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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Oct 18. 2024

완벽한 매일은 없다


의사 처방으로 매주 먹는 것 중 하나 (c) noi 2024



‘아 또 몸이 아프네’


어제는 자고 일어났더니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 침을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익숙한 듯 소금물을 만들어 고개를 젖혀 가글을 하고, 감기차를 우려냈다. 사과를 깎고, 식빵에 땅콩버터를 발라서 최소한의 영양분을 공급한 뒤 다시 잠을 청했다. 오래 자고 일어나면 몸이 찌뿌둥하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다 합쳐서 12시간을 넘게 잤는데도 일어나니 머리가 개운했다.


그런데 그 개운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머리에 구름이 낀 것처럼 무겁다.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내내 몸 상태가 이상하다. 마치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던 직장인 시절처럼, 몸 여기저기가 돌아가면서 아프다. 여기가 나으면, 저기가 아프고, 저기가 나으면 또 다른 곳이 아프다. 왜 병원에 가지 않느냐고? 그러기엔 좀 애매하다. 하루를 쉬면 그래도 좀 괜찮아지는 것도 있고, 두통, 복통, 어깨 결림, 허리 통증처럼 평소에 조금만 방심해도 다가오는 그런 통증들이라 병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평소보다 통증이 더 심하다는 정도?


그냥 간단히 말해 요즘 컨디션이 오락가락한다.


‘살면서 감기도 안 걸려봤어요! 하하하’ 이런 건강 체질은 솔직히 말해서 나와 거리가 멀다. 하긴, 그런 체질인 사람은 축복받은 몸인 거겠지. 그래도 어릴 때는 제법 건강했는데 성인이 되면서 바뀌었다. 그러니 살다가 좀 무리하면 아픈 게 영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유난히 거슬리는 건 이게 너무 하루 단위로 들쑥날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주의 시작, 월요일. 하루의 끝에 뿌듯한 마음이 들 정도로 생산적인 하루를 보냈다. 운동도 했고, 논문 자료도 읽었고, 음식도 요리해서 건강하게 잘 챙겨 먹었다. 그런데 다음 날, 온몸에 몸살이 온 것처럼 피로감이 온다. 꾹 참고 진통제나 약을 먹고 일정을 강행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 무리는 하지 않는다. 혹여나 무리하다 더 심한 병이 오진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몸을 사린다. 좀 심하면 아예 하루를 푹 쉬고, 아니면 가벼운 일들을 처리하면서 여유 있게 하루를 보낸다. 다행히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에 컨디션이 회복된다.



지난 주 가 본 수영장 입구 (c) noi 2024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 다음 날 또 운동하고, 공부하고, 요리하고 뿌듯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그 다음날 또 어딘가 아프다. 또 쉬거나 일을 줄인다. 이게 최근 2주 동안 반복된 것 같다. 자꾸 아프니까 몸도 지치는데, 마음도 지친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이 속상하다. 잠도 불규칙적으로 자고, 덜 자고, 잘 안 챙겨 먹고, 운동도 안 하고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면 내가 억울하지도 않다. 올해 들어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일찍 자고, 푹 자고, 잘 챙겨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자꾸 아프니 더 속이 상하나 보다. 일찍부터 추워진 데다 일교차가 심한 함부르크 특유의 환절기 날씨도 한몫하는 듯하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짐작컨대 스트레스다. 논문 스트레스, 그리고 그 뒤에 감당해야 할 취업 걱정.



생각해 보니 7월까지만 해도 알바를 하던 중에 ‘난 요즘 감기도 안 걸리고 이렇게 안 아픈데… 계속 안 아프면 병가도 못쓰고 뭔가 손해 같은데? ㅋㅋ’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건강히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다는 건…, 그 사이 가장 큰 변화는 논문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것.





그러다가 엊그제 한 독일 친구와 메신저로 오랜만에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어떻게 지냈어?’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중, “일은 아주 바쁘고 스트레스도 많지만 파티도 많이 다니고, 부모님도 뵙고 오고, 요즘 너무 잘 지내고 있어”라는 친구의 말이 문득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니 얘기를 들어보면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정말 잘 맞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일이 그렇게 바쁜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야?”



이 친구는 지금 작은 새 회사의 공동 대표로 일하고 있다. 예전의 직장인 시절보다 신경 쓸 일이 더 많고 스트레스도 더 많고 지금이 회사 유지에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알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원래도 운동 좋아하고, 요리해 먹기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한데, 내가 이 친구의 상황이었으면 새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운동도 줄이고, 밥도 시켜 먹고, 사람도 안 만났을 것 같았다.


왜냐면 지금 내가 딱 논문 스트레스가 시작되면서 운동, 요리, 소셜에서 스트레스를 같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는 건 좋은데 한편으로는 운동 다녀오는 시간만큼 논문에 써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요리할 의욕은 점점 떨어지고, 사람들을 만나서 보내는 시간에도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뭔가 이 친구에게는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바쁜 일과 삶을 오가는 시소를 아주 잘 타는 비법이 말이다. 그에게 답이 왔다.



