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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Dec 04. 2018

독일에서 절대 하면 안되는 것

그걸 저는 했네요






그럴 때가 있다. 유난히 생일이 많은 달.

11월이 나에겐 그런 달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독일에 있는 친구들도 생일을 축하해야 할 사람이 많았다. 11월이 끝나가던 무렵의 어느 토요일 저녁도 원래는 독일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가기로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서 불토를 보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보니 3년 전 이 친구의 생일에 실수를 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그 때 나는 독일에 출장을 와있었다. 한달 반 정도 되는 꽤 긴 출장이었기에 마음씨 좋은 동료들과 이런 저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다른 팀이었지만 협업을 하던 한 동료, 지금은 친구의 생일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주의 금요일 저녁에 회사 사람들끼리 생일 축하 겸 술을 마시러 가니 함께 가지 않겠냐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일이 많아 (정확히는 본인이 워커홀릭이었기에) 독일에서도 자주 야근을 했던 나는 확실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황을 봐서 가겠다고 얘기한 뒤, 생일 미리 축하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혹시나 바빠서 잊어버려서 축하를 아예 못하는 것 보다야 미리 축하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의 표정이 살짝 안 좋아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말 하지 말지 그랬어... 생일은 미리 축하하는 거 아니야. -_ㅠ"




"응? 무슨 말이야?"




지금보다도 더더 독일 문화의 경험이 없었던 당시의 나에게는 정말로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생일을 미리 축하하는 게 아니라니?!

전혀 모르겠다는 내 얼굴을 보더니 친구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정확히 생일인 날이 되기 전에 미리 축하를 하면 1년 동안 재수가 없어진다는 미신이 있거든."




"Whaaaaaaat?"




솔직히 나에게는 정말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 친구는 내가 잘 속는 타입인걸 알아서 가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 전적(?)이 있었다. 




"거짓말 ~"




나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함께 서있던 동료를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 사실이냐고 나는 표정으로 물어보았고, 그는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 진짜???? 근데 왜?"




"독일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금 거의 일반화된 미신이야. 도시사는 사람들은 옛날보다는 많이 약해졌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더 큰 일이 난 것 처럼 여겨. 그러니까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선물도 미리 받았더라도 생일이 되기 전에 미리 열어보면 안돼. 대신에 한참 뒤에 축하하는 건 별로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아."




참 신기한 미신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우리가 아침에 액자를 떨어뜨려 그 유리가 깨지거나 컵을 깨뜨리면 그 날 재수가 없을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을 여기는 것의 1년 버전(?)인 것 같다. (그런데 또 독일은 반대로 유리컵을 깨뜨리면 행운이 온다는 미신이 있다.)





실제로 구글에서 '생일+독일' 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하나같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몇 가지 더 재미있는 독일의 생일 축하 관습들을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 생일인 사람이 직접 모든 걸 준비해야 한다.



Photo from https://babybrei-selber-machen.de



만약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직접 구운 케이크를 회사에 들고 가 동료들에게 대접하거나 파티를 하면 대부분의 비용을 생일자가 부담한다. 실제로 출장 중 내가 머무르던 팀의 팀장이 아주 큰 케이크를 회사에 사온 적이 있었다. (그 땐 그냥 좋아서 먹었는데...!) 그래서 그 돈을 쓰기 싫어서 일부러 회사에서 자신의 생일을 알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도 생일자가 친구들을 초대해서 한 턱 쏘고 하는 문화가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독일은 그것과는 또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 같으면 회사 동료나 친구의 깜짝 축하 같은 것을 내심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세대가 내려갈수록 미국 문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는 사람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그건 전통 독일식은 아닌거다. 


