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연두 Dec 07. 2024

경험의 폭, 이해의 폭

마음속에 품은 사직서 9

겨울의 팀장은 겨울이 거의 1년반째 남편과 떨어져 두 아이를 돌보며 육아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얼마나 힘들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이 겪지 않은 일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여러 팀장들을 겪어봤을 때 역시 같은 워킹맘인 팀장이 이해의 폭은 제일 컸다. 아이들은 얼마 자주 아프고 방학은 또 어찌나 긴지.. 아이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게 외줄 타기의 연속임을 그들은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었다. 아무리 천운을 타고나서 좋은 이모님을 구한다고 해도, 아니면 부모님이 전적으로 도와주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사정을 알아서 더 야박하게 구는 경우도 있긴 했다. 본인이 헤쳐온 회사 생활은 지금보다 더 배려가 없었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웬만한 의지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사자가 벼랑 끝에서 새끼 사자를 떨어뜨리 듯 강하게 키우려는 느낌을 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육아와 커리어 사이에서 고민할 때 ‘조금만 더 있으면 훨씬 편하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격려해 주는 것도 그들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남자들이 많아지는 직장생활에서 그들은 롤모델이자 멘토인 동시에 같이 유리천장을 부셔나갈 동료였다


그다음은 맞벌이하는 남자팀장이었다. 일반적으로 똑같이 일을 해도 아이들 육아나 가사는 여자들이 더 많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자는 ‘아니다, 나는 육아에 똑같이 아니면 오히려 더 참여한다 ‘며 억울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아이에게 맞는 기저귀가 어떤 브랜드 기저귀에 몇 사이즈를 사야 하는지, 때 되면 아이들 옷이며 양말 신발, 모자까지 날씨에 맞게 준비해 주는지, 아이들 알림장 보고 준비물 챙겨 넣어주는지, 지금 학교에서 수학은 뭘 배우고 국어는 무슨 내용 나오는지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잘 모를 것이다. 반대로 여자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관련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기저귀 얘기만으로도 한 시간은 얘기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아무리 무게추가 부인 쪽으로 기울어있다고 한들 회사 다니며 혼자 모든 걸 다 해낼 수 없다. 그래서 맞벌이 남편들은 매일 발 동동 구르는 맞벌이 생활을 함께하며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결혼 안 한 팀장은 연애를 책으로 배운 사람이 연애를 알 듯 육아를 알고 있었다. 힘들 테니까 힘드나 보다 하지만 사실 피부로 전혀 와닿지 않았다. 아이 때문에 급 반차를 낸다고 하면 적당하게 받아주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눈치를 주기도 할 뿐이다. 비록 정당한 권리를 쓰는 거지만 아이가 아파서 휴가 쓴다고 하면 이상하게 본인이 아파서 휴가를 쓰는 것과 달리 제 몫을 온전히 다하지 못하는 직원처럼 느끼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출산 육아 관련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 억울하게 느끼는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  


외벌이 하는 팀장들은 육아참여도에 따라 이해도가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 맞벌이만큼은 높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외벌이 하는 경우, 가정 경제를 본인이 책임지기 때문에 돈은 내가 육아는 배우자가 담당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고 대신 육아는 아이를 키우고는 있지만 모르는 게 많았다. 탕수육 찍먹 느낌이랄까? 잔뜩 육아에 절여져서 눅눅해진 부먹과 달리 아이 키우는 맛을 알지만 바삭함을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대신 회사에 몇 배는 절여져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 때문에 업무 시간을 지킬지언정 칼퇴하고 휴가 쓰는 사람들이 자기 할 일 못 하고 책임감 없다고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이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남편이 있는 스웨덴으로 간다고 덧붙이자 팀장은 크게 잡지 않았다.


그래, 가족은 함께 있어야지.

그래도 이제 좀 손발이 맞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이렇게 쉬운 거였던가. 십여 년을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출근하던 이곳이 이렇게 쉽게 작별을 고할 수 있었던 곳임에 겨울은 새삼 서운해졌다.


오히려 친하게 지내던 다른 팀에 있는 워킹맘 팀장님이 더 그녀를 붙잡았다. 혼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어 그런 거라면 좀 더 업무 부담이 적은 팀으로 옮기는 건 어떠냐며 가능한 자리를 알아봐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은 이미 너무 지쳤고 더 이상 데드라인이 없는 노력을 지속해 낼 자신이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