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연두 Sep 29. 2024

독박 육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11

먼저 간다. 좀 전에 세탁기 돌려놨으니까, 끝나면 잊지 말고 널어라.

엄마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준아, 할머니한테 인사해야지.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저녁을 차려주시자마자 엄마는 친정집으로 떠나셨다. 집에 있는 아빠를 챙겨주시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예순이 넘도록 딸과 손주, 남편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정신없어 보이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과 잘 익은 조기 한 마리가 식탁에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이 락앤락 통에 담겨있었다. 여기에 엄마의 손길이 안 들어 있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조기의 가시를 발라서 첫째 녀석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중간에 목 막힐까 봐 물도 떠다 줬다. 하지만, 물은 절반도 차있지 않았다. 아주 높은 확률로 아이가 컵을 엎는 탓에 여러 번 따라줘야 할지라도 물은 항상 조금씩만 넣어준다. 아이의 시중을 드는 중간중간에 겨울도 후다닥 밥을 입에 넣었다. 얼른 먹은 뒤 아이들 식판들을 꺼내 놓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까먹기 전에 해놔야지 안 그러면 아침이 너무 바쁘다. 그때 ‘엥’하고 둘째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고무장갑을 벗고 방으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진 탓에 불이 꺼진 방 안이 깜깜했다. 둘째가 잠에서 깼는데 어둡고 아무도 없어서 놀랐나 보다. 안전바가 채워진 침대 안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다.

겨울은 아이를 안은채 엉덩이를 토닥이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달랬더니 겨우 울음이 멎었다.

하린아, 잘 잤어? 유치원에서는 많이 아팠어?
엄청 아프지 않고, 조금 졸렸어.

아이는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눈을 반쯤 감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겨울은 아이를 한 번 더 꼭 안았다. 그러자 밥을 다 먹었는지, 첫째 하준이가 다가와 소파 옆에 앉았다.

하준아, 맛있게 먹었어?
네, 잘 먹었습니다. 엄마, 근데 조기에 조금 뾰족한 게 있었어.
진짜? 가시가 안 빠진 게 있었나 보다, 목에 걸렸어?
아니 그냥 있길래 뱉었어.

아무리 꼼꼼히 가시를 발라도 언제나 하나둘은 남아있다. 내가 먹다가 나오면 다행인데, 잘못해서 아이 목이라도 걸린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래도 이제 6살이 되니 그냥 삼키지 않고 뱉어낼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없는 겨울의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대견하다.

둘째가 어느 정도 진정되어 보이자, 미역을 잘게 자른 미역국에 밥을 말아 둘째에게 건네곤 겨울은 설거지를 다기 시작했다. 설거지가 끝나면 바로 애들 목욕을 해줘야 한다.

내일은 또 어떻게 하지? 둘째는 열이 떨어지기 전까지 어린이집에 못 갈 텐데.. 밥 먹기 전에 다시 열을 재보니 37.2도다. 낮보다 열이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완전히 내리지 않았다. 자기 전에 약을 먹었다고 했으니, 밤잠 자기 직전에 한 번 더 약을 먹이면 될 것이다.

하준아 이제 목욕하자!

조용하다. 겨울은 방으로 향했다.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던 첫째는 아직도 장난감에 손을 못 떼고 있었다.

빨리 하자! 얼른 장난감 정리하고 화장실로 와야지 뭐 하고 있어.

놀고 있는 아이를 떠밀듯하여 화장실에 데리고 왔다. 아이가 옷을 벗는 것을 지켜보다 보니 답답하다. 도와주면 20초면 될 일을 몇 분째하고 있는 건지, 그래도 조금 더 지켜봐 주기로 했다. 언젠가 혼자 해야 할 텐데, 혼자 연습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겨울은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느릿느릿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 와야 했다.

그때 둘째가 겨울을 부른다. 물을 더 따라달란다. 둘째에게 물을 따라주고 겨울은 화장실에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빈 손임을 깨닫고 다시 나와 아이들 방을 향한다. 아이들 용으로 산 서랍장을 여니 칸 가득 아이들 옷이 들어있다.

사이즈가 안 맞는 옷들은 정리해야 하는데.. 한겨울옷들을 이제 집어넣어야 하는데…

넘쳐나는 옷들을 보니 할 일들이 떠오른다. 그때 삑삑거리면서 세탁이 끝났음을 알려준다. 겨울은 서둘러 화장실에 갈아입을 옷을 넣어주고 세탁기를 향한다. 줄어들거나 구김이 많이 가는 옷을 뺀 뒤 다시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건조기능을 눌러 켠다. 건조기를 사면 세상이 바뀐다던데, 아쉽게도 겨울이 사는 집에는 건조기를 넣을만한 공간이 없었다. 그나마 세탁 건조 겸용인 세탁기인 게 다행이었다. 건조기처럼은 아니지만, 세탁기의 건조를 하고 난 뒤 널면 금세 보송보송 말랐다.

겨울이 세탁기에서 꺼낸 옷들을 탁탁 털어 건조대에서 널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하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눈에 샴푸가 들어갔나 보다. 겨울은 옷을 널다 말고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기로 물을 뿌리며 다른 손으로 연신 눈 주위를 문질러가며 닦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부엌에서 우당탕하며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겨울은 하준이에게 계속 물을 뿌리라고 지시하곤 부엌을 향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