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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pr 29. 2022

악마도 제말하면 온다

비슷하면서 다른 세 나라의 속담



코로나 규제가 완화되면서 정말 좋아진 점 중에 하나는, 일상에서 우연히 아는 얼굴들을 마주치고, 안부를 묻고, 즉흥적으로 같이 밥을 먹기도 하는 삶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일부러 친구를 불러서 만나는 성격이 아닌지라, 나는 이런 자연스러운 만남이 너무 좋다. 오늘도 꽤나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혼자 학교 가서 빨리 밥먹고, 빨리 강의 듣고 일하러 가려고 나왔는데, 우연히 학과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정확히는 선배지만 여기는 딱히 선배의 개념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우리 학교에서 나말고 처음으로 한국인 유학생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를 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뒤에서 그 한국인 유학생이 나타났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이런 상황에 쓰이는 속담이 있다며,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와 같이 이야기를 하던 친구 중 한 명은 독일 사람이었고, 한 명은 에스토니아 사람이었는데 알고보니 독일에도 에스토니아에도 비슷한 속담이 있었다. 그런데 각자 주인공(?)이 달랐다. 한국이 ‘호랑이’라면, 독일은 ‘악마’, 그리고 에스토니아는 ‘늑대’가 온다고 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한국: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

독일: 악마도 제말하면 온다

에스토니아: 늑대도 제말하면 온다



역시 사람사는 세상이 다 비슷하니 속담도 비슷한가 생각했는데, 이스라엘 친구에게 물으니 이스라엘에는 그런 속담이 없다고 했다. 아마도 옛날 옛적 사람들에게 가장 공포의 대상이었던 존재를 쓰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독일인 친구가 “이 정도면 진짜 독일에 악마가 있었던 듯ㅋㅋㅋ”이라는 농담을 해서 다같이 빵 터졌다. 때마침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의 국적이 다 다른 것도, 또 각자 비슷한 속담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 와중에 무서워하는 게 다 달랐던 것도 신기했다. 이런 속담 하나도 그 나라의 문화, 지리, 종교 영향이 다 담겨있다니.



참, 이런 적도 있었다. 다른 독일인 친구가 나더러 “한국 사람들은 손톱을 이렇게 깎아, 아니면 저렇게 깎아?” 라고 뭔가 두 가지 제스터를 취하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손톱을 깎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에 혼란해져서 잠시 벙쪄 있었는데, 친구는 내가 기분이 상한 줄 알고 자기가 실례되는 질문을 한 거냐고 미안해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손톱을 다르게 깎을 수가 있다고?”




알고보니 독일에는 손톱깎이 종류가 두 개가 있어서, 종종 서로 ‘너는 어떤 타입이야?’라고 물어보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완전 처음 보는 유형의 손톱깎이였다.



처음 본 손톱깎이 유형… 손톱 뽑을 기세라 무섭다




역시 ‘조금’ 오래 살았다고 독일을 많이 아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서두르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도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고 다른 점을 이해해 가는 삶을 더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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