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품은 사직서 2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나오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
겨울에게는 후회 없는 6개월, 아름다운 마무리하기라는 히든 목표가 생겼다. 아직 동료들이 출근하기 전인 이른 시간을 틈타 노트를 펼쳤다. 먼저 지금 하고 있는 일부터 정리했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다시 취직을 한다면 도움이 될법한 일들이었다.
홍보용 영상, 신제품 런칭쇼 기획, 컬래버레이션 기획… 회사에 있기에 해볼 수 있는 일들, 혼자서 일하게 된다면 비용 때문에 선뜻 못 할 일을 생각했다. 직함이 없어서 그렇게 불리지 않을 뿐이지 다른 회사의 차장급의 일을 하는 겨울은 어느새 팀원 관리나 대행사 관리, 채널관리 같은 일들이 더 주가 되었다. 겨울이 신입이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TV보다는 SNS, 블로그, 동영상사이트가 더 의미 있는 홍보 방법이었고, 잡지광고보다는 검색광고나 포털 광고가 더 힘이 실어졌다. 그에 말 맞춰서 새로 발굴한 대행사들은 디지털 마케팅에 빠꼼이들이었고,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회사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예산을 배정할 뿐이었다. 겨울이 나가게 된다면 아마 그 정도의 예산을 만지는 곳에 가긴 어려울 것이다. 한국만 해도 겨울의 회사 정도로 광고비를 쓰는 화장품 회사는 손에 꼽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좀 더 제대로 기획부터 참여해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기존에는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이 금액에 최대효율로 예산집행해 주세요’라며 대행사에 모두 일임했다면, 이제부터는 시간을 내서 들여다보는 것이다. 어떤 검색어로, 어떤 타깃으로, 어떤 콘텐츠로 디지털 마케팅을 할지 꼼꼼하게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컬래버레이션은 5월에 리뉴얼하기로 한 키즈라인에 녹여서 해보면 좋겠다. 기존에는 론칭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플루언서들을 접촉했지만, 이번에는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육아인플루언서들을 섭외해서 의견을 받으며 개발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중간중간에 다시 샘플이 나오면 테스트하게 하고 그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서 각자 SNS에 포스팅하게 하고 모아서 나중에 홍보뉴스로 뿌려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예산도 필요하지만 계약이나 일정 관련해서도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빡빡해도 해볼 만할 것이다. 팀장과 논의하기에 앞서 알아보기 위해 광고홍보팀 담당에게 간단히 메일을 써넣었다. 시간 되실 때 자리로 찾아가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상황은 전혀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겨울은 일찍 출근해서 후다닥 일을 끝내고 일찍 퇴근해서 어린이집에서 둘째를 픽업해서 독박육아를 시작해야했다. 근데 6개월이라면 조금 뻔뻔해도 가끔은 아이들을 엄마에게 부탁하고 야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 엄마도 자유를 찾으실테니.
노트에 써놓은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보며 구체적인 실행안을 짜다보니, 아무리 엄마의 손을 빌리더라도 물리적으로 6개월안에 다 해내기 힘들어보였다. 8개월 정도면 다 하고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10개월? 최대한 일을 쳐내고 중요하다는 일이나 잘 마무리짓자하던 사람이 어디갔냐 싶게, 열정이 넘쳤다. 아름다운 마무리, 후회 없는 마무리를 하고 싶다. 손뼉 칠 때 떠나고 싶다는 떠나고 싶다는 운동선수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은퇴 날짜를 받아놓고 사그라져가는 불꽃을 마지막으로 활활 태우던 . 혹시라도 빠진 게 있나 싶어 찬찬히 이제까지 회사생활을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채우고 싶은
아, 그래 그게 남았지. 지금 팀장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 더 이상 부족하다는 소리 듣지 않게. 떠난다는 말을 할 때 아쉬워하게 해 주리라. 그렇게 되면 지난 면담 때 상처받은 자존심이 치유되기라도 할 것처럼 겨울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음 내용은 한국에서 아이키우기가 힘들어서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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