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Oct 14. 2018

독일에서 살사 클럽을 가보다

그리고 눈앞에서 처음 본 그룹 살사(!)



오늘 함부르크는 함부르크 답지 않게 날씨가 아주 좋았다.

낮 최고 온도가 26도까지 올라가고 해가 진 후에도 17-19도를 오가는 온도에 딱 기분 좋은 날씨였다. 날씨가 좋으면 뭐라도 하고 싶어 지는데 막상 뭘 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만 하다가 결국 늘 똑같은 하루를 보내다 하루가 가고는 한다. 오늘은 우체국이 문을 닫기 전에 택배를 하나 보내고, 산책 겸 조금 멀지만 최근 마음에 든 대형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왔다. 양손에 바리바리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도착했는데 칠레 친구에게서 살사 클럽에 가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입장 시작 시간은 밤 11시 30분. 요즘은 워낙 잠이 더 많아져서 왠만 하면 밤늦게 나가지 않지만, 오늘 뭐라도 특별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었던 나의 꿈틀거리던 의지가 'Yes! I'm in!'을 외쳤다. 그리고 오랜만에 살사 분위기를 느끼고도 싶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미리 저녁 7시부터 10시 정도까지 3시간가량 초저녁 잠을 잤다. 이래야 나중에 12시가 넘어서 놀다가 와도 덜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현재 시간 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나서 오후에 해두었던 토마토 밥과 삶은 계란을 김과 볶음 김치와 함께 먹은 뒤, 화장을 하고 검정 원피스를 입고 집을 나섰다. 



친구도 이 곳에 가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오늘 가게 될 곳은 기본적으로는 살사 수업을 하는 아카데미 같은 곳인데 토요일 밤에 종종 이렇게 살사 클럽을 여는 듯했다. 친구는 학원에 다니면서 배우기보다 10대 초중반 어린 시절부터 주위 환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살사 같은 춤을 배웠다고 했다. 계속 춤을 춰왔기 때문에 살사를 꽤 잘 추는 친구였고, 나는 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한 달 정도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한 달 뒤에는 한쪽 발목을 다쳐서 (살사 때문에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 배우지 못했다. 그것이 아쉬워서 작년에 함부르크에 와서도 살사를 계속 배워보고 싶었는데 여기서는 보통 살사를 배우러 갈 때 자기가 파트너를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마땅한 파트너를 찾기가 애매했던 나는 어느새 살사를 잊고 있었다. 



살사 클럽은 중앙역 근처에 있었다. 늦은 밤이라 길거리에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살사 클럽 안은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따로 입장료는 없었고, 1유로를 내고 재킷을 맡긴 뒤에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나의 커다란 원룸 같은 공간을 생각했던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그곳은 꽤 컸고, 방도 여러 개가 있었다. 방문은 없고 모두 오픈돼 있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방마다 살사뿐만이 아니라 바차타 같은 다른 음악들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나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실제로 춤을 마음껏 추기 어려운 다른 살사 클럽들에 비해서 이 곳이 널찍하고 사람도 적당해서 좋다고 친구는 마음에 들어했다. 



가장 안 쪽에 메인 홀이 있었는데 그곳이 가장 사람들이 붐볐다. 정말 좋았던 건 테이블과 의자가 꽤 넉넉하게 있었고, 방석이 깔린 소파도 있어서 힘들 땐 편하게 눕듯이 앉아서 쉴 수도 있었다. (저질체력 증명 중...ㅎ)

아무튼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처음엔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다양한 피부색과 헤어 스타일과 패션 스타일을 구경하는 것만 해도 재미가 있었다. 독일이지만 독일인을 많이 찾아볼 수는 없었는데, 독일인들의 대체적인 성향은 살사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몇몇 독일인들이 눈에 띄었고, 원조의 매력을 뿜 뿜 풍기는 남미 사람들, 흥이라면 지지 않는 흑형 흑언니들, 그리고 친근한 아시아 사람도 보였다. 




사람 구경이 끝나갈 즈음, 갑자기 메인 홀 중앙에서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사람들이 둥그렇게 - 마치 강강술래를 하는 것처럼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 모이더니 다 함께 살사를 추기 시작했다. 함께 온 친구가 예전에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Rueda de Casino(루데아 데 카지노)'라고 불리는 댄스였다. 쿠바 스타일의 살사 댄스 문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지에서 인기 있는 소셜 컬처 중 하나라고 한다. 카지노라는 이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라스베이거스의 그런 카지노가 아니라 쿠바 스타일 살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루데아 데 카지노는 단순히 여러 명의 커플이 다 같이 같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바뀌면서 종국에는 모두 다 함께 춤을 춘다는 데 의미가 있는 진정한 소셜 컬처인데, 그 모습이 매우 신기하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데 다들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겨가며 계속해서 춤을 춘다!) 그 리듬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모두를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가 된다. 즉, 추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하나의 문화인 것이다.




