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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03. 2021

독일 유학생의 수업 없는 날의 하루

날 것 그대로의 유학일기



2021년 11월 2일 화요일.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라 조금 더 여유로웠다. 대신 생활 속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제법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건강 챙기기. 요즘 몸이 계속 안좋아서 병원에 갔다. 기존에 갔던 병원과 다른 곳으로 새로 예약을 했다. 한국에서는 그냥 어느 병원이 가까운지 리뷰가 어떤지만 보고 방문하면 됐었지만, 독일은 병원에 한 번 가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의사마다 다르긴 해도 보통 예약을 미리 잡아야 하고, 그 예약도 전화를 한다고 항상 바로 잡아지지가 않는다. 물론 긴급한 경우에는 응급실 같은 곳이 있긴 하지만, 긴급의 정도에 상관없이 아프면 바로바로 진찰받던 한국인에게는 조금 느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예약을 잡기 어려운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진료 시간이 짧다. 저녁 전에 끝나는 건 기본이고, 오전 오후 사이에 브레이크 타임이 제법 긴 곳이 많고 (3시간 정도 문을 닫음) 그마저도 평일 하루는 오전 진료만 하는 곳도 많아서 미리 상담 시간을 확인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데 오늘 원래 가려고 했던 병원은 '전화 가능 시간'도 정해져 있는 곳이었다. 오전에는 1시간만 전화를 받고, 오후에는 다 받는 것 같았는데 어쩐 일인지 계속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병원 대기실 모습





그래서 온라인 병원 예약 웹사이트를 이용해서 다른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급해서 일단 잡았지만서도, 구글 맵을 켜고 가는 길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리뷰를 보고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별점 3점. 이 정도는 크게 나쁘다고 할 수준은 아니긴 했지만, 워낙 별점 낮은 리뷰들이 공통적으로 의사 선생님이 너무 돈만 밝히고 불친절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으나 지금 내 몸을 괴롭히는 이 병이 내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토픽은 아니었기에 일단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갔다. 그런데 왠걸, 리셉션도 매우 친절하고 의사 선생님도 좋았다. 물론 말이 빠르고 말투가 다소 투박하고 직설적인 면은 있었지만, 그게 불친절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어로도 세세하게 잘 설명해주셔서 좋았고, 그것도 혹시나 내가 잘못 이해한걸까봐 두어번 되물어보는 내 질문에도 다시 잘 대답해주었다. 다행히 증상이 심각한 건 아니었고 처방해주는 약을 받아서 약국을 갔다.



오히려 이 약국의 약사가 뭐 하나 더 팔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었다. 처방해준 약을 다 끝내고 나서 먹으면 평소 관리에 좋은 약이 있으니 살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누가 봐도 이런 추천에 익숙하지 않고 꼭 필요한 거 아닌데 추천하는 초보 티가 팍팍 났다. 귀여운 수준이라 그냥 집에 하나 비슷한게 있다고 괜찮다고 했다. 근데 결국 나한테 필요한 게 있어서 따로 하나 더 사긴 했다. 최근 몸에 흉터가 생겨서 콘트라투벡스를 구매했다. 분명 예전에 구매했던 것 같은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아서 다시 구매를 했다. 30g에 20유로 정도. 사실 약사가 뭘 추천해줄지 궁금해서 콘트라투벡스를 바로 달라고 하지 않고 약사에게 추천해줄만한게 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Bepanthen이라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약을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혹시 콘트라투벡스도 좋다고 들었는데 맞냐고 물었더니 둘다 좋다고 했다. 그럼 더 싼 게 뭐냐 했더니 가격은 둘다 별 차이가 없는데, Bepanthen은 10g이 더 적게 들었다고 했다. 대신 Bepanthen은 마사지하듯 롤링을 할 수 있게 생긴 통에 담겼다는 것 같았다. 흉터에 굳이 마사지까지 해야하나 싶어 그냥 10g 더 많은 콘트락투벡스로 달라고 했다. 제발 이 30g으로 흉터가 다 사라지길!