“난 어떤 일이 있으면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려고 하는 편이야. 그 정도인 것 같은데… 아, 그리고 나한테 스트레스를 주는 관계들을 정리했는데 그게 아주 도움이 된 것 같아.”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긍정적인 바이브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이 친구는 예전부터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인 면을 잘 보는 친구이긴 했다. 물론 이런 삶의 태도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친구에게는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 긍정 바이브가 핵심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어쩌면 자기가 너무 단순해서 이게 가능한 것 같다고 겸손한 말도 잊지 않았지만, 이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는 것도 많고 사고방식이 꽤 똑똑한 사람 중 하나이다.


‘긍정 바이브를 갖고 산다는 것’ - 머리로는 이해해도 자신의 삶에 실제로 적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동안 이 친구를 알고 지내면서 이 친구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많이 위로도 받고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친구만큼의 긍정 바이브를 가지려면 좀 먼 것 같다.


그러다 갑자기 이 친구도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아는 독일 사람 중에서 제일 계획을 안 세우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너도 계획을 세워서 하루를 보내는 편이야?”


“계획을 막 꼼꼼히 세우는 편은 아니지.”


여기까진 예상한 답변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신기했다. 계획도 안 세우는데 어떻게 저렇게 사는 게 가능한 거지?


“그래도 어느 정도 있기는 해. 일하는 시간, 내 시간, 운동하는 시간. 이런 식으로? 진심으로 계획하는 건 헬스장 가는 시간 정도야. 나한테는 제일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니까. 물론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운동이 뒤로 밀리긴 하지. 그래도 하루에서 빼먹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야.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지. 하지만 모든 계획은 다 유연해. 스트레스받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계획은 없어. 모든 계획은 상황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게 내 방식이야.

이건 마치 몸무게를 재는 거랑 비슷해. 만약 지금 내가 살을 빼고 싶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오늘 몸무게가 덜 나가고, 내일 몸무게가 더 나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다음 주에 얼마나 나가고, 다음 달에 얼마나 나가냐는 거지. 멀리 보는 방향성이 중요해.”



“주단위로, 월단위로 멀리 보는 건 나도 배울 점인 것 같아! 그런데 그 부분을 빼고는 나도 비슷하게 계획하고 지내는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는 집중력이 잘 흐트러지는 게 문제인 걸까? 우선순위가 낮은 일에 잘 휩쓸려서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리는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최대한 계획대로 지내려고 애쓰고 있거든? 그런데 하루 계획적으로 살면 그다음 날에 몸이 아파. 휴…”



“‘완벽한 매일’ 같은 건 없어. 그걸 목표로 하는 것도 굉장히 스트레스받는 일이겠지. 좀 나쁜 날이 있어도 정말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계획을 세우고 안 세우고는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 누군가에게는 계획을 세워서 사는 방식이 맞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그리고 우린 모두 병들고 아파. 우리 모두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지.
인생이 인생 하는 거지 뭐. 인생은 그런 거니까.”





메모장에 옮겨 둔 친구의 메시지 (c) noi 2024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

생텍쥐베리가 이런 말을 했지. 완벽함은 더 이상 더 할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게 없는 상태라고.”



마지막 대화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잘 살고 있었는데, 괴로움을 만들어 낸 것은 내 욕심이었다. 욕심 많은 나는 모든 하루하루를 ‘다‘ 잘 보내고 싶어서, ‘완벽한 매일’을 보내고 싶어서 괴로웠던 것이다. 그 것을 깨달은 순간 내려놔졌다.

나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나의 욕심들이.



일주일에 3일 뿌듯한 하루를 보내고 4일을 아파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나에게는 이번 학기 안에 논문을 통과하는 것보다 내 건강을 망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번 주에는 열심히 수영을 했지만, 이번 주에는 피곤해서 못 가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건강하려고 운동하는 건데 무리할 필요 없다. 수영장은 도망가지 않는다. 다음 주에, 또 그다음 주에 나만 도망가지 않으면 된다. 짱구 아빠가 그랬다. 꿈은 도망가지 않는다, 도망가는 건 나 자신이라고.


지인들을 갑자기 봐도, 혹은 오래 못 봐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내게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일들로 서운해하거나 멀어지지 않는다. 나중에 내가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면 된다.


행여나 기한 안에 논문을 다 쓰지 못해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게 인생이니까.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으니 괜찮다. 그것마저 떨어져도 괜찮다. 그동안 내가 여기서 배운 건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균형 잡힌 내 삶을 향해

계속 걸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완벽한 매일은 없다는 것을.

어느 날은 좋고, 어느 날은 별로인 하루들을 잘 모아서

 한 주를, 한 달을, 일 년을 채워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좋은 날들, 조금 별로인 날들, 힘든 날들을 살다 보면

논문도 쓰고, 졸업도 하고, 내가 바라는 삶으로 한 걸음씩 가까워져 있을 것임을,

이제 마음 깊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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