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들지마
얼마 전 추석 연휴에 동생과 동생의 남자친구가 독일에 있는 우리집에 다녀갔다. 동생 커플이 와있는 대략 9일 동안 나는 헬스장을 가지 않고 쉬었다. 오래 쉬었다 가서인지 똑같은 운동을 해도 몸이 훨씬 피곤하게 느껴졌다. 운동을 '으아 ~ 힘들다!'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지칠 정도로 하고나면 운동을 하고 난 후에 머리 속이 텅 비어서 피곤하다는 생각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다. 평소에 워낙 생각이 많은 타입이라 (잠시라도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해 함) 운동 후에 가끔 느끼는 이런 기분을 좋아한다. 건물을 빠져나와 잔잔하지만 가사는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데, 왼쪽에 번듯이 서있는 건물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아이폰을 쳐다보고 있느라 수십번을 스치듯 지나쳤던 길이었다. 처음 이 건물을 봤을 때, 참 이쁜 건물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사진도 찍었었다. 날씨가 화창한 낮에는 특별히 더 그 매력이 넘쳐흐르는 건물이다. 특별한 박물관이나 관광 명소가 아닌데도 참 훤칠하게 잘생긴 건물이다. 너무 웅장해서 마치 4성급 호텔 같은 느낌이라 작년에는 안에 들어갈 엄두도 안나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다니는 헬스장이 이 건물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이제는 밥먹듯 이 건물을 보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 밤에는 어딘가로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일상에서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비단 이 건물 뿐만이 아니다. 함부르크에는 유명 장소가 아니라도 훤칠하고 이쁜 건물들이 구석구석 제각각 매력을 뽐내고 서있다. 하지만 조금 쌩뚱맞게도 그 감사함과 동시에 왜 인간만이 삶을 살면서 이런 미적 감성을 추구하는걸까라는 자발적인 의문이 처음으로 든 날이기도 했다. 누군가 주위에서 푹 찌르거나 질문을 던져서가 아니라 스스로 진지하게 이런 게 궁금해진 건 처음이었다. (생각해본 적 있으신 분 댓글 좀...)
이 건물의 바로 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이웃 주민인 거북이의 눈에 이 건물은 그저 커다랗게 서있는 돌덩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맞은편에 플란텐운블루멘이라는 아주 예쁜 공원이 있는데 그 곳에는 각종 오리, 새, 물고기는 물론이고 거북이도 살고 있다.)
가장 자연적인 것들로 필요한만큼만 지어놓아도 사실 우리가 생활하는데 상관이 없을텐데 왜 인간은 이토록 아름다운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걸까. (특히 글을 쓰는 본인부터가 디자인의 노예)
아마 쉽게 답을 얻기 힘든 문제일 듯 하여 이 부분은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음미하며 생각해보기로 한다.
유럽의 건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어떻게 그 시대에 저런 건물을 세운 건지, 저 높은 곳에 어떻게 저렇게 정교한 조각상을 올린건지, 어쩜 저렇게 돌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조각해 올린건지... 지금 저렇게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놀랄 때가 많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어린 시절에 나는 너무 무지하여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졌었고, 여행을 좀 더 다니고 타향살이를 하고, 세상을 조금씩 더 이해해 가면서는 그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감동을 하곤 한다.
평소엔 그게 옛날 사람들의 기술의 차이인가 하여 서양 문물이 더 빨리 발전했구나하고 이해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건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문화와 철학의 차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우리 조상들은 자연적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건물을 높이 올리고 화려하게 돌을 조각하는 것 보다는 나무를 쓰고 창호지를 쓰고 집을 높이기보다는 평지에 맞추어 올렸던게 아닐까.
자세하게 비교해서 쓸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려 한다.
어쨌든 종종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들이 유럽의 그것보다 누추하다고 주눅들어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누가 더 뛰어나고, 누가 더 못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시간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각의 색깔대로 살아왔을 뿐이니까.
(심지어 최근 배달의 민족의 '배달 문명'에 대한 유물이 발견되어 우리나라 시초의 문명이 세계에서 최고로 앞선 문명 중 하나라는 증거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는 법륜스님의 글도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 (나는 어디서 왔을까?_법륜스님 즉문즉설 https://brunch.co.kr/@pomnyun/84)
비단 문화 유산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의식 수준, 정치, 또 발전된 어떤 것들에 대해서 그들이 우월하고 우리나라는 아직 미개하다는 평을 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는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과거에는 나라간의 정보 교류가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고 정말 따로따로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살았으니 그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그들 고유의 지혜와 풍습으로 살아갔다. (그래봤자 역사를 조금씩 들춰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그러던게 지금 전 세계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상당히 비슷한 삶을 살게 되었고, (스마트폰이라던가) 그래서 서로를 비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얻게 됨으로써 마치 미국이나 유럽이 더 '잘 살고'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그저 유럽에서 산업 혁명이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산업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사회의 단점을 먼저 겪고, 먼저 해결해야 했으며, 그래서 산업 혁명이 늦게 시작된 나라보다 한 걸음 조금 더 앞서나갈 수 밖에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든 산업 혁명이란 게 사실 무조건 좋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라 (지금 우리의 이 야근라이프는 다 거기서 온 것이다!) 그게 꼭 우월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고로, 그게 꼭 잘난 일은 아니라는 거다. 근대화가 다 좋으면 사람들이 왜 귀농을 하겠는가. 지난 번 근로자의 날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다뤘지만, 미국 노동자들도 돈도 안주면서 일만 시키니까 열받아서 들고 일어나지 않았던가. 우리는 조금 앞서 나가는 그들을 통해 피흘리지 않고 평화롭게 우리 사회를 개선시켜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10분 먼저 걷기 시작했고, 내가 20분 늦게 걷기 시작했을 뿐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다 똑같다. 누가 더 잘났고 못난 것이 없다. 물론 자기들이 더 잘났다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럽인을 가아끔 본 적은 있는데 사실 그들 스스로의 잣대를 들이대고 보면 그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못난' 사람들이다. (어딜 가든 못난 이들이 있을 뿐이다. 아시잖나. 질량 보존의 법칙.)
그러니까, 결론은
유럽 건물은 이쁘다.
덧. 관련 지식 전무한 상태로 순수하게 혼자 추측해본 생각들이자 두서 없는 일기 아닌 잡담이었습니다. ;)
글: 노이
사진: 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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