 엄마는 매일 모든 장난감을 닦고 소독하고 매일 이불과 아이 옷을 삶아준다던데. 어떤 엄마는 매일 한글책과 영어책을 열 권씩 읽어주고 몬테소리 교구로 놀아주던데. 아이 정보를 찾으려고 인스타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겨울은 자꾸 작아졌다. 영양, 위생, 교육, 어느 하나도 똑 부러지게 해 주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런 걸 욕심낼 상황도 아니었다. 기본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으니까. 정신을 어디다 빼놨는지, 기저귀도 제때 주문하지 못해서 근처 마트에서 인터넷보다 50%는 더 주고 기저귀를 사야만 했던 날도 있었다. 어린이집 식판은 맨날 까먹고 아침에 닦고 있었고, 입혀보네라는 한복을 깜박 잊고 안 사서 추석 기념사진에 겨울의 아이만 평상복을 입은 채 서있었다. 애들 생일은 어찌나 많은지, 어린이집 생일 파티 때면 적당한 선물을 골라 포장해서 보내는 게 일이었다. 2살짜리에게 적합한 2천 원 상당의 선물이라니. 도대체 저 돈으로 살 수 있는 제대로 된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특히 군것질도 못 하고 아직 놀이도 제대로 못하는 2살짜리에게 말이다.

그리고 집안일. 그나마 엄마가 집으로 와계시는 날에는 그나마 집이 깨끗했지만, 엄마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바로 친정 집으로 가시는 날이면 집이 난장판이었다. 개수대에는 설거지거리들이 가득했고, 빨래가 빨래 통 밖으로 나올 지경이었다. 매트 사이에는 떨어진 아기 과자 부스러기들이 잔뜩이었고, 거실은 온갖 장난감과 책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겨울은 선우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집안일과 육아에 참여하길 원했다. 선우는 겨울이 시작하면 옆에서 거들기 시작하는 정도였지,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건 거의 없었다. 아이 옷, 기저귀, 생일 선물, 한복 등등 각종 준비하는 건 으레 겨울의 몫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어차피 자기가 사면 겨울의 마음에 안 들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늘 자기도 노력하고 있는데 자꾸 뭐라고 하니 하기가 싫어진다고 말했다. 사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저귀 하나를 사더라도 계절, 아이 엉덩이 피부와 성장 속도에 맞춰 제품을 골라서 사야 하는데, 선우는 여름에 겨울 기저귀를 주문하거나 이미 꽉 끼는 사이즈를 또 주문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한 팩당 수량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주문해 비싸게 사기도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면 겨울은 잔소리를 했고, 선우는 마음이 상했다.


사실 아이를 낳기 전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정도의 작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둘 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예민했고 걸어 다니면 걸리는 장난감과 쓰레기는 짜증을 돋궜다. 연애 때 거의 싸운 적이 없는 겨울과 선우였지만, 아이를 낳은 뒤 점점 서로를 향하는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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