그래도 날씨가 좋아서 힘이 났던 하루




그리고는 헬스장으로 갔다. 애증의 헬스장...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그냥 끊어버리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코로나 때문에는 계약 해지 할 수 없다나.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해지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말 노예 계약이 따로 없다. 스토리가 많지만,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헬스장 계약이 오늘자로 끝나는데 몇 가지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최근 운동을 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팠어서 한 달 정도 아예 헬스장 근처도 못갔다. 전에 받아둔 의사의 소견서(Krankschreibung)를 들고, 혹시 아파서 못 온 기간 동안 더 다닐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원래대로면 그렇게 해주는게 맞긴 한데 내가 좀 늦게 말을 했다고 하더라. 한달 넘게 아팠고, 다 낫고 나서 와서 그런 것 같다. 전화나 이메일로라도 미리 알렸어야 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땐 너무 아파서 헬스장은 아예 까맣게 잊고 낫는데 집중하느라 미리 말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구글 검색을 해서 아플 경우 아팠던 기간만큼 더 다닐 수 있게 연장해준다는 걸 알게 되서 의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뒤늦게 소견서를 받았다. 아픈 기간도 병원에 온 날짜부터 해주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아픈 날부터 해주는 건지 궁금했는데(아프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병원에 갔었음...) 다행히 내가 아프기 시작한 날짜대로 해주었다. 사실 이걸 알았으면 더 오래 다닐 수 있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써먹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오래 아팠던 건 나도 처음이라... 한 달은 좀 아깝긴 하더라. 그동안 아파서 일주일씩 쉰 적이 제법 있었는데 다 모으면 두세달은 나올 것 같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헬스장의 또 다른 이슈는 중간에 은행이 바뀌어서 자동이체 정보를 변경했는데, 정확한 은행 정보를 줬음에도 자동이체에 실패한다며 자꾸 직접 결제나 계좌이체를 하라고 해서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헬스장 말고도 다른 곳 부동산, 전기 회사, 보험회사 등등 다른 곳에 다 똑같이 이메일을 돌렸는데 안된다고 하는 건 이 헬스장 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여기가 일을 못하는 것 같다. 독일에서 제법 크고 비싼 헬스장인데도 일처리가 이런 걸 볼 때면 화딱지가 나지만, 이런 일로 스트레스 받으면 그게 더 내 손해. 나는 관대해지기로 했다. 자동이체가 안될 뿐만 아니라 내라고 하던 돈도 35유로에서 갑자기 일주일만에 77유로가 되는 바람에 혹시 지급 기한을 일주일 넘겼다고 돈을 두배로 더 내라는 건가 싶어 그 부분도 신경이 쓰였었다. 이건 알고보니 그냥 지급 마감 기한이 지나면서 그 다음 달 금액까지 포함되서 그런거라고... 사실 이들을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제법 있었는데, 나도 그 히스토리를 하나하나 체크하는게 힘들어서 그냥 손해본다 생각하고 냅두기로 했다. (코로나 락다운 기간 동안의 보상 등... 여러가지 얽힌게 많다... 휴)









최근 굉장히 신경쓰이지만 차일피일 처리를 미뤄왔던 이 두 가지 일을 처리하고나서야 카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스타벅스앱에 남아있던 4유로를 탈탈 털어 아이스티 한 잔을 마셨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기로 해서 그 전까지 카페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2시간 정도 집중해서 내일 수업 준비용 텍스트를 읽었다. 도시문화를 공부하면 시카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예전엔 그냥 시카고가 미국이고 큰 도시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인류학이나 사회학 같은 연구가 시카고에서 많이 시작이 되서 그런 것 같다. 미국의 발전이 동부에서 시작해 서부로 이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시카고가 중심에 있기도 했었다고 하고. 오늘은 진짜 다행히 영어 텍스트라 독일어텍스트를 읽을 때 보다는 더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역시 집보다는 카페나 도서관이 집중이 잘 되는구나, 다시 한 번 몸소 느끼며 내일부터는 다시 도서관이나 카페를 가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집순이라 약속이 있는게 아니면 매번 바깥 외출이 큰 일임...)



저녁에는 지인이랑 맛있는 쌀국수도 먹고 기분좋게 술도 한 잔 했다. 원래는 밥먹고 커피 마시고 9시쯤 헬스장 가려고 했는데(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으니...) 생각해보니 늦게까지 여는 카페가 별로 없어서 술로 메뉴를 변경했다. 쌀국수집 근처를 걷다가 보이는 바에 갔는데 직원이 매우 친절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독일은 평균적으로 고객 서비스가 우리나라에 비하면 퉁명스러운 편인데, 종종 아주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 날 기분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친절해야 하기 때문에 친절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일을 즐기고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귀하고 기분이 좋다. (앞으로 여기 자주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인은 Ratscherrn 맥주 400ml와 나는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시켰다. 에스프레소 마티니는 최근에 알게 된 칵테일인데 커피맛이 강하고 달달하고 술맛이 약해서 술이 약한 나같은 사람에게 딱이었다. 하지만 가격은 오늘 처음 알았다. 10유로. 맨날 저렴한 맥주 마시다가 10유로 칵테일을 마시려니 왜 이렇게 비싸 보이는 건지. 그래도 에스프레소 마티니도, Ratscherrn 맥주도 너무너무 맛있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한 저녁. 사실 독일은 벌써 낮이 짧아지는 시기가 돌아와서 좀 우울했는데 올 겨울 딱 오늘 처럼만 적당히 에너지 있고 유쾌한 하루하루를 작년보다는 좀 더 많이 채워나갔으면.






(소식)


독자님들께,


그동안 브런치라는 오픈된 공간에 꺼내두기는 조심스러웠던 날 것 그대로의 유학 생활 일기를 곧 뉴스레터 형식으로 발간하는 것을 준비중입니다. 저와 독일의 못난 모습, 찌질한 모습, 사소한 일에 웃고 우는 일상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기록해 나가고 싶습니다.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유학생활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이기도 하구요. 곧 따로 공지글을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또 두근두근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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