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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pr 15. 2017

왜 나는 집을 소유하고 싶지 않은가

20번 이사한 30대 싱글녀의 집 이야기 - 프롤로그 -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20번 정도 이사를 했다. 그 기간이 짧든 길든 이사와 이직은 살면서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 중 하나라고 하던데... 뒤돌아보니 내 스트레스의 원천이 이 곳이었나 싶다. 


 어린 시절에도 이사를 여러 번 다닌 편이긴 했지만, 특히나 스무 살 이후 집을 나오면서부터의 이사가 전체 이사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니까... 스무 살 이후, 약 10년 동안 15번 정도 이사한 셈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궁금해서 세어봤다. 이렇게 집을 많이 옮겨다닌 줄은 본인도 오늘 처음 인지하였다. 어쩐지 지인들이 묻는 인사가 '요새는 어디있어?'인 경우가 많긴 했다...

 어쨌든 짧게는 한 달, 길게는 한 장소에서 2년 이상 산 적이 매우 드물었다. 짐 싸는 일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학교 때문에, 회사가 이사를 해서 혹은 해외로 나가느라 잦은 이사를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생각이 아주 많이 바뀐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10년 동안 15번 옮겨다닌 이야기를 한 글에 품어낼 수는 없기에 앞으로 조금씩 집에 대한 나의 조금 더 세세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보려고 한다. 오늘은 프롤로그.



친척집, 고시원에서 미국 타운하우스까지



학생 때 '집'은 나에게 '잠자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0년 만에 얻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밤낮으로 밖으로 나다니기 바빴다. 처음 독립하면서 살았던 친척집은 너무나 잘해주시고 고마웠지만, 친척 가족들의 생활 패턴이 나와 정반대였다. 야행성인 나와는 달리 밤 9시면 불을 끄고 주무시는 온 가족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숨죽여 생활했었다. 그러다 결국 고시원이라도 좋으니 나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처음으로 혼자 독립한 곳이 학교 근처 고시원. 창문도 없이 손바닥만 한 작은 방 안에서 처음 잠들 때의 느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차피 요리도 잘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면 컴퓨터를 하는 게 나의 일상이어서 처음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편했다. 부엌, 화장실, 욕실도 청소해주시니 이리 감사할 데가! 고시원에 산다고 말하면 나를 불쌍하게 여기던 선배들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우울증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밖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집에 가서 잠만 잤다면, 나중에는 집에 있기가 싫어서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으로 심리 패턴이 바뀌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와 동거, 혼자 사는 원룸 생활, 동생과의 투룸 생활 등으로 발전해 갔다. 그러다 일본에서 1년, 미국에서 1년, 독일에서 3개월을 살아보면서 집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과 욕망이 관철되어 갔다. 특히 미국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했던 집을 통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까지 서울 원룸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잘 꾸며진 정원, 수영장이 구비된 타운하우스에 거실과 부엌과 침실, 옷장이 따로 있는 집에서 살았던 경험은 내 인생의 꽤 큰 반환점이었다. (정작 갑자기 너무 커진 집은 나에게 밤마다 외로움과 공포를 가져다주긴 했지만) 반경 20km내에 가족, 친지, 친구, 한국인이 없이 나홀로 외국땅에서 살아본 게 처음이었던 그 때 그 곳에서, 집은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집을 갖지 않는 것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사실 '집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더 커졌고, 나는 살면서 많은 부분을 '집'에 투자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월세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허름한 집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월세를 조금 더 내더라도 좀 더 깔끔한 집을 고르려고 한다.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으면서도, 내 집을 갖고 싶지는 않다니 얼핏 들으면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물론 매월 나가는 월세나, 전세금 대출 이자를 생각하면 내 집을 갖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하지만 흙수저인 나에게 지금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포기할 건 빠르게 포기할 뿐.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집주인이 우리를 거의 내보내듯이 하는 일을 겪었는데, 처음으로 '억울하다! 내 집을 갖고 싶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의 3년에 한 번 꼴로 외국으로 슝 떠나버리는 내 라이프 패턴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집을 갖기 위해 전세 대출을 받거나 하는 일은 마치 내 발에 족쇄를 채우는 일처럼 느껴졌다. 또한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과 '내 집'을 가졌을 때의 안정감보다는, '내가 원하는 장소(나라 불문), 원하는 집에서 머물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커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항상 어디로든 미련없이 떠났기 때문에, 더 좋은 곳에서 머물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집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어야 하지만, 나는 그곳에 구속받지 않고 언제든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것이 '집'에 대한 현재의 내 생각. 최종적으로는 호수 뷰가 정면으로 보이는 호숫가에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묻힐 장소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수나 바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끔 불만족스러운 곳에 머물게 되거나, 원치 않는 곳에서 지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과정이기에 불만은 없다. 좋은 곳도 언젠가는 떠나게 되고, 불편한 곳도 언젠가는 떠나게 된다.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 - 우리에게 집은 여전히 중요하다. 

원시 시대에도, 지금도 집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때와 똑같이 '의식주'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살기 위해서 우리가 이토록 발전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짐승이 사라진 것 외에 무엇이 바뀐 것일까. 최소한 예전에는 한 집단에 소속되면 '살 수 있는 공간'을 보장받았지만, 오히려 지금은 국가에 소속되어 있어도, '살 곳'에 대한 걱정을 끊임없이 해야 하고, 내가 세금 내고 사는 나라인데도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하려 치면 돈이 없이는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가끔은 노숙자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며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집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결코 '나 자신'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치 푸른 바다의 전설에 나왔던 '홍진경'의 캐릭터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길을 걷다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내가 내 '인생'을 살려고 '집'을 구하는 건지, 아니면 내 인생은 '집'을 구하기 위해 살다 가게 되는 건지. 

  









Writing: Noey

Photo: Redd Angelo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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