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으로 가보니 바닥에 컵이 나뒹굴고 있고 둘째는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겨울의 눈치를 살핀다.
조심해야지, 옷은 안 젖었어?
괜찮아. 하나도 안 축축해.
옷소매가 젖었지만, 혼날까 봐 괜찮다고 대답하는 아이가 안쓰럽다. 하지만 밥풀이 여기저기 떨어진 채 젖어있는 바닥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엄마가 바닥 정리할게, 밥 얼른 먹고 씻고 옷 갈아입자.
걸레를 들고 와 바닥에 있는 물기를 닦자, 밥풀이 따라온다. 그 상태로 문지르면 밥풀이 뭉개져 바닥에 묻게 될 것이다. 겨울은 걸레 붙은 밥풀을 떼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밥풀을 하나씩 줍는다. 바닥에 더 이상 떨어진 밥풀이 없는지 확인한 뒤, 주운 밥풀을 쓰레기통에 넣고는 끈적이는 손을 닦는다. 얼마나 먹었는지 확인하려고 식탁을 보니, 식탁 위에도 밥풀이 잔뜩이다. 흐린 눈을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하준아, 아직도 눈 아파?
다행히 첫째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겨울은 아이 손에 든 샤워기를 건네받아 머리부터 구석구석 비눗물을 씻어낸다. 수건을 꺼내 아이 몸의 물기를 닦은 뒤 젖은 머리를 감싼다. 수건 위에서 두 손이 빠르게 움직이자 아이가 깔깔거리기 시작한다. 평소엔 그 모습이 귀여워 겨울도 모르게 미소 짓곤 했지만, 오늘은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충분히 없앤 뒤 드라이기를 켜 부지런히 손을 흔들어가며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한다. 겨울은 로션을 발라주고 속옷을 입는 걸 도와주다가 나머지는 아이의 몫으로 남겨두고 부엌을 향한다. 둘째 아이 볼에 붙은 조그만 미역 조각과 밥풀을 떼어주고는 숟가락을 건네받아 그릇의 남은 미역국밥을 모아 입에 넣어준다. 바닥까지 깨끗해졌다.
하린아, 오빠 옷 다 입으면 화장실 가서 옷 벗어. 엄마가 엄청 빨리 씻겨줄게.
아이가 일어난 자리에는 또 밥풀 천국이다. 겨울은 식탁, 의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밥풀을 주워 버리고 물티슈를 한 장 뽑아 대충 닦고는 화장실로 향한다. 첫째는 거의 옷을 다 입었다.
하준아, 나가서 하린이 좀 데려와줘
소매가 젖은 윗옷을 벗기는데 아이 머리끝에 붙어 있는 미역국물과 밥풀이 눈에 띈다. 감기 걸려서 손, 발, 세수만 시킬까 했는데, 계획을 변경해야 할 듯하다. 재빨리 옷을 벗기고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감고 몸을 씻겨준다. 이제 부쩍 길어진 머리 탓에 머리 말리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열이 있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신경 써서 머리를 바짝 말려준다. 그때 밖에 있는 하준이가 겨울을 부르기 시작한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끝나.
목욕을 끝낸 뒤에도, 한참을 아이들과 실랑이하다 보니, 시계의 짧은바늘이 9를 가리키고 있다. 겨울은 서둘러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고 이를 깨끗이 닦아준 뒤 아이들을 안방으로 데리고 갔다. 오른팔과 왼팔 위에 하나씩 아이를 누이고는 아이들이 골라온 책을 들었다. 평화로운 잠자리 독서는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아이 둘이 서로 자기 걸 먼저 읽어달라고 졸라대기 사작했다.
어제 하린이 거 먼저 읽었으니까, 오늘은 오빠 꺼 먼저 읽자.
하지만, 둘째는 포기할 줄 모르고, 자기 책을 먼저 읽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한다. 겨울은, 둘째가 아파서 좀 예민해졌나 싶어 첫째에게 묻는다.
하준이가 오늘 양보 좀 해줄 수 있어? 오늘 하린이 아팠으니까.
하지만, 첫째도 완강하다. 어제 너 책을 먼저 읽지 않았냐며 동생에게 짜증을 낸다. 그 소리를 듣고도 둘째는 못 들은 것처럼 겨울을 쳐다보며 계속 자기 책을 먼저 읽어달라고 졸라댄다.
둘이서 합의해. 계속 이렇게 싸우면, 책 안 읽고 바로 잘 거야.
괜한 말을 했나. 안 읽고 잔다는 말에 둘째의 발작 버튼이 눌러지고야 말았다.
아니야, 읽고 잘 거야, 읽고 잘 거라고!
둘째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그만. 조용히 있으면 차례대롤 읽어줄 거야.
하지만, 둘째의 귀에는 이미 겨울의 말이 들리지 않나보다. 둘째가 계속 짜증을 내며 소리 지르자, 겨울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만하라고 했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겨울은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불을 꺼버렸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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