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품은 사직서 10
폭풍 같은 두 달이었다. 겨울은 버스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종로에서 마포까지 뻗은 도로에는 잠깐 북적였던 종로를 지나니 거리는 한산했다. 아마도 그 길에 있는 수많은 건물에 있는 회사에서 며칠 전까지 겨울이 그랬듯이 일하고 있으리라. 고용 복지 센터로 가기 전에 퇴직 사유 관련 사실 확인서를 받기 위해 회사를 들렸다 나온 길이었다. 늘 다니던 곳이었지만 외부인으로 회사를 방문하니 기분이 묘했다. 출장도 아닌데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것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늘 회의에 회의 준비에 자료 작성에 바빠서 몰랐는데 이 시간 회사 밖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팀장과 면담이 끝난 뒤, 인사팀과 면담, 부서장 면담까지 끝나니 업무 인수인계가 남았었다. 앞으로 담당할 팀원에게 건네주기 위해서 벌여놓은 일들을 어느 정도라도 마무리 짓는 게 필요했다. 개발하던 제품들의 진행사항을 체크하며 출시가 아직 남은 제품들은 하던 것만 정리해서 최대한 빨리 넘겼다. 일정이 급한 신제품은 부자재업체니 용기 업체, 디자인팀, 연구팀, 기획팀에게 일정이 급한 것은 계속 요청하며 나가기 며칠 전까지 후임자와 함께 챙겼다. 자신이 곧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들도 다른 사람 손에 넘겨지면 다시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어도 출시하는 걸 보지 못하면 얼마나 늘어질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해놓은 게 아까워서 모른 척 떠날 수가 없었다. 겨울이 발주내서 생산된 재고들도 떠날 때까지 모른 척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팀장의 제안으로 시작한 5월 핸드크림세트는 반에 반도 팔지 못한 채 창고에 있었다. 6개월 후면 장기 재고 편입되면서 특별 관리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전에 파는 게 중요했다. 핸드크림이야 어차피 날 추워지면 팔릴 테니, 장기재고가 되더라도 금세 없어지긴 할 테지만, 그때 맞는 새로운 패키지로 기획세트를 만들어 새로 내려면 기존 재고를 다 털어내는 게 중요했다. 일단은 제일 가까운 대목인 추석 프로모션에 넣어놓고 후임에게도 한 번 더 말해놨다.
십여 년을 다니면서 쌓인 자료들은 회사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각종 제품 사진이며, 광고 사진, 프로모션이니 보고서까지. 노트북의 하드가 꽉 차서 추가 용량까지 요청해서 저장해 놨던 자료들도 안녕이었다. 지금 브랜드와 관련된 자료들은 공용 드라이브에 백업 겸 올려놨지만, 이미 떠나온 브랜드의 자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나중에 몇 주년 기념행사라도 하려면 예전 자료들이 필요할 텐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마지막 남은 거였으면 어떻게 하지? 설사 어떻게든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채워 넣을 걸 알면서도 겨울은 괜한 걱정을 했다.
마지막 출근을 앞둔 날, 오랜만에 친정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난 뒤 엄마와 겨울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사과를 깎아 놓은 접시 밑으로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은 갈색의 원목식탁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내일이 지나면 엄마가 더 이상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골목을 지나 겨울의 집에 올 일이 없으리라.
난 박서방이 밉다.
갑자기 왜요?
박서방만 아니면 이렇게 회사 그만 둘 일도 없었을까 아니야.
아니야, 그게 꼭 애들 아빠 탓이겠어..
근데 또 그런 생각도 들더라. 내가 더 열심히 도와줬으면 계속 다니지 않았을까.. 하루종일 일하다 돌아왔는데 쉬지도 못했잖아. 혼자 애들 보느라 힘들었을 텐데… 좀이라도 더 애들 봐주고 그랬으면 네가 회사 잘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
예상치 못한 엄마의 말에 겨울의 코 끝이 찡하며 눈물이 고이려 했다.
아니야, 엄마가 얼마나 더 해.. 지금도 충분히 많이 도와줬지.
그리고, 엄마가 아무리 도와줬데도 생각하는 그런데까지 못 올라갔을 거야. 그냥 버티는 거였어. 더 이상 올라가지도 못하고 떨어지지도 않고 그냥 제자리에서…근데 이제 잘 모르겠어.. 뭘 위해서 버티고 있는 건지.. 그냥 이렇게 꾸역꾸역 하루 이틀 일 년 십 년 버티다가 내 인생이 끝날 것 같아서 가는 거야.
어쩌자고 나는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엄마에게 더 못 해줘서 미안한 사람이 되었는가. 겨울은 아직도 엄마에게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말은 안 했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너 엄마한테 자랑이었다. 대놓고 자랑은 안 했어도, 누가 어디 다니냐고 물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조금 으쓱했어. 니 동생은 학교도 취직도 얼마나 고생시켰니.. 너는 학교니 취직이니 때 되면 척척 가는 덕분에 걱정이 하나도 없었는데..
자식 자랑이라면 세상 싫어하는 줄 알았던 엄마의 고백에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어쩌면 엄마는 겨울의 아이를 봐주면서 엄마가 이루지 못 한 꿈을 겨울이 이어가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겨울의 엄마도 겨울을 가지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겨울의 동생이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이것저것 해보려는 시도는 했지만, 거의 10년 가까이 일을 안 했던 엄마가 갈 제대로 된 곳은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울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오른쪽으로 고용 복지 센터가 있는 블록이 보였다. ‘배우자와 합가로 인한 퇴사 시 안내‘라고 글씨가 비치는 파일을 옆구리 끼고는 오른손을 들어 벨을 눌렀다. 회사 앞에서 탄 버스였다. 그 버스를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