 조금 비슷하게 유사한 경험을 했던 것이,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오기 전 마지막 주에 '굿바이 파티'를 내가 계획해야 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노이 ~ 한국 가기 전에 가라오케 가자", "한국 레스토랑 가자."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그 이벤트를 주도(?)하길 바라듯이 이야길 했다. 그땐 잘 모르고, 소심한 성격에 분위기에 휩쓸려 하긴 했지만, 왜 내 굿바이 파티를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건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음식이나 술을 내가 다 쏜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 레스토랑의 금액이 컸기 때문에 다 쏘지는 못하고, 일부 금액을 내가 더 부담했는데 이건 더치페이를 했어도 괜찮은 부분이긴 했다.) 내가 이 모든 걸 (장소를 찾고, 날짜를 잡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시간을 정하고 등등...) 리드해야 한다는 게 기분도 묘했고, 나에겐 꽤 스트레스였다. (모임 주최자가 되는 걸 굉장히 스트레스 받아하는 타입임)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 생일도 본인이 챙기고 축하하는 문화이니, 내가 떠나는 굿바이 파티니 내가 준비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2. 생일은 편안해야 하는 날이다.




Created by Jason84815


이건 젊은 세대에도 나이가 있는 세대에도 모두 통용되는 것인데, 생일은 그 날 하루 전체를 편안하게 보내는 날 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생일에 연차를 내는 사람들이 많고, 그 연차 사유가 생일인 것에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기 보다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3. 싱글인 채로 30살 생일을 맞이한다면, 각오를 해야한다.




Photo from Getty Image




만약에 누군가 싱글인 채로 30살 생일을 맞이한다면, 친구들이 그를 또는 그녀를 위해 준비해주는 아주 배려심 깊은 전통이 하나 있다. 독일은 요즘에야 결혼을 언제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여전히 예전에는 30살에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 우리나라의 '노총각, 노처녀' 같은 이미지가 있었나 보다. 30살이 되었는데 싱글인 사람들은 생일에 '나는 준비가 된 사람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청소 미션을 준다고 한다. 생일 주인공이 남자라면 아주 더러운 계단을 찾아 청소를 시킨다거나 (아니면 더러운 계단을 만들어준다거나), 여자라면 문손잡이에 낀 때를 칫솔로 닦게 한다거나 하는 일을 시킨다. 세대가 내려올수록 본래 목적은 잊혀지고 친구를 골탕먹이는 (?) 이벤트로 변질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작년 생일이 독일 나이로 서른이 되는 해였고 독일에 있었는데, 원래 생일을 떠들썩하게 알리면서 챙기는 타입이 아니라 조용히 있었는데 참 잘한 결정인 것 같다.





4. 생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늘은 똥 안치웁니다.





일단 나부터가 그렇고, 많은 사람들도 나이를 먹어갈 수록 생일엔 그냥 미역국이나 먹으면 됐고, 촛불 불고 케이크 먹으면 된거고, 나이 드는 거 뭐 좋은 일이라고 계속 챙기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독일은 나이에 상관없이 생일을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몇년 전에는 뮌헨의 요양소에 입원해있던 어떤 94세의 할아버지가 늦게나마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맥주를 마시고 싶은 나머지, 링거 바늘도 빼지 않은 채로 병원을 탈출했다가 경찰에 잡히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화점이나 상점을 구경하다 보면, 30살, 40살, 50살, 60살 등 나이에 상관없이 좀 더 특별한 나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카드나 생일 축하 용품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생일을 축하하든, 자신이 태어난 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은 확실히 내가 잊고 살았던 부분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니 혹시 독일 친구가 생기시거든 생일은 꼭 당일에 아니면 늦어도 좋으니 그 뒤에 축하해 주시고, 우리도 나이에 상관없이 형식에 상관없이 내 생일을 조금은 더 소중하게 보내보는 게 어떨런지. 




ps. 그리고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생일엔 누구나 일도 공부도 쉴 수 있는 만국공통 공휴일법이 생기면 좋겠다.









글쓴이: 필명 노이. 영어 이름으로 독일에서 쓰고 있는 이름이기도 해요.

30살이 되기 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쓰려고 독일에 왔다가, 독일이 너무 좋아서 2년째 거주 중입니다.

탈회사원을 선언한 뒤 먹고 살기 위해 독일에서 작게 구매대행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 마음에 드는 것들만 올려두고 있으니 구경오세요. 


- 구매대행 블로그: https://lifeisllll.blog.me



 -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Rahel Dani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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