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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Jan 20. 2022

린다의 앵초의 아름다움처럼

린다 시리즈 인성 교육은 누구부터

 차를 타고 가다 신호등에 멈추었다. 아들이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다. 장난치며 걸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오래전 아들 학교에서 보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발등 위로 부쩍 올라온 교복을 입고 복도를 뛰어가는데 몸집은 어른이지만 영락없는 고등학생 나이의 얼굴이다. 여름이라 그런지 거무스름한 얼굴에 장난기 넘치는 웃음을 보니 귀여움이 느껴졌다. 사내 냄새 풍기며 덩치에 맞지 않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에서는 기특한 마음까지 들었다.      


 신호가 바뀌어 아이들과 멀어지며 신문 기사가 생각났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령으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했다고 한다. '인성교육 진흥법'이라고 깍듯하게 이름도 붙였다. 도대체 얼마나 아이들의 인성이 형편없으면 세계에서 우리만 법으로 정해 교육의 해야만 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불안하기까지 했다. 역사가 토인비는 ‘21세기 뛰어난 문명 중에서 19개는 외부의 침략이 아니다. 배부른 도덕적 쇠락으로 멸망했다’는 말이 생각나 큰일 났다 싶었다.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법을 만들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인성이 안 좋다는 것인지 덜컥 겁도 났다.           


 몇 년 전 봄날 남편과 시골집 뒷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깜짝 놀란적이 있다. 서너 걸음이면  건너는 작은 냇가 저편에 붉으스레 한 것들이 보여서다. 돌을 밟고 물가를 건너 풀숲을 헤치고 올라가니 이게 웬일인가. 내가 좋아하는 진한 분홍색 앵초가 커다란 세숫대야 10개 크기의 꽃무리가 땅을 덮고 있었다. 어릴 적 읽었던 ‘비밀의 화원’처럼 문을 열고 들어선 듯했다. 연두색 나뭇잎 아래 진홍색 꽃. 상상해 보시라. 오래전 이곳 마을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발길 없는 무성한 나무 아래 펼쳐진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화려함이 아니라 편안함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한 뼘 길이와 엄지손톱만큼의 꽃 앞에서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 거대한 자연과 마주하면 작아지는 모습을 느끼지만 소박한 자연 앞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얼굴 찡그리는 사람이 있을까. 선행 행동, 정직한 행동을 보고 화가 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멋진 풍경의 사진 그림을 보고도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마음에 더 남게 되지 않을까.  누군가 오르는 산을 바라보며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오르고 느껴야 진정한 느낌인 것처럼 말이다. 좋은 인성을 가르치겠다고 법까지 만들어 마음을 바르게 한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법대로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좋은 인성을 형성하려면 주위의 바른 행동도 보고 책이 전하는 생각을 통해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흔히 보고 배운다고 하고 ‘백문불여인견’ 하지 않던가. 배려하는 어른을 보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어른을 보고, 용기 내어 말하는 어른을 보고 배워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인성 책자가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인성을 가르칠 책임이 있고 교실 밖 교사이다. 어른들은 늘 선생님이다. 교실 속에만 선생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아이들이 저지른 기막힌 일들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아이 때부터 좋은 인성 만들겠다고 하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인성교육의 덕목으로 ‘예의 정의 책임 자기 존중 시민성 배려 소통 정직 용기 지혜 자기 조절 성실’을 제시하였다. 뭐 더 교육해야 할거 없나 생각했는데 더 이상 좋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폭력 탐욕 부패 무례 중독 성추행 왕따 파렴치’한 사람들이 있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럼 인성 교육이 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인지. 혹시 어른들의 인성은 괜찮은 것인지 묻는 다면 난감하다. 아이들은 우리에게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좋은 인성이란 것이 나이가 들었다고, 들어간다고 자라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어른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어디서 교육을 시킬 것인지. 어른으로 부끄러울 뿐이다.     


 숲 속 앵초도 처음에는 몇 송이의 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번지고 번져 멀리서도 보일만큼 숲 속 길 한편을 덮었다. 우리는 소리 내서 배우기보다 보고 느끼며 배워야 하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한다. 꽃이 사람들 많은 곳으로 따라다니면 피던가. 그 자리에 피고 지고 하지만 사람들이 다가가지 않나. 소리 없이 피어 있는 꽃에 이끌리듯 본받을 만한 반듯한 행동으로 아이들을 이끌어 좋은 인성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 


 유명 인사의 커다란 선행은 세상을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지만 너나없이 할 수 있는 주위의 작은 선행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자신도 언젠가는 저 정도는 하며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작은 앵초가 번져 아름다움을 만들듯 말이다. 인성 교육 덕목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최고의 인성 아니겠는가.      


 공부로 지친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혀 놓고 인성교육까지 시킨다니 어른으로 제대로 본보기를 보여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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