유튜브 영상으로 볼 때도 신기했었지만 눈 앞에서 보니 더 매력적이었다. 처음인 듯 어색해하는 사람도 한 둘 있었지만 대부분은 매우 능숙하게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면서도 대형을 유지한 채 흥겹게 춤을 췄다. 즉흥적으로 시작된 거라 짝이 맞지 않아 한 쌍은 여자 여자끼리 춤을 춰야 했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루데아 데 카지노를 출 때에는 한 사람이 리더가 돼서 다음에 어떤 동작을 출지를 큰 소리로 외치면서 진행이 된다. 그러니까 노래에 따라 모두 정해진 안무를 추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오더에 따라 다음 안무가 결정되기 때문에 꽤 즉흥적인 편이다. 물론 어느 정도 패턴은 다 있겠지만, 딱 정해지지 않은 그 유연함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라이브로 연주되는 재즈 음악의 그 어떤 매력처럼 말이다. 




춤을 추지 않는 모든 사람들도 빠져들듯이 그들의 춤을 지켜보고 있었고, 누구 하나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만한 분위기였음에도 아무도 카메라를 꺼내 들지 않기에 나도 직접 촬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춤인지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서 내가 처음 이 루데아 데 카지노라는 걸 알게 된 영상을 가지고 와봤다.









멋진 루데아 데 카지노 공연이 끝나고는 모두가 다시 원래의 2인 1조 댄스 모드로 돌아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만큼 춤을 추는 스타일들도 제각각이었다. 가장 재밌었던 건 확실히 남미 쪽 사람들이나 아프리카 쪽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편이라면, 독일 사람들은 수업에서 배운 대로 추는 사람들이 많았고, 하지만 그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리려는 듯 모든 음악에 그저 몸을 맡기며 완전히 자유롭게 추던 독특한 독일인도 있었다. 

주위의 시선 따위 정말 단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니 오히려 그 시선을 즐기며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조금 용기가 생겨 친구의 '원, 투, 쓰리'와 함께 오래전 기억을 되살리며 오랜만에 살사의 리듬을 느껴보았다. 처음 살사를 배울 때에도 여자 선생님이셔서, 가끔씩 선생님이 내 손을 잡고 리드하며 스텝을 알려줄 때는 여자랑 춤을 춘다는 것만으로도 어색한 나였는데, 이번에도 여자 사람 친구와 손을 잡고 살사를 배워서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어색함은 금방 풀리고 연신 터지는 나의 실수에 깔깔거리고 웃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쌓아왔다. 




처음 살사를 배우기로 마음먹게 된 건 사실 '취미도 돈이 되는 취미를 하라'며 강연에 앞서 살사를 선보였던 어느 자기 계발 강사가 살사를 추면서 강연을 시작하던 모습이 인상 깊어서였는데, (본인은 취미로 시작해서 그 당시에는 강사 자격을 갖출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했다.) 막상 배우기 시작한 나는 그 레벨까지 갈 만큼의 열정까지는 없었지만, 그 음악과 춤이 주는 에너지나 멋있게 춤을 추는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그땐 독일에 가는 게 거의 확정된 때라 '외국에 가면 외국인들은 다 살사를 좋아하겠지'라는 이상한 환상이 있어서 배우기도 했는데, 그때는 독일은 살사를 추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몰랐다. 그래도 그나마 인터내셔널 도시인 함부르크라 각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살사를 즐기고 있었고, 오늘 이렇게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살사를 출 수 있는 나를 확인하고 나니 그때 배워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이 수업을 듣고 배워서 함께 살사를 추는 젊은 독일인 부부나 나이가 있는 노년의 독일인 부부도 눈에 띄었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기도 했다. 연인이나 부부나 함께 공유하기에 참 좋은 취미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나도 미래의 내 짝(?)과 함께 살사를 추는 모습을 잠깐 상상하기도. (ㅎㅎ)




사실 남자는 리드를 해야 하기에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살사는 기본만 배워놓아도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 남자든 여자든 한 번쯤 배워두면 글로벌 시민으로서 레벨업 되는 기분도 들고 실제로 외국에 가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한 가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배우는 것을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언젠간 내게도 남미로 여행을 떠나 그곳 어딘가의 길거리에서 라티노, 라티나들과 함께 루데아 데 카지노를 추는 날이 오길 :)







글쓴이는: 

필명 노이(Noey). 

30대인 게 행복한 멀티포텐셜라이트.

더 늦기 전에 독일 워홀 비자를 써보려고 작년에 독일에 왔다가 얼떨결에 아직 독일 거주 중. 

호기심이 폭발할 때, 감성이 충만할 때 글을 쓰며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도전해 보는 중.



- 함부르크 구매 대행 블로그: https://lifeisllll.blog.me/

- 개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oey_way/

- 표지 사진 출처: Photo by Ardian Lumi on Unsplash




이전 09화 어느 유럽 도시의 금요일 오후 풍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